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철 기자의 인물기행]원조 월드스타 강수연

  • Array
  • 입력 2010년 1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까불지 마라, 따귀 맞는다… ‘깡수연’ 또하나의 도전

끼와 오기, 철저한 배우 근성으로 한국 여배우의 자존심을 지켜온 강수연. 배우 데뷔 40년을 맞은 올해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 올리기’에 출연해 특유의 끼와 카리스마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서영수 전문기자 ☞ 사진 더 보기
끼와 오기, 철저한 배우 근성으로 한국 여배우의 자존심을 지켜온 강수연. 배우 데뷔 40년을 맞은 올해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 올리기’에 출연해 특유의 끼와 카리스마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서영수 전문기자 ☞ 사진 더 보기
네 살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탤런트가 돼 어린이 드라마 ‘번개돌이’ ‘똘똘이의 모험’ ‘고교생 일기’ 등으로 ‘어린이 청소년 스타’가 됐다. 영화 데뷔작은 1976년 이혁수 감독의 ‘핏줄’. 20대 초반에 ‘씨받이’(1987년·베니스 영화제)와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년·모스크바 영화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월드 스타’가 돼버린 배우. 1966년생이니 올해로 벌써 마흔 넷, 배우 데뷔 40년이다. 몇 년, 몇 개월 단위로 수많은 미모의 여배우들이 영화계에서 명멸(明滅)해 가고 있으나 우리에게 여전히 ‘월드 스타’로 기억되는 유일한 여배우, 강수연을 만났다. 새해 들어 그는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 올리기’를 찍고 있다.

―한지(韓紙)를 소재로 한 현대극이라고 들었다. 어떤 역할을 맡았나. 또 ‘여인천하’ ‘문희’ 등 TV 드라마 이후 3년 만의 작품이다. 소감은….

“천 년을 간다는 한지의 우수성을 찾아가는 방송 다큐멘터리 감독 역입니다. 다른 영화보다 50배는 더 부담이 돼요. 팬들의 기대치에 대한 두려움에,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원래 제가 다작은 아니에요. 이전에도 겹치기 출연은 안 했어요.”

―상대 배우가 코믹 이미지가 강한 박중훈이라 ‘조합’이 잘 맞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아니에요. 중훈 씨야말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월드 스타’잖아요.(웃음) 1987년 히트작인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에서도 호흡이 잘 맞았어요. 나이도 동갑이라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요. 우리 둘은 서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웃음)”

―임권택 감독은 배우 강수연에게 어떤 존재인가.

“영화에 앞서 제 인생의 ‘어른’이시죠. ‘씨받이’와 ‘아제아제 바라아제’ 딱 두 작품만 같이했지만 저의 모든 것을 꿰뚫고 계시고, 어떤 고민도 의논할 수 있는 분이세요. 영화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 정말로 많은 것을 배웠고 끊임없이 배울 것이 있는 분이세요. 감독님은 ‘존재’ 자체로 한국 영화계에 힘이 되시는 분이에요.”

그러나 임권택 감독의 ‘배우 강수연’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냉정했다. 임 감독에게 물었다.

―20여 년 전 강수연을 처음 캐스팅하실 때 어떤 점을 평가하셨습니까.

“암팡지면서도 노련하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솔직히 강수연이 ‘월드 스타’로 도약하지는 못하지 않았습니까.

“너무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됐죠. 한국 영화가 요즘 같은 시스템만 됐더라도 정말 큰 배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영화적으로도 자기 관리를 잘 못했어요. 삶의 깊은 것을 건드리는 영화를 했어야 했는데 사랑 얘기에 너무 많은 열정을 쏟았어요. 작품 선택에 결정적 잘못이 있었던 셈이죠.”

―배우 강수연의 인간적 장단점도 많이 아실 텐데….

“우선 통이 크고 의리가 있죠. 부산 동서대에 제 이름을 딴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이 있는데 벌써 4학기째 특강 강사들을 수연이가 다 불러 내려요. 한 번 불러 오려면 몇백만 원 주어야 하는 배우, 스태프를 수연이가 다 데려와요. 그것도 무료로. 특강료는 대학에 기부하고. 나 참, 재주도 좋아.”

임권택 감독 새 작품 출연
박중훈과 23년 만에 호흡

―이번 영화에 강수연을 기용한 배경은….

“몇 해 전부터 여러 영화제를 같이 다녀오면서 ‘너도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너한테 맞는 영화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했고, 본인도 전적으로 수긍했지요. 그래서 강수연한테 맞는 역할이 있다면 같이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번에 적역이 나왔어요.”

―여배우 강수연이 아직 매력적입니까.

“아역이나 청춘 시절의 강수연이 아니라 ‘지금의 강수연’이 갖고 있는 매력을 담아내자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강수연의 미모는 이제 영화에서 더는 매력적일 수 없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강수연이 그 나이에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찾아내는 것이 수연이와 저의 과제입니다.”

과연 임 감독이다. 한국에서 여배우 강수연에 대해 이렇게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배우 강수연은 한국 영화계의 ‘여자 보스’다. 그의 카리스마 앞에서는 아무리 인기가 있는 배우들도 꼬리를 내린다. 설경구 같은 터프 가이도 “누나, 누나” 하며 강수연을 떠받든다. 남녀 배우, 감독, 제작자 등 네댓 명이 강수연과 술로 ‘일전(一戰)’을 벌였다가 모두 ‘전사(戰死)’했고, 어느 덜떨어진 영화 제작자 한 사람이 강수연을 호텔로 불러내 수작을 걸었다가 따귀를 맞은 사건은 전설처럼 회자된다. “사실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그런 사람이 하나둘인가요 뭐”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한다. 그러면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하는 것은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못 받아들인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인터뷰 과정에서 평소 강수연과 기자 둘 다 친분이 있는 변호사와 셋이서 저녁을 먹고 노래방으로 2차를 갔다. 술기운에 기대 조심스러운 질문 몇 개를 던졌다. ‘한 춤’ 하는 그녀는 노래는 가급적 삼간다. 이날은 팬 서비스 차원에서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와 전유나의 ‘너를 사랑하고도’를 불렀다. 장사익이 부르는 ‘봄날은 간다’를 듣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김광석과 심수봉, 빅뱅 등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한다.

―사랑하거나, 지속적으로 만나는 남자는 없나.

“없어요. 진짜예요. 여배우가 이런 소리 하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좀 창피하죠. 이 나이 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사귀는 남자도 없으니. 좋은 감정으로 교제하는 남자가 있으면 절대 숨기지 않겠어요.”

―누구랑 사나.

“여섯 식구예요. 여배우와 강아지 두 마리, 그리고 고양이 세 마리. 강아지는 가족 같고, 고양이는 애인 같아요.”

―남자한테 덴 적이 있거나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닌가.

남친 없어 창피한 마흔네살
고양이 셋 강아지 둘이 식구

“정신적으로 환멸을 느낀 적은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독신주의자는 아니지 않나.

“절대 아니죠. 저는 사람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늙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싶고요. 하지만 결혼은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남자 보는 눈도 높지 않아요. 대시하는 남자가 없었을 뿐이죠. ―나이 들면서 자기 얼굴이 어떻게 변해간다고 생각하나.

“어느 날 갑자기 지난 사진들을 보면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여요. 예뻐지기보다는 근사하게 나이 먹고 싶어요.”

―정말 성형을 한 곳도 안 했나. 거짓말하면 안 된다.

“(자신 있게) 그럼요. 물론 피부 관리나 처치 정도는 하지요.”(사람들은 강수연의 3대 매력 포인트로 이마 눈 입술을 꼽는다. 나는 눈을 제일로 친다. 가까이서 들여다본 사람만이 안다. 빨려들어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배우 이전의 ‘여자 강수연’은 외롭고 허전하다. 그는 배우이기 이전에 생활인이기도 하다. 사업에 크게 실패했던 아버지가 오래 당뇨병을 앓고 있고, 오빠 둘과 여동생이 있다. 그에게는 또 생모와 서모, 두 분의 엄마가 있다. 한때 ‘소녀가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식구들 수발드는 일을 한 번도 불평해 본 적이 없다. 임권택 감독은 “대견하고 불쌍한 아이다”라고 말했다.

―영화나 TV 출연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먹고사나.

“자산이나 통장 잔액이 많지는 않지만 생활을 유지할 정도는 돼요.”

―벌어놓은 돈이 많나.

“제가 돈벌이하고는 인연이 없나 봐요. 얼마 전 이사해 살고 있는 청담동 빌라도 전세죠.”

―스폰서는 없나(강수연은 이 질문의 복합적인 함의를 능히 알아차릴 수 있는 배우다).

“전혀 없어요. 제가 돈을 대줘야 하는 사람만 있지…(이 얘기를 할 때 그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스쳐갔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고등학교 때부터 제가 사실상 가장이었어요.”

―그런 가정환경이 결혼에 장애가 됐나.

“아니에요. 단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을 뿐이에요. 지금은 가족이 다들 자기 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는 제 앞가림만 하고 살아요.”

다시 ‘배우 강수연’으로 돌아가자. 지난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새로 발견한 사실이 있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이 영화제의 ‘대부(代父)’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스크린 뒤에서 이 영화제의 성공을 위해 하루 수십 군데 얼굴을 비치고 밤을 새우다시피 파티장과 술집을 순회하는 ‘얼굴마담’ 세 사람이 있었다. 임권택 감독과 배우 안성기, 강수연이었다. 오전 4시까지 영화인들과의 술자리를 지키다 오전 7시 화장을 말끔하게 한 얼굴로 부산영화제를 참관하기 위해 온 국회의원들과의 조찬장에 나타난 강수연을 보고 나는 정말 감탄했다.

―강수연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답을 안 주는 짝사랑 같은 것?”

―냉정히 말해 ‘월드스타’와는 거리가 있다. 당신의 영화적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1980년대 중후반만 해도 세계 영화계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인지도와 위상이 형편없이 낮았어요. 지금은 저변이 많이 넓어졌고, 좋은 배우도 많이 나오고 있으니 ‘월드스타’가 나올 여건이 됐다고 생각해요. 저는 기력이 있는 한 배우를 하고 싶어요. 75세가 됐을 때 ‘집으로’의 할머니 같은 역할을 하면 정말 좋겠어요.”

‘경마장 가는 길’의 주연을 맡았던 그와의 첫 인터뷰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오밀조밀하게 예쁜 여자가 있나’ 하는 생각에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20대 강수연은 ‘너무 예뻤다’. 그는 한국 영화계에서 너무 빨리, 너무 국제적인 스타가 돼 개인적으로는 피해를 봤다. 그렇더라도 한국 영화계에 강수연 같은 배우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한국 영화는 그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빚졌다.

오명철 기자 oscar@donga.com


▲ 동영상 = 3년만에 스크린으로 복귀… 원조 월드스타 강수연
▼강수연이 말하는 ‘여배우+남배우들’▼


전도연=연기 잘하고 매사 열심이죠. 욕심도 많아요. 일도 살림도 다 완벽주의자예요.

이영애=왜 그렇게 갑자기 결혼했는지 모르겠어요. 저한테 연락도 없이…. 남자분이 무슨 매력이 있겠죠. 행복해야 할 텐데….

김혜수=너무 매력 있는 배우죠. 최근 열애 중이라는데 누가 낫다 밑진다 하지 말고 진심으로 축복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미숙=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화끈 화통한 언니죠. 제게 “연애는 해도 애는 낳지 말라”고 하셨어요.

고현정=연기가 무르익었어요. 앞으로가 정말 궁금하고 기대되는 배우예요.

고소영=너무 예쁘게 생겨서 손해를 보죠. 열애 소식에 정말 깜짝 놀랐어요. 동물병원에서 몇 번 만났는데 전혀 낌새를 채지 못했거든요.

안성기=정말 모범적인 선배죠. 스캔들 한 번 일으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설경구=매력 있죠. 연기 잘하고. 남들은 윤아가 아깝다고 하는데 나는 시집 잘 갔다고 생각해요.

장동건=너무 잘생겼고, 그것이 그 배우의 가장 큰 문제죠. 잘생긴 것만 보이지 연기가 보이지 않으니까.

이병헌=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났죠. 그래서 본인이 힘들 거예요.

하정우=개발 안 된 매력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기대를 갖게 돼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