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토종벌 구례서 첫 증식성공

  • 동아일보

청정지역에 옮겨 대량 번식… 농가 분양까지 무사히 마쳐

“토종벌을 아무리 찾아도 구할 수 없어 상실감이 컸는데 종자벌을 분양받아 희망이 생겼어요. 괴질(낭충봉화부패병)을 이겨내 토종벌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10일 오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산성리 대나무밭. 20년째 토종벌을 키운 윤용준 씨(46)가 벌통 7통을 놓을 자리를 정리하며 비장한 각오로 말했다. 윤 씨는 지난해 토종벌 멸종 위기설까지 나오게 만든 낭충봉화부패병의 직격탄을 맞았다. 키우던 토종벌이 모두 폐사했지만 종자벌을 구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토종벌 한 통(통당 2만∼3만 마리) 값이 60만 원까지 치솟았지만 그나마 구하기 어려웠고 질병 감염 여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토종벌이 모두 폐사한 한봉(韓蜂) 생산 농가는 구례에서만 780여 곳. 이 중 행운을 잡은 농민은 윤 씨 등 23명이다.

이들은 이날 고인상 씨(42) 등 증식에 성공한 농민 4명이 가져온 종자벌 6, 7통씩을 분양받았다. 종자벌 150통을 무상으로 분양해준 고 씨 등은 구례에서 토종벌을 키우던 농민. 이들은 올 2월부터 두 달 동안 전국 각지를 돌며 낭충봉화부패병에 감염되지 않은 토종벌 200통을 구했다. 이들은 어렵게 구한 토종벌을 전남 광양시 보성군 고흥군 등 청정지역으로 옮긴 뒤 인삼 녹차를 먹이는 등 온갖 정성으로 토종벌을 키웠다.

최근 토종벌 여왕벌이 일벌들을 끌고 나와 새 무리를 형성하는 분봉에 성공했다. 분봉 성공 이후 애벌레를 21일 동안 키워 일벌로 만들었다. 토종벌 200통을 500통으로 늘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번식에 성공해 같은 처지의 농가에 종자벌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분양했다.

토종벌 전멸 위기가 커지자 정부와 전국 자치단체는 토종벌 대피 번식공간(종 보전 사업장) 30여 곳을 설치했다. 충남 강원지역 대피 번식공간은 낭충봉화부패병이 돌아 사업이 중단됐고 경남 경북 전북지역은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토종벌 대피 번식공간마저 위기에 놓인 상황인 것으로 분석된다. 다행히 충북 청원군에 설치된 김대립 씨(38)의 토종벌 대피 번식공간은 무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 씨는 올가을 종자벌을 분양할 계획이다.

강승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꿀벌질병관리센터장은 “바람 앞의 촛불 상황에 놓인 토종벌을 처음 분양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낭충봉화부패병이 장마나 무더위에 기승을 부리는 점을 감안해 분양 농가들은 완벽한 위생관리나 약용식물에서 추출한 예방약인 티몰을 사용하는 등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구례=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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