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3부]<5>디지털 디바이드가 세대갈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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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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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자녀와 부모 ‘야간집회 허용 문제’ 2차례 토론실험 해보니…
불통? 정보 편식은 아닙니까?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새로운 정보기술을 활용하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의 ‘정보 격차’를 가리키는 말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사회경제적 격차의 원인이자 결과이지만 때로는 세대 갈등을 낳는 핵심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신세대와 구세대는 정보를 접하는 경로가 다르다. 각자 익숙한 방식으로 정보를 편식하는 것. 이는 각 세대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광우병 파동이나 천안함 폭침사건 등에서 나타난 세대 간 이견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동아일보가 한국 사회 갈등의 현주소를 찾고자 코리아리서치센터(KRC)에 의뢰해 실시한 집단심층면접조사(포커스그룹인터뷰)에서 드러났던 세대 간 갈등도 디지털 디바이드가 중요한 원인으로 꼽혔다.

▶본보 7월 19일자 A4·5면 참조

이에 따라 본보 특별취재팀은 디지털 디바이드가 세대 갈등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살펴보고 해법을 찾기 위해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5명과 그 부모에게 토론실험을 하도록 제안했다. 토론 주제로는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던 ‘야간집회 허용’ 문제를 제시했다.

우선 각자 선호하는 매체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획득한 뒤 토론을 하도록 했다. 대학생 인턴기자는 블로그, 트위터 등 인터넷을 주로 선택했다. 반면 부모들은 신문 방송 또는 ‘주변 사람과의 대화’를 주로 택했고 인터넷에는 별로 의존하지 않았다. 1차 토론이 끝난 뒤 정보수용매체를 서로 바꿔 일주일 동안 관련 정보를 다시 찾도록 한 뒤 2차 토론을 가졌다.

○ 한지붕 두 인종

20대 초반 대학생과 50대 부모 간에는 ‘한지붕 두 인종(人種)’이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큰 차이를 보였다. 인턴기자들은 모두 야간집회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데 반해 부모들은 전원 반대했다.

▽아버지=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아니니? 자유민주주의 질서 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불가피해.

▽인턴기자1=‘야간집회 허용하면 큰일 날 거다’라고 호들갑 떨었지만 그 뒤로 세 번 있었던 야간집회에서 폭력시위는 한 번도 없었어요. (‘작은 콘서트 같은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라고 한 시위 참여자의 트위터 글을 보여주며) 이걸 한번 보세요.

▽아버지=그건 최근 몇 차례의 야간시위에 국한된 얘기잖아. 실제로는 야간시위가 불법으로 이어진 경우가 훨씬 많았지. 그리고 야간집회를 제한하는 건 반국가 세력들이 밤에 시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야.

▽인턴기자1=밤늦게 모여 촛불을 들면 불법으로 변질될 거라 예단하는 것은 잘못이죠. 야간집회 허용 문제를 놓고 종북(從北) 세력을 얘기하는 건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요.

첫 번째 인턴기자의 토론은 평행선을 달렸다. ‘지인들과의 토론’과 신문을 통해 야간집회에 대한 논거를 마련한 아버지는 경험을 앞세웠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숫자를 들이대는 아들을 납득시키기는 어려웠다. 아들 역시 지엽적인 정보와 또래의 감상을 근거로 반론을 제기하는 수준이어서 아버지의 생각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다른 인턴기자의 가족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인턴기자2=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의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경조사도 잦잖아요. 밤 시간을 이용해 집회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어머니=국민 수준이 올라가면 야간시위는 없어져야 해. 어두운 데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아니?

▽인턴기자2=경찰통제선(폴리스라인) 안에서 시위하는 것조차 원천금지 한다면 ‘표현의 자유’ 문제는 어떻게 돼요? 지금이 통행금지가 있는 시대도 아니고요….

▽어머니=낮에 얼굴 드러내놓고 하는 건 좋아. 그리고 통행금지가 있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당당하게 낮에 시위했지 밤에 하지는 않았다.

○ 평행선 달리는 세대 격차

인턴기자 가족들은 일주일 뒤 2차 토론을 가졌다. 부모들은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야간집회에 대한 글을 찾아봤다. 트위터를 적극 활용한 부모도 2명 있었다. 인턴기자들도 주로 신문에서 부모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정보를 찾아본 뒤 토론에 임했다. 하지만 인턴기자와 부모들의 견해는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아버지=인터넷을 보니 야간집회 찬성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별일 없었으니 괜찮은 것 아닌가’라는 논리를 많이 펴더라. 하지만 야간시위가 폭력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요한 거지. 경찰도 ‘만에 하나’를 대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인턴기자3=아버지는 예전 생각이 더 확고해지신 것 같네요.(웃음)

▽아버지=게다가 블로그나 트위터를 보니 루머를 무책임하게 전달하는 느낌이어서 믿음이 가지 않더라.

▽인턴기자3=그렇긴 하지만 블로그나 트위터가 토론을 활발하게 하는 데는 도움이 돼요.

2차 토론을 마치며 부모들은 자녀들이 불확실한 정보에 사로잡혀 편향된 사고를 갖지 않을까 우려했다. “대학생들이 검증되지 않은 흥미 위주의 정보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책이나 신문을 보면서 균형적인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한 인턴기자의 어머니)

반면 대학생 인턴기자들은 매사에 경험을 앞세우는 부모들의 태도에 반감을 드러냈다. “부모님이 ‘경험에 따르면’이라거나 ‘너희는 모르겠지만’이라고 얘기하시면 반발심이 먼저 드는 게 사실입니다. 결국 과거 얘기만 하다 보면 발전이 없는 것 아닌가요.”(한 인턴기자)

○ ‘정보 편식’의 위험

세대 간 갈등은 동서고금을 통해 존재했다. 하지만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수용 방식에 변화가 몰아닥치면서 “쌍둥이 사이에도 세대차가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세대 간 견해차가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부모 세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하는 말들이 첫인상으로는 아주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 사용법만 익히면 자녀들과 대화를 나누기에 훨씬 쉬운 도구라는 것. 심상민 성신여대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젊은층은 통화나 편지보다는 문자메시지나 e메일, 트위터에 편안함을 느낀다”며 “부모 세대가 먼저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자녀 블로그에 안부 메시지를 남기면 서로 간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진다”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가 인터넷 정보만 편식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 중에는 파편적이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주장이 뒤범벅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인터넷에만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 김영석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책이나 신문 방송 등 기존 매체들은 수십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를 종합적 체계적으로 축적해 온 반면 ‘게이트 키핑’ 기능이 없는 인터넷에는 신뢰도가 떨어지는 정보가 많다”며 “다양한 정보를 균형 있게 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디바이드로 인한 세대 갈등 역시 ‘소통’의 문제인 만큼 경험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두진 정보격차해소연구센터장은 “소통을 빠르고 쉽게 하기 위해 등장한 정보통신 기술이 오히려 세대 단절을 가져오는 것은 결국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자주 대화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인터넷 정보 신뢰도는… 자녀들 “60점” 부모들 “40점” ▼
이용시간 자녀가 부모의 2배

신세대와 구세대가 접하는 매체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11명과 그들의 부모 8명을 조사한 결과 두 세대 간에는 선호 매체와 이용 시간에 큰 차이가 있었다.

인턴기자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매체는 인터넷 뉴스와 블로그 등이 꼽혔다. 11명 중 10명이 매일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밝혔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매일 이용한다는 응답도 5명으로 절반가량이었다. 신문과 방송을 매일 접한다는 대학생 인턴기자는 8명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신문이나 방송을 본다’는 인턴기자도 2명이었다.

반면 부모들은 가장 많이 이용하는 매체로 모두 신문과 방송을 꼽았다. 8명 중 6명이 인터넷을 매일 이용한다고 답했지만 젊은 세대와 이용 시간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인턴기자들은 하루 3시간 이상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답했지만 부모들의 평균 인터넷 이용 시간은 1.4시간 정도였다.

인터넷 정보에 대한 신뢰도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인턴기자들은 신문과 방송에 각각 65점과 75점을, 인터넷 정보에 60점의 신뢰점수를 줘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반면 부모들은 신문 방송에는 85점을 줬지만 인터넷 정보에는 40점을 줬다.

실제 부모 세대는 인터넷 정보에 대한 불신감을 강하게 나타냈다. 한 인턴기자의 아버지는 “인터넷 정보는 책임지지 않는 정보가 많아 신뢰할 수 없다”며 “일부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편향적으로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턴기자의 아버지도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은 다분히 추측성이거나 흥미 위주가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턴기자들은 인터넷 정보의 유용성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많이 냈다. 한 인턴기자는 “어떤 정보냐에 따라 신뢰도는 다를 수 있지만 실생활에 더 도움이 되는 정보는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턴기자도 “신뢰성에 차이가 있을진 모르지만 인터넷은 신속성에서는 이미 신문 방송을 월등히 앞선 것 같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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