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받는 노숙자들의 ‘탈 노숙’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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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8일 0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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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일정한 주거지 없이 길거리나 부랑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연 평균 3088명. 이들은 하루하루 떠돈다.

김영호 씨도 3년 전 서울에서 길거리 생활을 하던 노숙자 중 한 명이었다. 2004년 일용직 근로 도중 몸을 다친 뒤 그는 가족과 헤어지고 집을 잃었다. 어떤 희망도 없이 당장 한 끼의 식사와 눈 붙일 공간을 찾아 헤매던 김 씨가 다시 살아 갈 의지와 목표를 가지게 된 건 서울시립 노숙자 요양시설인 ‘양평쉼터’에 생활하면서 부터다.

2007년 김 씨와 같은 양평쉼터 노숙자 15명은 탈 노숙을 목적으로 자발적인 자활영농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시가 임대해준 땅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700수의 장수풍뎅이를 키우고 땅을 일궈 고구마 등의 채소를 재배했다. 장수풍뎅이는 번식을 거듭해 지난해 개체수가 12만수로 불어났고 고구마는 7톤을 수확해 1500만원의 수익을 냈다. 이들이 만든 ‘참살이영농조합’은 지난 2월 서울형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되면서 개인당 80여만 원의 월급도 받고 있다.

3년간 관리한 고구마 밭에 자신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김영호 씨는 “쉼터에 있으면서 농사짓는 기술, 사회 생활하는 방법 등을 배운 게 도움이 됐다”며 “열심히 저축해서 그 돈으로 땅을 사 지금까지 익힌 기술을 이용해 농사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축사육 담당 백승일 씨는 “막바지까지 온 사람들이 새 출발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다 병든 사람들이지만 다들 잘 버티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말다툼이 심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가족 같은 분위기로 있다”고 말했다.

‘참살이영농조합’ 외에도 노숙자로 구성된 서울형 예비 사회적 기업은 3곳이 더 있다. 강원도 화천에서 농사일을 하는 ‘엔젤영농조합’과 8명의 노숙자가 자전거 부품을 모아 재활용 자전거를 기증, 판매하는 ‘두 바퀴 희망자전거’, 재능기부를 통해 기사와 사진을 제공받아 만들어지는 대중문화잡지 ‘빅이슈코리아’가 그것이다.

특히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빅이슈코리아’는 노숙자가 직접 잡지의 유통, 판매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 ‘빅이슈(The Big Issue)’는 1991년 노숙자 일자리 창출을 위해 영국에서 창간된 주간 대중문화잡지이다. 세계 8개국(잉글랜드, 호주, 일본, 아일랜드, 남아공, 나미비아, 케냐, 말라위)에서 독립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오는 7월 5일 창간을 앞둔 월간지 ‘빅이슈코리아’는 자활의지가 높은 40여 명의 ‘빅판’(노숙자 판매사원)을 모집해 잡지 판매권을 부여할 예정이다. ‘빅판’은 처음에는 무료로 10권을 제공받아 그 판매금액으로 한 권당 1400원에 잡지를 공급 받게 된다. 3000원의 판매가격에서 1600원이 ‘빅판’의 수입이 된다.

빅이슈코리아 진무두 판매국장은 “비록 지금은 노숙자지만 자신을 떳떳이 드러내고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자립의지가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며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국민들이 노숙자를 바라보는 편견을 깨는 것과 ‘빅판’들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비록 예비 사회적 기업은 아니지만 여성 노숙자의 자활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노숙인 쉼터 ‘열린여성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일·문화카페’는 여성 노숙자에게 쇼핑백 접는 일 등의 일거리를 제공해 탈 노숙 및 자립, 자활을 도모하고 있다.

서울시 자활지원과 기재일 주무관은 “올해 서울형 예비 사회적 기업 선정이 2차례 남아 있다. 2곳 정도의 노숙자 분야의 사회적 기업에서 문의가 오고 있다”며 “노숙자들을 위한 자활 목적이나 사회복지 문제에만 집중돼 있고 사업계획은 불분명하고 수익모델이 약하다면 사회적 기업으로 진행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2년 동안 지원만 받고 흐지부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숙자들 스스로 기업가 정신을 갖고 제대로 자립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임광희 동아닷컴 기자 oas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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