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구박한 남편 vs 살충제 먹인 아내… 法은 누구 손 들어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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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3일 03시 00분


아내 이혼소송 1심선 기각
항소심은 “쌍방책임” 판결
위자료 청구는 안받아들여

경제권을 꽉 쥐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따금씩 폭력을 행사하며 가부장적 행태를 보인 남편 A 씨. 20여 년간 억눌려 살다 홧김에 남편에게 살충제를 먹인 일 때문에 살인미수로 형사 입건되기까지 했던 주부 B 씨. 진주혼식(眞珠婚式·결혼 30주년)을 1년 앞두고 B 씨는 이혼을 결심하고 소송을 냈다. 법원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줬을까.

1979년 남편 A 씨와 결혼해 2남 1녀를 둔 B 씨는 사업을 시작한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자녀 양육과 가사를 맡아왔다. 집안 살림에 세 아이까지 키우려면 생활비가 적지 않게 들었지만 남편은 돈이 필요하면 자신에게 말해 타 쓰게 하는 등 경제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했다.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B 씨와 아이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거나 “무식하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2005년 5월 어느 날 술에 취해 새벽에 귀가한 남편 A 씨는 욕을 하면서 B 씨를 소파에 밀치고는 거실에 누워 물을 달라고 했다. 분노가 폭발한 부인 B 씨는 방역용 살충제를 그릇에 부어 남편에게 건넸다. 이를 마신 A 씨는 식도협착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아야 했고 B 씨는 이 때문에 살인미수 혐의로 형사 입건됐지만 남편의 선처 요청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처벌은 면했다.

남편은 “모든 걸 용서하겠다. ‘살충제 사건’도 비밀로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약속과 달리 친정어머니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에게 B 씨를 가리켜 “남편을 죽이려고 한 여자”라고 말하고 다녔다. 남편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하면 B 씨는 남편에게 욕을 하거나 때로는 손톱으로 할퀴는 것으로 맞섰다.

마침내 2008년 6월 B 씨는 남편의 통장에서 3000만 원을 인출해 집을 나갔다. 이혼 소송을 내려고 변호사를 만나 상담까지 하자 장성한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며 B 씨를 설득했다. △한 달에 두 번 가족끼리 외식하기 △부부끼리 산행하기 등 부부관계를 회복할 만한 방법을 논의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B 씨는 2008년 8월 남편을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B 씨가 순간적으로나마 남편을 살해하려 한 점 등을 고려하면 혼인파탄의 귀책사유가 남편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B 씨의 일방적인 패배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조경란)는 “남편의 일방적인 경제권 행사, 아내가 남편에게 농약을 먹인 사건 등 혼인관계가 쌍방의 책임으로 더는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된 만큼 두 사람은 이혼하라”고 판결했다고 2일 밝혔다. ‘관계 파탄의 귀책사유가 살충제를 먹인 아내에게 있다’는 남편의 주장에 대해선 “B 씨의 행동은 남편의 독선적인 태도와 지나친 구속 등으로 유발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B 씨가 재산의 절반(16억9000만 원)을 요구한 데 대해선 “A 씨는 재산의 40%인 13억5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재산분할비율을 약간 낮췄고, B 씨의 위자료(1억 원) 청구는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다.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이 양쪽에 있고 B 씨가 살충제를 먹인 일로 남편에게 회복하기 힘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입혔다”는 이유에서다. 이혼 청구는 받아들이되 금전적 보상 부분에서는 B 씨의 책임도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다. 재산분할 대상이 된 A 씨의 재산은 대부분 부동산이었고 B 씨도 부동산으로 받기를 요구했으나 재판부는 “부동산을 공동소유하게 되면 두 사람이 계속 다투게 될 소지가 있는 만큼 재산분할금은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밝혔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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