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조석영 검사가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 국제연합 마약범죄사무소(UNODC) 지부에서 근무하던 때의 모습.
“무기력한 검사들에게 수사 의지를 불어넣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국제연합 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요청으로 키르기스스탄에 파견돼 한국의 부패범죄 수사기법을 전해주고 최근 서울중앙지검으로 돌아온 조석영 검사(39·사법시험 40회)의 입술은 6개월간의 힘든 여정을 보여주듯 하얗게 메말라 있었다.
조 검사가 키르기스스탄행을 결정한 것은 지난해 7월. “선진 사법시스템을 배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해외에 한국의 사법시스템과 수사기법을 전하는 것도 배울 점이 많겠다”는 생각이 그를 움직였다. 직접 개발도상국에 가 한국의 수사기법을 전수한 것은 처음으로, 한국이 ‘수사기법 공여국’으로 발돋움하는 첫 단추를 끼운 셈이다.
9시간이 걸려 도착한 낯선 이국땅에서 조 검사는 “첫 한 주간은 곧바로 짐을 싸서 돌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1년 6개월간 진행돼 왔던 UNODC의 ‘반(反)부패수사 역량강화 프로젝트’는 변변한 성과 없이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다. UNODC와 키르기스스탄 검찰 간의 원조 방식을 둘러싼 불협화음도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파견된 대검찰청 반부패수사국(한국의 중앙수사부) 검사들은 최근 10년간 뇌물수수 등 혐의로 부패 공직자를 기소해 본 적이 없었다. 경찰 수사를 지휘하며 연평균 1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게 고작. 수사자료를 캐비닛에 쌓아둔 채 대부분의 시간을 잡담을 하며 보냈다.
조 검사는 고민 끝에 검찰을 상대로 정부와 공무원의 부패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부패가 없어야 나라가 발전한다”며 검사들을 설득했다. 2개월간 밤을 새워 반부패수사 기법을 담은 150쪽짜리 수사매뉴얼을 만들어 전국 검찰청에 배포했고, 매달 2, 3회씩 전국 검찰청을 돌며 2박 3일간 수사기법 세미나를 열었다.
그가 시작한 ‘당신의 ‘NO’가 중요합니다’라는 반부패 캠페인도 현지 공직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수사첩보 수집의 중요성을 일깨워 대검찰청에 범죄첩보부(한국의 범죄정보기획관실)를 신설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의 노력으로 키르기스스탄 대검찰청 반부패수사국은 지난해 7∼12월 경찰 고위공무원 6명, 조달청 공무원 5명, 감사원 직원 2명 등 모두 13명을 기소했다. 전국 검찰의 기소건수도 2배가량 늘어났다. 키르기스스탄 검찰은 지난해 12월 UNODC의 프로젝트가 종료된 뒤 조 검사에게 6개월간 더 머물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새 프로젝트 추진 여부가 불확실한 점 등이 그의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게 했다. 조 검사는 “개발도상국에 한국의 수사기법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당초 형사사법제도가 만들어진 목적과 추구하려는 법의 원칙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UNODC와 함께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의 사법공조시스템인 ‘아시아저스트(Asiajust)’ 설립을 추진하는 한편 검사 등을 해외로 파견해 한국의 수사 노하우를 전해주는 작업도 지속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특히 취임 이전부터 국제사법공조와 검찰 국제화에 관심을 기울였던 김준규 검찰총장의 의지는 강하다. 검찰 관계자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이 수혜자에서 공여자로 바뀌고 있는 만큼 법무 분야에서도 법률 체계가 완비되지 않은 개발도상국가에 대한 지원사업을 꾸준히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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