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 해킹 파장]고객DB 암호화 업그레이드 소홀… 진화한 해커에 뚫렸을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2일 03시 00분


■ 금융사 보안점검 등 부심

“1위 캐피털회사의 보안 수준이 이 정도면 어떤 회사를 믿어야 합니까?”

8일 현대캐피탈의 해킹 사건이 공개된 뒤 첫 영업일인 11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현대캐피탈 파이낸스숍에 피해 유무를 확인하려고 몰려온 고객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불만을 토해냈다. 고객 김원희 씨(33·여)는 “해킹 소식으로 불안해서 출근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며 “현대캐피탈은 물론이고 현대카드도 쓰고 있는데, 피해가 있을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현대캐피탈에 책임을 묻기 위해 “집단소송을 하겠다”는 주장도 나왔다.

○ 금융권 대상 실질적 고객정보 유출

금융권은 이번 해킹 사건을 금융회사에서 고객 금융정보의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비밀번호’를 처음으로 빼내 갔다는 점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008년 저축은행 7곳의 전산망이 뚫렸을 때는 고객의 신상정보와 계좌번호, 예금액, 대출정보 등이 유출됐지만 비밀번호는 유출되지 않았다. 사실 고객정보 해킹 사례는 인터넷 쇼핑몰, 정유회사 등에서 몇 차례 발생해 드문 일은 아니다. 2008년에는 옥션에서 해킹으로 1081만 명의 ID와 주민번호가 유출됐고, GS칼텍스 홈페이지를 통해 개인정보가 대량으로 빠져나갔다. 지난해 3월에는 신세계몰과 아이러브스쿨 등에서 2000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경찰이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금융권을 정조준했다는 점에서 파장도 클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지금까지 밝혀진 고객 신상정보와 비밀번호 등 대출정보 외에 고객정보가 추가로 유출될 개연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일단 현대캐피탈은 자사와 제휴를 한 리스차량 정비업체가 사용하는 서버에서 고객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자동차 리스 고객이 정비 서비스를 받기 위해 정비업체 사이트에 접속할 때 남은 기록이 암호화되지 않은 채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현대캐피탈 측은 “상품정보 등을 고객에게 주기적으로 보내는 e메일 발송 서버 등 제3의 서버가 추가로 해킹당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유출 피해가 확산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 현대캐피탈 외형 성장만 주력 비판

금융회사들은 자기 회사의 보안 허점이 공개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정보기술(IT) 담당 부행장은 “요즘 해커는 ‘60만 대군’ 수준이라 한 곳을 타깃으로 달려들면 우리가 과연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모든 은행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털어놨다.

현대캐피탈이 현대자동차, 현대카드 등 관계사 고객정보를 기반으로 지난해에만 5115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지만 고객 데이터베이스(DB) 암호화 업그레이드 작업 등 정보관리에는 소홀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 관계자는 “현대캐피탈이 GE의 자본을 끌어들여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고객관리와 고객정보 보호 등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는데, 이번 고객정보 유출로 제휴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GE는 현대캐피탈 지분 43%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이에 대해 현대캐피탈 측은 “암호화 시스템을 개선하는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려다 성능이 떨어진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도입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 제2금융권 전자금융 감독 사각지대

캐피털회사,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은 사실상 전자금융 감독의 ‘사각지대’다. 전자금융 감독규정에 따라 캐피털회사, 저축은행은 실태조사 대상기관에서 제외돼 있다. 일반 종합검사에서도 금융감독원 IT서비스실에 소속된 검사역 11명이 전 금융권 회사를 점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많다. 금감원은 이날 특별검사에 착수해 현대캐피탈 고객의 비밀번호가 암호화됐는지 여부와 서버 운영 실태 등을 살피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대캐피탈 고객의 DB 가운데 로그인 기록 일부가 암호화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어 이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커가 DB를 확보하더라도 암호화돼 있으면 개인정보를 풀어내 악용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암호가 풀린 상태로 DB가 흘러나가면 해커의 손에서 개인정보가 유용될 수 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이건혁 기자 reali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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