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행복한 사회]<7>팍팍한 경제, 더 팍팍한 가정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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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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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내몰린 40, 50대 엄마들… 젊어선 ‘취집’ 이젠 ‘알바’라도

《 ‘현모양처’형 전업주부가 일등 신붓감이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의 40, 50대가 결혼했던, 불과 20∼30년 전의 일이다. 그때는 현모양처가 아니라도 시집가는 게 어렵지 않았다. 취직을 하려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얼른 마음을 고쳐먹고 시집을 갔다. 이런 신부에겐 우스갯소리로 ‘취집’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소한 경제적 문제로 시집을 못 가는 상황은 많지 않았다. 시대가 달라졌다. 경제가 성장하는 와중에 물가도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몇 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대부분 가정의 소득은 종전만 못하게 됐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남편 10명 중 8명 이상(81.5%)이 맞벌이를 선호하고 있다. 팍팍한 살림살이, 부부가 모두 벌어도 힘겨운 세상이 됐다는 뜻이다. 》
현모양처는 이제 아득한 옛이야기일 뿐이다. 40, 50대 엄마들에게 집안일과 자녀교육은 기본이고, 돈을 벌어오는 일은 선택권이 없는 옵션이 됐다.

○ 나이 쉰에 취업하는 엄마들

정모 씨(54·여)는 4년 전부터 한 대형 마트 판매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아들이 취업하기 전까지는 그가 버는 한 달 120만 원 남짓한 돈이 가계 소득의 전부였다. 작은 플라스틱제품 생산공장을 운영하던 남편은 한때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부자였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주문량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최근 몇 년간은 거의 일손을 놓은 상태다.

“당장 쓸 생활비는 벌어야겠다고 이일 저일 해봤지만 결국은 마트 일이 몸은 고돼도 제일 낫더라고요. 아이 대학 학비랑 결혼자금은 대출로 해결했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했던가. 푸념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노후’란 단어는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성장한 자식들은 ‘웬수’가 돼 버렸다. 지난해 아들 결혼 때문에 3000만 원을 대출한 것도 모자라 가게를 차리겠다는 딸을 위해 추가로 5000만 원을 더 대출해야 한다.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닌가 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걱정이 생겼다.

“회사에서 인원을 좀 줄인다는 얘기가 있어요. 보통 나이 많은 순서로 그만두게 되던데, 제가 나이가 제일 많거든요. 지금 상태에서 일자리를 잃게 되면….”

말을 잇지 못하는 정 씨처럼 팍팍한 살림 때문에 취업전선으로 나온 50대 여성은 계속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0대 여성 고용률은 매년 높아져 올해 2분기에 59.3%를 기록했다. 50대 여성 10명 중 6명은 일자리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50대 여성 고용률이 그들의 자녀뻘인 20대 남성(58.5%), 20대 여성(59.2%)보다 높아진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 불안한 고용, 애타는 엄마들

일반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5∼29세 때 정점을 찍었다가 출산과 양육에 집중하게 되는 30대 때 급감한다. 그러다 40대가 되면 다시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지는데 최근에는 50대 여성의 증가가 특히 눈에 띈다. 이 시기에 대체로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교 3학년 아들을 둔 최모 씨(49·여)에게도 요즘 최대 관심사는 구직이다. 고3 수험생 뒷바라지만 끝내면 곧바로 일을 할 생각이다. 남편 연봉이 8000만 원 정도로 적지 않은 편이지만 암을 앓고 있는 남편의 치료비와 시어머니 병원비 등을 제하고 나면 실제로 쓸 수 있는 생활자금은 빠듯하다. 아들의 대학 등록금 부담까지 더해질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경험을 살려 학원들을 알아봤다. 모두 거절당했다.

“저축해둔 돈으로 식당을 차려볼까 했지만 장사를 해본 적도 없는데 까딱하다 돈을 날릴까봐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어요. 월급이 적어도 좋으니 일자리만 얻었으면 좋겠어요.”

어렵게 취업해도 대부분은 저임금에다 고용까지 불안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성 경제활동인구는 2008년 1420만8000명에서 2009년 1431만9000명으로 늘었지만 여성 경제활동인구는 1013만9000명에서 1007만6000명으로 줄었다. 특히 주부들이 많이 선택하는 서비스직, 판매직 등의 감소율이 두드러졌다. 연구팀은 경제위기 이후 특히 여성의 고용이 불안정해졌다고 분석했다.

결국 출산과 육아 때문에 직장을 포기했던 많은 여성이 ‘돌아갈 곳’이 없게 된 셈이다. 이런 상황이니 새로 직장을 구하려는 40, 50대 여성이 원하는 곳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20대들이 택하지 않는 저임금의 일자리 외에는 선택할 곳이 없는 상황이다.

○ 자격증이 능사는 아니다

최근에는 고소득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약속하는 얘기들이 중년 여성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김모 씨(45·여)는 지난해 10월 ‘다문화가정 상담사’ 자격시험이 있다는 광고 e메일을 받았다. 다문화가정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최고의 유망 자격증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 그럴싸했다.

상담원에게 전화를 걸어 자격증 취득 비용을 묻자 문제집 5권과 교재 4권, 원서접수 대행까지 포함해 58만 원을 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험 초기라 싸게 해주는 것이라며 자격증을 확대하기 위해 시험문제가 어디에서 나오는지까지 다 알려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유명한 시민·사회단체와 정부 산하 기관 이름을 대며 취업에 유리하다는 설명까지 듣고 마음이 놓였다. 김 씨는 한 달 만에 자격증을 땄다. 그러나 그는 상담원이 거론한 기관들에서 “처음 듣는 자격증이다.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급증하는 각종 자격증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일부 자격증을 빼고는 가계 소득 증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보다는 일자리나누기나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믿을 수 있는 취업정보를 정부가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40, 50대 여성에게 대형 마트 외엔 일할 곳이 없다는 인식을 깨기 위해서는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저임금 계층에 사회보험료를 지원해 주고 경력 단절 여성을 훈련하는 기관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복실 여성가족부 청소년가족실장은 “엄마가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본 자녀 세대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며 출산을 기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50대 여성이 할 수 있는 아이 돌봄 서비스직을 활성화하면 20, 30대의 자녀 양육 문제와 50대의 경제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주부 알바 구합니다” 4년새 5.5배 ▼
구인구직 사이트 등록 급증… 경력 살려 지원하면 유리

생활비나 자녀 교육비를 벌기 위해 주부들이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서고 있다.

아르바이트 전문 구인구직포털 알바몬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이 사이트에 등록된 35세 이상 여성의 이력서는 2만4480개. 지난해보다는 1.3배, 2007년에 비해서는 5.5배가 늘었다.

주부를 대상으로 한 채용 공고도 구직 열기에 맞춰 늘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 저임금 단순직이란 데 있다. 이 사이트에서 주부들이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기능·생산직(27.7%)이었다. 이어 매장관리·판매(24.2%) 고객상담·리서치(18.9%) 서빙·주방(14.1%) 등이었다. 시간당 급여는 텔레마케팅 1개 직종만이 6000원 이상이었고 나머지는 5000원 내외였다.

알바몬 이영걸 이사는 “주부의 경력을 살려야 맘에 드는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가령 베이비시터, 모니터요원 등의 직종은 미혼 여성보다 기혼 여성, 특히 육아와 살림 경력이 있는 여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자기소개서에 주부로서 얼마나 꼼꼼한지를 잘 적어 넣는다면 특별한 경력 없이도 일을 할 수 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모니터요원은 리서치 전문 업체에 패널로 등록해 놓고 설문조사에 응하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소비자 좌담회 등에 초청받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 2, 3시간 참여해 2만∼7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제품 홍보 글만 올리면 된다”며 ‘홍보업체’를 표방한 재택근무 아르바이트 중에는 사실상 다단계와 유사한 것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런 아르바이트는 초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

학원이나 고시원 등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 남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청소·정리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 하루 2, 3시간 일하면 월 3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학력 조건을 갖췄다면 학원의 자습지도, 채점 도우미 아르바이트도 가능하다.  
:: 특별취재팀 ::

▽팀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팀원 정효진(산업부) 구가인(경제부) 신나리(국제부) 이새샘(사회부)
우경임 한우신 남윤서 최예나(교육복지부) 곽민영(문화부)

:: 엄마가 행복한 사회 자문단 ::

강지원 변호사
김미경 더블유 인사이츠 대표
김행미 KB국민은행 강동지역 본부장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이복실 여성가족부 청소년가족정책실장
임오경 서울시청 핸드볼 감독
전재희 국회의원·전 보건복지부 장관
전주원 전 여자농구 국가대표
정이현 소설가
조복희 육아정책연구소장
최성남 글로벌어린이재단 뉴욕 회장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

:: 이런 엄마를 찾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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