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승부조작 대가인가… 그라운드는 냉혹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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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대전팀 경기 관중 ‘뚝’… 전북에 역전패

선수들 “이기기보다는 살기 위해 뛰었다” 눈물

라커룸은 눈물바다가 됐다. 평소 눈물은커녕 웃음도 보이지 않던 무뚝뚝한 최고참 최은성과 박성호가 먼저 눈물을 흘렸다.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 및 선수단 전원이 서로를 끌어안고 흐느꼈다.

프로축구 대전시티즌과 전북현대의 경기가 열린 29일 대전월드컵경기장. 승부조작 파문에 가장 많은 8명의 선수가 연루된 대전 선수들은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전북을 맞아 전반 18분 황진산이 선제골을 넣자 기다렸다는 듯 플래카드를 꺼내 들었다. 거기엔 “신뢰로 거듭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대전은 박성호가 전반 37분 한 골을 추가했으나 전북의 간판 스타 이동국에게 두 골을 내주고 경기 종료 직전인 후반 45분 전북 이승현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2-3으로 역전패했다.

대전은 선수단 전용 숙소와 훈련장도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올 시즌 초반 10년 만에 처음으로 정규리그 선두에 오르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창고를 방불케 하는 허름한 숙소와 맘 놓고 훈련할 잔디구장이 없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훈련하면서 일궈낸 성과였다. 하지만 얇은 선수층으로 선수들의 체력이 바닥나면서 어느새 전체 16개 구단 중 14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 같은 급격한 순위 변동에 대해서도 오히려 의혹의 눈초리가 쏟아지고 있다.

대전 채승목 마케팅 팀장은 “일부 선수가 승부조작에 연루됐을지언정 청춘을 다 바친 팀이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했다. 오늘은 우리의 열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꼭 이기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해 답답했다”고 했다. 숙소에서 기러기아빠 생활을 하면서도 함께 지내는 강아지들에게 ‘승리’, ‘복순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승리의 결의를 다졌던 왕선재 감독은 “미안하다”는 말만 거듭했다. 골키퍼 최은성은 “오늘은 이기기 위해서라기보다 살기 위해서 열심히 뛰었다”고 했다.

대전 이사진-코치 “일괄사퇴”

경기 후 대전은 김윤식 대표이사와 왕 감독 등 이사진과 코칭스태프 및 팀장급 이상 직원 전원이 구단주인 염홍철 대전시장에게 사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대전 선수단은 “특단의 조치로 위기를 헤쳐 나가겠다는 결의의 표현”이라고 했다. 이날 대전의 경기에는 22일 포항전의 3분의 1인 1만2000여 명의 관중이 들어 냉담해진 팬들의 마음을 느끼게 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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