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폭탄 이후…‘너도나도’ 제설 vs ‘나몰라라’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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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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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착기 동원해 작업… 자원봉사 달동네 눈치워
“집앞의 눈 왜 안치우나” 이웃간에 주먹다짐도

서울에 사상 최대의 폭설이 쏟아진 4일은 서울 시민들의 시민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하루였다. 내 집 앞 눈치우기는 물론이고 자신이 사는 동네 주민들을 위해 하루 종일 봉사한 시민들이 있는가 하면 ‘나 몰라라’ 하고 눈을 방치하거나 싸움을 벌이는 시민들도 있었다.

폭설 속에서 이웃의 정이 빛난 사례는 많았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6동에서 동네 해결사 ‘홍반장’으로 통하는 굴착기 운전사 김진성 씨(39)는 폭설이 쏟아진 4일 자신의 2t짜리 굴착기를 끌고 나와 지하철 7호선 신풍역 주변 인도와 차도에 쌓인 눈을 치웠다. 사방이 뻥 뚫린 굴착기 운전석에 앉아 오전 11시부터 8시간 동안 제설작업을 하느라 김 씨는 속옷까지 눈에 흠뻑 젖었다. 김 씨에게 감사의 표시로 인근 포장마차 주인은 김치찌개를 끓이고 횟집에서는 장어를 구워 조촐한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서울 노원구 월계1동 비탈길에서도 50∼60명이 나와 자발적으로 눈을 치웠다. 채현경 씨(37·여)는 “평소에도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 들 정도로 경사가 심한 언덕길이라 눈이 오면 아예 차가 다닐 수 없다”며 “눈만 오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제설작업을 벌인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주민센터에서 홍릉공원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비탈길은 4일 오후부터 막걸리 배달 차량이 다닐 정도로 깨끗이 치워졌다. 이곳을 깨끗하게 치운 주인공은 마을 주민들이었다. 이곳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임창길 씨(55)는 “눈이 오면 누가 치우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내 집 마당 쓰는 마음으로 도로를 치운다”고 말했다.

홀몸노인 등이 많이 살아 눈을 치우기 어려운 동네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나서서 눈을 치워주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85 달동네에는 언덕 곳곳에 계단이 많아 눈이 내리면 다니기가 쉽지 않지만 주로 홀몸노인이 살고 있어 눈을 치울 사람이 없다. 5일 오후 2시경 마포구 자원봉사센터에서 모집한 성인 및 청소년 자원봉사자 30여 명이 모여 판자촌 골목의 눈을 말끔히 치웠다. 이곳에 사는 박옥순 씨(75)는 “밖에 따로 있는 화장실 문 앞에 눈이 쌓여 이틀 동안 화장실을 쓰지 못했다”며 “기름통이 있는 창고도 눈에 갇혀 보일러도 끈 채 꼼짝 못했는데 그저 고맙다”며 자원봉사자들의 언 손을 쓰다듬었다.

반면 자신의 집이나 가게 앞 눈을 치우지 않아 통행자들이 불편을 겪거나 폭설 속에서도 차를 몰고 나오는 등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눈 치우는 문제로 시내 곳곳에서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5일 집 앞의 눈을 치우는 문제로 시비가 붙은 강모 씨(56·여)와 김모 씨(72)를 각각 상해와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사는 두 사람은 4일 오후 3시 반경 함께 집 앞의 눈을 치우다 김 씨가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을 병원에 데려다 주러 가야 한다”며 일어서자 강 씨가 “눈 치우기 싫어 핑계 대는 것 아니냐”고 따지며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치운 눈을 자기 건물 앞에 버렸다는 이유로 싸움을 벌이다 나란히 경찰 조사를 받은 이웃들도 있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4일 오후 5시 10분경 서울 중구 명동에서 눈을 치우다가 시비가 붙어 폭행한 혐의로 경비원 박모 씨(40)와 의류업을 하는 이모 씨(48·여)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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