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만에 달려온 여수해경 317함 ‘파랑새’… 130명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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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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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제주 여객선 화재 1시간 15분 만에 전원 구조

6일 오전 전남 여수시 백도 인근 해상에서 화재가 발생한 4000t급 여객선 설봉호에서 승객들이 구조되고 있다. 전남 여수해양경찰서와 해군은 경비함 등 30여 척을 현장에 급파해 사고 발생 2시간여 만인 오전 3시경 승객 130명을 전원 구조했다. 여수해양경찰서 제공
6일 오전 전남 여수시 백도 인근 해상에서 화재가 발생한 4000t급 여객선 설봉호에서 승객들이 구조되고 있다. 전남 여수해양경찰서와 해군은 경비함 등 30여 척을 현장에 급파해 사고 발생 2시간여 만인 오전 3시경 승객 130명을 전원 구조했다. 여수해양경찰서 제공
해경 임재철 함장
해경 임재철 함장
‘파랑새! 파랑새! 여객선에 불이 났다. 살려 달라.’

6일 오전 1시 15분경 전남 여수시 삼산면 상백도 북동쪽 13km 해상.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망망대해에서 화마가 솟구쳤다. 전날 오후 7시경 부산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제주선적 설봉호(4166t)에서 불이 난 것. 이 배에는 승객 104명과 승무원 26명 등 130명이 타고 있었다. 설봉호 이등항해사 현모 씨(44)가 단파통신기(VHF)로 애타게 부르던 파랑새는 전남 여수해양경찰서 소속 317함(416t). 파랑새 317함은 15분 만에 11km 거리를 번개처럼 이동해 130명의 생명을 모두 살렸다.
○ 망망대해에서 발생한 화마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설봉호 화재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6일 0시 53분경 설봉호 조타실에 설치된 화재감지기 센서가 갑자기 깜박깜박 작동을 하기 시작한 것. 이를 본 이등항해사 현 씨는 조타수 김모 씨(50)에게 순찰을 지시했고 김 씨는 선미를 둘러보다 1, 2층 화물칸에 연기가 가득 찬 것을 발견했다. 불길은 삽시간에 화물칸 전체로 번졌다. 조타실에 있던 현 씨가 단파통신기를 통해 구조를 요청했다. 설봉호가 있던 지점에서 약 11km 떨어진 곳에서는 317함이 해상경비를 서고 있었다. 임재철 함장(52·경감)은 구조요청을 듣자마자 단파통신기를 통해 설봉호에 “승객들을 안전지대로 대피시켜라. 곧 도착한다”고 안심시켰다.

최고 속력 시속 70km로 15분 만에 사고 해역에 도착한 317함은 즉시 구조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설봉호는 함미에 불이 번지면서 ‘팍팍’ 소리와 함께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운항을 멈춘 설봉호가 남서풍의 영향을 받아 280도 회전한 상태였다. 317함은 고속단정을 출동시켜 구명보트 한 개에 타고 있던 임신부, 노인, 2세 여아 등을 먼저 구조했다. 구명보트 4개는 바다에 떠 있었지만 아직 아무도 타지 못한 상태였다.

317함은 설봉호 선수 오른쪽에 설치된 사다리로 40여 명을 구조했다. 이후 시커먼 연기를 견디지 못한 60명이 선수 왼쪽에 설치된 밧줄을 타고 탈출했다. 나머지 20명은 구명조끼를 입고 8∼9m 아래 바다로 침착하게 뛰어들었다.

한밤의 구조작업이 끝난 것은 오전 2시 반경. 317함은 130명 전원을 구조해 이름 그대로 희망의 파랑새가 됐다. 이날 구조작업에는 317함 외에도 해경 경비정 24척, 해군 경비함 3척, 관공선 2척, 민간선박 1척과 인근을 항해하던 상선 3척 등 모두 33척이 출동했다.

○ 자칫 대형 참사 빚을 뻔

불이 난 설봉호는 동양고속훼리가 소유한 국내 유람선으로 길이 114.5m, 폭 20m이며 시속 28.7km로 운항한다.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설봉호 화물칸 1, 2층에는 비료 사료 등 125t의 화물이, 3층에는 차량 85대가 실려 있었다. 화물칸 밑에는 기관실이 있다. 기관실까지 불길이 번졌다면 여객선은 순식간에 침몰할 아찔한 상황이었다.

여수항에 무사히 도착한 승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승객 서모 씨는 “구조를 기다린 시간이 1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1년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일부 승객은 설봉호 대피 안내 방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여수해경은 설봉호가 누전이나 실화 등으로 불이 났을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여수=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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