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하나 둘 셋… 어르신들 춤바람”

  • 동아일보

■ 광주시 노인복지회관 ‘차밍댄스반’ 인기

27일 경기 광주시 탄벌동 광주시노인복지회관에서 차밍댄스반 회원들이 춤을 배우고 있다. 무대 위에서 춤을 가르치는 강사가 올해 73세인 김숙자 할머니다. 광주=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27일 경기 광주시 탄벌동 광주시노인복지회관에서 차밍댄스반 회원들이 춤을 배우고 있다. 무대 위에서 춤을 가르치는 강사가 올해 73세인 김숙자 할머니다. 광주=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태풍 ‘메아리’가 궂은비를 뿌리던 27일 낮 12시. 경기 광주시 탄벌동 광주시노인복지회관 3층 대강당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 머리가 희끗하거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잠시 뒤 50여 명의 노인이 나란히 줄을 섰다. 그리고 일제히 무대를 바라봤다. 무대 위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또래 할머니가 서 있었다.

“자 오늘도 한번 신나게 해봅시다. 하나 둘 셋!”

할머니의 구령이 떨어지자 스피커에서 흥겨운 트로트 가요가 울려 퍼졌다. “솔솔솔 오솔길에∼빨간 구두 아가씨∼” 노래와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신나는 율동이 시작됐다.

○ 월요일에는 ‘댄서’

매주 월요일 낮 12시 반 광주시노인복지회관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차밍댄스반’이 운영된다. 차밍댄스는 에어로빅의 격렬한 율동을 부드럽게 바꾼 것으로 여성이나 노인들의 건강댄스로 인기가 높다. 차밍댄스반은 광주시노인복지회관의 여러 프로그램 중 가장 인기가 높다. 5년 전 개설 초기 때부터 80명 안팎이 꾸준히 참여하고 있고 지금도 정원(80명)을 넘은 82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6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노인들은 2시간에 이르는 강좌 내내 지치지도 않고 율동을 배운다.

차밍댄스반이 인기를 끄는 가장 큰 비결은 바로 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다. 5년째 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사람은 올해 73세인 김숙자 할머니. 집에서 손자의 재롱을 즐길 나이임에도 김 할머니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춤을 가르치고 있다. 김 할머니의 댄스 경력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유치원에 다니던 여섯 살 때 이미 무대에 오를 정도로 ‘무용 신동’이었다. 6·25전쟁 직후인 18세 때 당시 부산대 사범대 체육무용과에 입학해 고전무용과 현대무용을 공부한 뒤 모교인 통영여고에서 후배들을 가르쳤다.

11년간 교단에 섰던 김 할머니는 결혼과 함께 서울로 이사했다. 세 자녀를 낳고 기르며 잠시 무용과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중반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생활체육이 유행하면서 국내에 처음으로 에어로빅이 선보였다. 김 할머니는 당시 개발이 막 시작되던 잠실 일대에 학원을 잇달아 개원하고 본격적으로 에어로빅을 보급했다. 한국 에어로빅 1세대인 셈이다.

○ “무대에서 쓰러지는 날까지”

늘 춤과 함께해온 김 할머니에게도 어려움이 찾아왔다. 2004년 남편의 병환 때문에 경기 광주시로 터전을 옮겼다. 물 맑고 공기 깨끗한 곳이지만 아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다. 영영 춤을 추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가족과 지인의 권유로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광주시노인복지회관에서 또래 노인들을 가르치고 생활체조연합회장까지 맡았다. 2007년 칠순잔치도 이곳에서 댄스파티를 열어 평소 자신이 가르치던 노인들과 함께 춤을 추며 자축했다.

2009년 겨울에는 폭설로 얼어붙은 길에서 넘어져 발목이 골절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주변의 만류에도 다리에 깁스를 한 채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서 춤을 가르쳤다. 말 그대로 ‘휠체어 투혼’이었다. 차밍댄스를 배우고 있는 신현복 할아버지(75)는 “휠체어를 타고 춤을 가르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선생님을 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무용을 가르치겠다”며 “무대에서 춤을 추다가 쓰러지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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