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사랑의 생일파티’… 떡볶이 골목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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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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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천천히 먹어… 체할라” 저소득층 아이들에 나눔 실천
골목안 20여곳 점포 동참

서울 중구 신당동 떡볶이골목에서 영업을 하는 상인들이 매달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떡볶이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있다. 5일 오후에도 ‘삼대할먼네’ 박영한 사장(오른쪽)과 ‘우정떡볶이’ 서순희 사장이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나눠줬다. 중구는 떡볶이골목을 ‘나눔의 거리’로 지정하고 7일 오후 1시 기념식을 한다. 중구 제공
서울 중구 신당동 떡볶이골목에서 영업을 하는 상인들이 매달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떡볶이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있다. 5일 오후에도 ‘삼대할먼네’ 박영한 사장(오른쪽)과 ‘우정떡볶이’ 서순희 사장이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나눠줬다. 중구는 떡볶이골목을 ‘나눔의 거리’로 지정하고 7일 오후 1시 기념식을 한다. 중구 제공
“아줌마, 빨리 주세요.” “비켜, 이 달걀은 내 거야.”

떡과 당면, 삶은 달걀, 고추장이 담긴 프라이팬 앞에서 아이들은 신이 났다. 5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 떡볶이골목에 위치한 ‘삼대할먼네’에 모인 20명의 아이들. 생일 축하는 안중에도 없고 누가 떡볶이를 많이 먹나 신경전을 벌였다. 떡볶이 생일파티를 주선한 삼대할먼네 박영한 사장(53)과 ‘우정떡볶이’ 서순희 사장(56·여)은 익지도 않은 떡볶이를 먹으려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라”며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날 생일파티에 참석한 어린이들은 중구 내 지역아동센터에서 방과 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저소득층 자녀들. 그중 신희정(가명·8) 양과 이혜정(가명·14) 양이 이날 생일을 맞았다.

서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러봤을 신당동 떡볶이골목에서 매달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무료 ‘떡볶이 생일파티’가 열리고 있다. 중구는 떡볶이골목을 ‘나눔의 거리’로 지정하고 7일 오후 1시 기념식을 연다.

떡볶이 생일파티가 처음 열린 것은 9년 전. “동네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박 사장에게 지역 신문 기자 한 명이 “중구 내 저소득층 어린이를 도와보라”며 아이디어를 내 떡볶이 파티가 열리게 됐다. 올해 4월에는 다른 떡볶이집과 아이스크림 가게, 문구점 등 골목 내 점포 20곳이 이 행사에 동참했다. 박 사장은 저소득층 아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2002년 10월 초등학교 1∼3학년 아이들 30명을 불러 떡볶이 32인분을 만들어준 것이 시작이었어요. 최근에는 경기 광명시로 이사를 간 한 학생이 ‘삼촌 저 왔어요’라며 가게 문을 열더라고요. 당시 초등학생이던 그 아이는 어느덧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죠. 이름은 모르고 ‘음료수 꺼내 간 아이’로 알고 있었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공짜 떡볶이가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다. 공짜로 먹는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 고개를 푹 숙이고 먹는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도 더러 있다. 우정떡볶이 서 사장은 “아이들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 이름이나 가족관계 같은 신상 대신 ‘몇 학년이냐’ ‘공부 잘하냐’ 같은 가벼운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한다”고 했다. 그는 “남편 없이 세 자녀를 키우다 보니 어려운 집 아이들이 남의 자식 같지 않게 느껴진다”며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복지관으로 떡볶이 재료를 보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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