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산,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 등 이용객이 급증하면서 각종 쓰레기가 버려지고 흙길이 무너지는 등 환경훼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등산객이 몰리면서 속리산 버리미기재∼대야산 구간 탐방로 바닥의 나무뿌리가 드러나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모 씨(65·자영업)는 6일 오전 서울 은평구 구기터널 쪽에서 시작되는 ‘북한산 둘레길’을 찾았다. 가을 산길을 걷는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하지만 곧 걷기가 불편해졌다. 탐방객이 너무 많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먼지도 많이 났다. 결국 김 씨는 2km만 둘러본 후 내려왔다. 김 씨는 “등산객이 예전보다 3, 4배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둘레길 즉 ‘수평적 탐방로’(trail)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전국 명소에 각종 둘레길 설치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탐방객’과 너무 많은 ‘둘레길 설치’로 자연이 몸살을 앓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전국 곳곳에 둘레길 설치 중…
현재 환경부 등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개별적으로 수백 km의 둘레길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환경부는 북한산 계룡산 치악산 등 3개 국립공원에 2019년까지 총 770억 원을 들여 둘레길 185km를 조성할 계획이다. 우선 내년 상반기(1∼6월)까지 서울 도봉구, 경기 의정부와 양주 등에 둘레길 32km가 추가로 설치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월악산 등 14개 국립공원을 대상으로 내년까지 둘레길 조성 가능 구간을 조사해 공원별로 최소 1, 2개 구간의 둘레길을 설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뿐만이 아니다.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산림청은 2012년까지 총 1000km의 ‘숲길’을 조성한다. 숲길 역시 ‘수평적 탐방로’로, 둘레길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산림청은 연말까지 한라산숲길 9km, 내포문화숲길 6km를, 내년에는 낙동정맥숲길(60km), 울릉도둘레길(25km)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2012년부터는 백두대간, 비무장지대(DMZ) 숲길 조성이 추진된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까지 가세한 상태다. 문화부는 2014년까지 ‘문화생태탐방로’ 1200km를 조성할 계획이다. 문화생태탐방로란 자연과 함께 해당 지역의 문화, 역사를 함께 체험하게 만드는 둘레길의 일종이다. 문화부는 충북 괴산 충주, 경북 문경의 ‘새재넘어 소조령길’(36km), 강원 강릉 평창의 ‘대관령 너머길’(48km) 등 총 12곳(430km)에 문화생태탐방로 설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도 2014년까지 내사산 서울성곽길과 외사산 서울둘레길을 연결하는 탐방로 조성을 추진 중이다. 인천시도 2013년까지 계양산(계양구 계산동)과 청량산(연수구 청학동)을 묶는 둘레길(12km)을 만들 계획이다. 환경전문가들은 “정확히 집계된 통계는 없지만 전국적으로 약 3000개의 둘레길이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기존 둘레길 속 넘쳐나는 탐방객
북한산, 지리산 등에 둘레길이 설치된 이유는 정상 정복 위주의 등반문화에서 발생하는 자연훼손을 막고 시민들에게 새로운 걷기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였다. 지방의 경우 둘레길 주변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것을 기대했다.
문제는 한국 특유의 쏠림현상으로 탐방객이 너무 많이 몰리기 시작한 것. 북한산 둘레길을 8월 31일 개통한 후 8일 현재까지 117만 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지리산 둘레길 남원코스의 경우 10월 기준으로 30만5000여 명이 방문했다. 지난해(9만 명)보다 3배가 넘는 수치다.
탐방객이 급증하면서 환경훼손이 속출하는 것은 당연지사. 지리산 둘레길 주요 구간에는 생수통, 라면봉지 등이 버려지고 있다. 또 인근 주민들의 논밭에 무단으로 진입하는 탐방객이 많아 ‘농작물 서리 금지’ 등의 팻말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북한산 둘레길도 불법주차, 쓰레기 무단투기, 노상방뇨 등으로 인근 마을 주민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제주 올레길 일부 구간의 흙길은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지나가면서 훼손이 심각하다는 평이 나온다.
○ 국가 차원의 통합 탐방로 설치·관리 계획 세워야
전문가들은 둘레길 설치와 운영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탐방객들이 몰리는 상황에서 부처 간 조율 없이 우후죽순으로 둘레길이 생길 경우 오히려 환경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수식 녹색탐방팀장은 “둘레길 훼손을 막기 위해 올해 안에 시민들과 연계한 자원봉사 시스템을 구축하고 걷기문화 윤리 등 캠페인도 함께 펼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둘레길을 조성하는 것에서 오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통합적으로 관리, 운영하는 국가탐방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문화부 산하 비영리법인 ‘한국의 길과 문화’ 윤정준 운영위원(탐방로 기획 담당)은 “환경부, 문화부, 산림청 등 부처마다 둘레길을 만드는데 이 중에는 겹치는 공간도 많아 예산낭비이자 중복투자”라며 “통일된 둘레길 설치 기준을 만들고 각 부처의 둘레길 계획을 통합해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국가탐방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녹색연합 고이지선 자연생태국장은 “‘몇 년까지 몇 km 개통’이란 식의 목표 지향적 둘레길 설치계획은 무리한 공사를 유발하는 등 환경훼손을 일으킬 수 있다”며 “또 지자체들이 관광효과를 높이기 위해 둘레길 바닥에 나무판을 까는 등 편한 길을 만드는 데 치중해 자연을 훼손할 수도 있는 만큼 여러 사안을 충분히 고려해 둘레길을 설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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