“감기귀신 쫓는다” 굶기고 손 묶고 매질… 자식 3명 숨지게한 퇴마치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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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 ‘사이비 목사’ 부부 광신의 비극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삼남매가 기침과 고열 증세를 보였다. 자칭 목사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는 병원치료 대신 ‘잡귀를 쫓아내야 한다’며 스타킹으로 손을 묶은 채 허리띠로 폭행하고 밥도 주지 않았다. 삼남매에게 속옷만 입혀놓고 식탁 위에 무릎을 꿇게 한 뒤 때렸다. 현장에서는 박 씨의 큰딸(10·초교 3학년)이 ‘TV를 보았다. 런닝맨이 재밌었다’고 쓴 메모가 발견됐다. 결국 천진난만했던 어린이 셋은 부모의 엉터리 신념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전남 보성경찰서는 12일 자녀 3명을 굶기고 때려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박모 씨(43)와 부인 조모 씨(34)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질병 굶주림보다 폭행으로 숨진 듯


박 씨는 1일부터 2일까지 큰딸과 둘째 아들(8·초교 1학년), 셋째 아들(5·유치원생)에게 “잡귀가 붙었으니 몰아내야 한다”며 허리띠와 파리채로 78대씩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박 씨 부인도 10대 이하씩 때렸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구체적인 경위를 조사 중이다. 이들 부부는 성경 잠언 23장 13절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와 14절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죽음 또는 죽은 자의 영혼이 거처하는 곳)에서 구원하리라’라는 구절을 들어 자녀를 때려 숨지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고린도후서 11장 24절 ‘유대인에게서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라는 구절에 따라 때리는 횟수를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박 씨 부부가 39대씩 5번 때리기 전에 삼남매가 이미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부검 결과 시체 곳곳에서 멍 자국이 확인됐다”며 “더 조사해야 하지만 질병, 굶주림보다 폭행이 더 직접적 사인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 씨의 자녀 3명은 11일 오전 9시 50분경 보성군 보성읍의 한 교회 사택에서 박 씨의 매형(55)에게 발견됐다. 아이들이 전화를 받지 않아 집을 찾아갔던 것. 박 씨는 작은방에 누운 삼남매의 시신 곁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조 씨는 거실에서 생후 8개월 된 막내딸을 데리고 있었다. 1일과 2일 잇따라 삼남매가 숨졌지만 10일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고 ‘1주일 기도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며 옆을 지키고 있었다. 비교적 건강한 막내딸은 현재 박 씨 매형이 보호하고 있다.

박 씨의 자녀 4명은 지난달 16일부터 감기 증세를 보여 둘은 소아과에서 한 차례 진료받았고 나머지 둘은 약국에서 사온 감기약만 먹인 것으로 조사됐다. 박 씨 부부는 ‘기도로 감기를 낫게 한다’며 지난달 23일부터 금식기도를 시작해 숨진 자녀 3명도 이때부터 음식을 먹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 숨진 이후 사실 은폐 시도 왜?


박 씨 부인은 자녀들이 이미 숨진 지 4, 5일이 지났지만 개학날인 6일이 되자 큰딸과 둘째 아들 담임교사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애들이 폐렴에 걸려 1주일 정도 등교를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교사들과 10여 차례 통화에서 계속 거짓말로 둘러댔다. 학교 측은 결석이 길어져 13일 박 씨 집을 찾아갈 예정이었다. 박 씨 집은 차상위계층에 속해 무상 치료를 알선할 계획까지 세웠다. 둘째 아들 담임교사 문모 씨(57·여)는 “아이가 항상 밝고 인사성도 좋았다”며 “엄마는 평소 독서도우미로 활동하며 아이를 정성스럽게 키웠는데 너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앞서 박 씨는 5일 신도들이 ‘뭔가 썩는 냄새가 난다’고 묻자 ‘음식 냄새’라고 둘러대는 등 삼남매가 숨진 사실을 감췄다.

지체장애 2급인 박 씨는 정식 신학대를 졸업하지 않았다. 박 씨는 경찰조사에서 “내가 새로운 종파를 만들었지만 기존 교회에서 이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진술했다. 1999년 전남 진도의 한 교회를 다니다 2009년 보성으로 와 월세 20만 원에 1층짜리 주택에 자신만의 교회를 열었다. 경찰 관계자는 “박 씨 부부는 ‘애들이 죽자 겁이 나 거짓말을 계속했다. 애들을 굶기고 때린 것이 후회스럽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성=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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