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만삭 의사부인’ 사망사건 갈수록 오리무중

  • 동아일보

안방에서 혈흔 2개 발견… 남편과 다투다가 생겼나

‘만삭 의사 부인’ 사망 의혹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남편인 의사 A 씨(31)의 오피스텔 안방에서 혈흔을 발견함에 따라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10일 오피스텔 현장을 다시 정밀 검증한 결과 침대와 이불에서 지름 1∼1.5cm 크기의 핏자국 2개를 새로 발견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은 이 혈흔이 두 사람이 안방에서 다투는 과정에서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유전자(DNA) 감식을 의뢰했다. 감식 결과는 이르면 다음 주초 나올 예정이며 경찰은 감식 결과를 토대로 A 씨에 대해 다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하지만 A 씨 측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묻을 수 있는 핏자국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 욕실에서 발견된 임신부

이번 사건은 지난달 14일 오후 5시경 서울 대형병원 의사인 A 씨의 부인 박모 씨(29)가 출산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숨진 채 발견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어왔다. 박 씨는 발견 당시 옷을 입은 채 빈 욕조에 몸을 반쯤 걸친 상태였다. 남편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 다이어트로 빈혈 증세가 있던 아내가 욕조에서 미끄러져 사망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박 씨의 머리에서는 뒤통수 정수리 부위에 1.5cm가량 찢긴 상처 등 모두 6개의 상처가 발견됐다. 얼굴과 손목 등 곳곳에도 외부에서 가한 힘으로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멍이 있었다. 부인이 사망하던 시간에 휴대전화가 꺼져 있었던 A 씨를 의심한 경찰은 A 씨 얼굴과 상체에서도 손톱에 긁힌 듯한 상처를 찾아냈다. 지난달 31일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박 씨의 사인이 ‘목 압박에 따른 질식사로 보인다’는 소견과 함께 박 씨 손톱 아래에서 A 씨의 DNA가 검출됐다는 결과를 보내왔다. A 씨는 ‘일주일 뒤 있을 전문의 자격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사건 당일 오전 내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댔다.

박 씨의 친정 쪽 가족들은 “사위 A 씨가 게임에 몰입하는 등의 문제 때문에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으나 A 씨 측은 “부부 관계가 좋은 편이었는데 처가 쪽에서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던 것을 심각하게 여긴 것 같다”고 반박하고 있다.

○ 경찰 vs 남편…진실게임?

경찰은 A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4일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A 씨는 “손톱 속 DNA는 평소 아토피피부염 때문에 아내에게 등을 긁어달라고 하는 과정에서 생겼을 것”이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법원은 “사고사의 가능성이 여전히 있고 당사자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다른 증거를 찾아 나선 경찰은 10일 A 씨의 오피스텔을 다시 정밀 검증했고 이 과정에서 안방 침대와 이불 등에서 혈흔을 새로 확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은 누구의 피인지 알 수 없어 증거물을 모두 국과수로 보냈다”며 “숨진 부인의 피로 확인되면 A 씨에 대해 다시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11일에도 안방에서 부서진 스탠드 전등의 일부분을 함께 발견하고 A 씨가 부인과 안방에서 싸움을 벌이다 살해한 뒤 시신을 욕조로 옮겼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 ‘제2의 치과의사 모녀 사망사건’인가?


이번 사건은 1995년 6월 ‘치과의사 모녀 사망사건’과 묘하게 닮았다. 두 사건 모두 의사 부인이 숨졌고 남편인 의사가 용의자로 지목됐기 때문.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아파트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된 모녀의 살인범으로 경찰은 이들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외과의사 이모 씨를 지목했다. 당시 경찰은 이 씨가 평소 사이가 나빴던 아내 최모 씨(당시 31세)와 심하게 다툰 뒤 최 씨와 당시 두 살이었던 딸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하고 집에 불을 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이 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사건 발생 7년여 만인 2003년 대법원은 ‘직접 증거가 없다’며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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