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차령산맥을 따라서<4>태기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6일 03시 00분


‘태기백운’ 변화무쌍 구름 속으로

느긋하게 내딛던 봉우리들
南으로 꺾이며 1261m 치솟아

물푸레-주목군락 지나면
정상 인근 풍력발전기 위용


《태기산은 강원 횡성군 청일면과 둔내면, 평창군 봉평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홍천군 서석면과도 맞닿아 있다. 오대산에서 시작한 차령산맥이 계방산, 회령산, 흥정산을 지나면서 부드러운 산세를 유지하다 남쪽으로 꺾이면서 솟구치듯 올라온 봉우리다. 높이는 1261m로 횡성군의 최고봉. 그러나 태기산은이 높이만큼 자존심을 지키지 못한 듯하다. 산 정상 부근까지 찻길이 나 있는데다 사람들의 편리를 위한 각종 시설들에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둔내면을 통해 태기산을 찾았다. 산자락까지도 비교적 맑았던 날씨가 해발 980m 높이에 이르자 잔뜩 찌푸렸다. 빗방울도 오락가락 했고,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던 눈이 바람에 날리면서 마치 눈이 내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50m 앞 시계(視界)가 불투명할 정도의 흐린 날씨. 태기산이 자신의 처지를 내보이기 부끄러웠던 것은 아닐까. 태기산 정상 부근에는 여러 개의 풍력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그만큼 바람이 세다는 증거. 통신사 중계소도 있고, 주변 능선을 따라서는 송전탑이 보기 흉할 정도로 줄지어 늘어서 있다. 특히 태기산 정상에는 군사시설이 자리 잡고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태기산 정상은 ‘둔내 11경’ 중 태기백운(泰岐白雲)이라 불릴 정도로 변화무쌍한 구름의 조화가 유명했던 곳. 그러나 아쉽게도 정상 부근에서 풍광을 조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태기산은 눈이 많은 곳이어서 계곡이 연출하는 설경이 일품이다. 물푸레나무, 주목 군락 등 원시식물이 많이 서식하고 낙수대폭포와 어우러진 계곡의 물과 경치가 뛰어나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태기산은 삼한시대 말기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에서 따온 이름이다. 태기왕이 신라군에 쫓겨 이 산에 자리 잡은 뒤 산성을 쌓고 신라군과 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도 태기산 자락 성골 골짜기에는 허물어진 성벽과 집터 등이 남아있다고 한다.

태기산 자락에는 봉평면 안흥동과 둔내면 구두미마을 등이 있다. 주민들은 농사를 짓거나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 3시간 코스의 등산로가 시작되는 구두미마을은 요즘 펜션이 들어서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전체 20여 가구 대부분이 외지에서 들어와 정착한 주민들이다. 이들이 밝힌 정착 이유는 공기가 좋고, 산이 좋고, 사람이 좋아서라는 것. 강원 춘천시에서 살다가 결혼 직후인 1983년 구두미마을로 귀농한 함봉자 씨(51·여)는 “처음에는 포장도로가 없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는데 하루 이틀 살다보니 이제는 너무 정이 들었다”며 “귀농자 대부분이 같은 심경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더덕과 산채 전문 음식점을 운영하는 함 씨는 직접 재배한 산채와 더덕이 어느 곳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청정농산물이라고 특산물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태기산 등산 코스는 여러 개가 있다. 청일면 신대리 송덕사 입구, 봉평면 안흥동, 둔내면 구두미마을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많이 이용된다. 코스에 따라 3∼6시간 정도 걸리므로 적당한 코스를 택하면 된다. 그러나 이달 15일까지는 산불예방을 위한 입산통제기간이다.

산행 후 산채 비빔밥이나 송어회 등을 맛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태기산은 평창 휘닉스파크와 가까워 이곳 숙박객이라면 잠시 짬을 내 들러볼 만하다.

태기산=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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