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과정에서 허위서약서를 작성한 출제 및 검토위원들은 모두 현직 교사로 확인됐다. 또한 수능뿐 아니라 고입 선발시험에서도 출제위원의 자녀가 응시한 사실이 밝혀져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의 관리 및 운영실태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 허위서약서 쓰면서 왜 참여?
신뢰 위기 맞은 교육평가원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물론이고 고입 선발고사에서도 수험생 자녀를 둔 교사가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사실이 감사 결과 확인됐다. 두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건물.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감사원이 19일 공개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감사결과에 따르면 2008∼2011학년도 수능에서 자녀가 수능에 응시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허위서약서를 쓴 출제 및 검토위원 11명은 모두 고교 교사였다.
출제위원으로는 교수와 교사가 모두 참여하지만 유독 교사에게만 이런 문제가 나타난 이유는 출제 참여가 교수에겐 ‘귀찮은 일’로 여겨지는 반면, 교사에게는 경력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해마다 수능 출제 및 검토에 참여하는 고교 교사는 250여 명. 전체 고교 교사 12만5000여 명의 0.2%에 불과하다. 한 번 잡을까 말까한 경력인 만큼 출제를 끝내고 학교에 돌아가면 학생 학부모 동료들의 ‘대접’이 달라진다고 교사들은 말했다.
수능 출제에 두 차례 참여했다는 교사는 “해당 분야에서 실력을 검증받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합숙에 들어갔다 나오면 학교에서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참고서 집필 요청은 물론 유명 학원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온다”고 귀띔했다.
적발된 교사들도 이런 욕심 때문에 허위서약서를 쓰고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수능 출제를 위한 합숙에는 출제위원(300여 명)과 검토위원(180여 명)이 참여한다. 합숙에 들어가면 시험 당일까지 외부와 전혀 접촉할 수 없지만 합숙 전 2, 3주 정도 시간이 있어서 자신의 출제 방향을 주변에 알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출제위원 2명은 외국어(영어) 영역과 법과사회 과목을 담당했다. 이 중 영어 교사의 자녀는 외국 유학이 결정된 상태여서 1교시 언어 영역만 응시하고 외국어는 치르지 않았다. 또 다른 1명은 자연계열이므로 문제가 유출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평가원은 보고 있다.
검토위원으로 참여한 나머지 9명 중 자녀가 해당 과목에 응시한 경우는 4명이었다. 검토위원은 문제가 출제된 뒤에 합숙에 들어가므로 문제를 빼내기가 불가능하다.
다만 이들 교사는 모의수능 평가 출제에도 참여한 바 있어 상대적으로 관리가 허술한 이때는 문제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
평가원 관계자는 “모의평가는 대학 진학과 직결되는 시험이 아니고 말 그대로 연습인 만큼 수능 같은 철통 관리는 어렵다”면서도 “감사원 지적 이후 수능뿐 아니라 모의평가에서도 가족관계확인서를 받아 고3 자녀가 있는지 철저하게 감시한다”고 말했다. ○ ‘학부모’만 문제가 아니다
출제위원의 자녀가 시험에 응시한 사례는 고입 선발고사에서도 나왔다. 2008∼20011학년도 고입 선발고사 출제·검토·평가위원에도 수험생 학부모가 일부 포함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 울산교육청이 수학 출제위원으로 추천한 중학교 교사 A 씨 등 출제·검토·평가위원 중 5명의 자녀가 해당연도에 관할 교육청의 고입 선발고사를 치렀다. 이들 역시 ‘고입선발고사에 응시하는 자녀가 없다’는 취지의 확인서를 냈으나 평가원은 사실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중등교원 임용고시의 경우 관련학원에서 강의를 했거나 문제집을 집필한 이들을 출제위원으로 선정한 사례도 있었다.
출제위원의 특정대학 편중 현상도 여전했다. 평가원은 2011학년도 수능시험에서 특정대학 출신자 비율을 50% 이하로 구성하도록 하는 규칙을 영어 수리 외국어 영역에만 적용하고, 탐구영역과 제2외국어 영역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사회탐구영역 ‘경제’ 과목의 경우 출제위원 4명이 모두 같은 대학 출신으로 구성되는 등 7개 과목 출제위원의 절반 이상이 동문이었다. 이런 사항은 2004년 감사원 감사에서도 지적받았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 ‘수능샤프 불량논란’ 자초
평가원 직원들의 비리도 드러났다. 지난해 수능 당시 제기된 ‘불량 샤프’ 논란은 평가원이 값싼 중국산 제품을 구매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수능에서 사용할 샤프펜슬 선정 업무에 참여한 담당 실장은 입찰대상이 국산품으로 제한된 점을 알면서도 중국 생산업체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된 중국산 샤프펜슬을 제출한 회사를 입찰 대상에 포함시켰다. 결국 저가로 써낸 이 회사가 낙찰됐는데 회사는 견본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납품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수능에서 수험생의 70%가 샤프펜슬에 불만을 제기하는 등 물의를 일으켰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