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결식 충격 딛고 참석… 친구들과 씩씩하게 뛰놀아
각계 학용품 등 답지… 어버이날 편지 쓸 땐 숙연해져
천안함 희생 장병 자녀 6명이 다니고 있는 경기 평택시 원정초등학교에서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전 작은 운동회가 열렸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아버지 김태석 원사를 여읜 큰딸 해나 양(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밝게 웃으며 달리기를 하고 있다. 평택=전영한 기자
《“와!∼ 와∼!”
4일 오후 2시 경기 평택시 원정초등학교 운동장. 출발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적막이 깨졌다. 운동장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긴장한 모습으로 출발선에 섰던 김해나 양(8)은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50m를 달리는 동안 굳었던 표정은 점차 환해졌다. 슬픔을 훨훨 날려버린 듯 보였다.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는 더 빨리 뛰어 하늘에 있는 아빠에게 훌쩍 날아가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김 양은 ‘천안함 46용사’ 중 한 명인 고 김태석 원사(37)의 딸이다.》
○ 46용사 자녀들의 특별한 운동회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46용사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이 학교에서는 운동회가 열렸다. 이어달리기 경기가 시작되자 학생 48명이 뽀얀 흙먼지를 날리며 운동장을 달렸다. 전교생 620여 명은 운동장 곳곳에 모여 앉아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이 학교에는 2학년 김 양과 김 양의 동생 해강 양(7·1학년)을 비롯해 고 남기훈 원사(36)의 아들 재민(12·6학년) 재현 군(10·4학년), 고 김경수 상사(34)의 딸 다예 양(8·2학년), 고 박경수 상사(29)의 딸 가영 양(7·1학년) 등 천안함 46용사의 자녀 6명이 다닌다.
당초 이들은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달 29일 영결식 후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백성욱 교감은 “46용사 자녀 중 일부는 영결식 후부터 시무룩하고 불안한 상태를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아이들에게 다시 웃음을 찾아주고 싶다는 마음에 이들을 학교로 보냈다.
계주가 끝나자 반별 개인달리기가 시작됐다. 46용사 자녀들이 모두 선수로 나왔다. 김해나 양은 6명 중 3등으로 결승선에 도착했다. 김 양의 동생인 해강 양과 박가영 양도 달리기에 나섰다. 박 양은 아슬아슬하게 3등으로 들어온 후 손등에 찍힌 숫자를 내밀며 “원래 3등인데 학교 오빠들이 4등 도장 찍어줬어요”라며 웃었다. ○ 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
운동회가 끝나자 학생들은 교실로 자리를 옮겨 어버이날(8일)을 맞아 카네이션을 만들고 부모님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남재민 군은 친구들에게 “내가 만든 카네이션이 제일 예쁘다”며 자랑했다. 친구들과 떠들고 웃던 이들은 부모님께 보낼 편지를 쓰는 순서가 되자 조금씩 숙연해졌다. 1학년 김해강 양은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담아 꾹꾹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빠, 엄마 사랑해요. 아빠.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너무 아파해요. 제가 엄마에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들릴게요.”
남재민 군의 표정은 어두웠다. 중간 중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달래려 했다. 이날 이들에게는 원정초교 총동문회와 각계에서 동화책, 문화상품권, 학용품 등을 보내줬다.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환한 얼굴로 저마다 미래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김해나 양은 “전 체르니 100번까지 칠 수 있어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동생 해강 양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 가수가 꿈이에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시무룩한 표정이 두드러졌던 남 군은 “나중에 커서 해군이 될 겁니다”라고 말해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한편 학교 측은 46용사 자녀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상담치료를 위해 5일 이 분야 최고 권위자인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 등을 초청해 상담치료를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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