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해외 봉사활동을 보낼까요?… 논술학원 다녀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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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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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외고입시안 ‘풍선효과’… 뜻밖의 부작용 속출

서울 강남구 등 진로컨설팅업체에 예비중3 엄마들 장사진
“학생 ‘관찰기록’쓰는 담임교사를 내편으로” 치열한 물밑경쟁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한 중학생 대상 내신 종합학원에서 외고입시 컨설팅을 받는 예비 중2 학생과 학부모의 모습.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한 중학생 대상 내신 종합학원에서 외고입시 컨설팅을 받는 예비 중2 학생과 학부모의 모습.
《“성적이 조금 부족한데…. 해외로 봉사활동을 다녀올까요? 자기소개서를 잘 써야 하니 논술학원에 보낼까요?”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 진로컨설팅업체에는 예비 중3 자녀를 둔 학부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의 손엔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뒀던 자녀의 중학교 내신 성적표, 봉사활동 기록, 독서목록, 수상실적이 들려있다. 입학사정관제로 자녀가 외국어고에 합격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점치러 온 학부모가 대부분이다. 내년 전국 외고 입시가 입학사정관제로 실시됨에 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로컨설팅업체를 찾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
‘부족한 성적을 리더십이나 봉사활동 또는 역경을 극복한 경험으로 만회할 수 있지않겠냐’는 게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외고는 꿈도 안 꿨을 성적의 학생, 학부모가 찾아와 합격 가능성을 높일 ‘플러스알파(+α)’를 찾아달라고 요구한다”면서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엉뚱한 데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이 업체의 고객은 학생, 학부모뿐만이 아니다. 논술 전문학원, 영어, 수학전문학원들의 도움 요청도 부쩍 증가했다. 각 학원에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학부모의 문의가 이어지면서 입시 지도 및 상담이 새로운 ‘교육상품’으로 떠올랐기 때문.

강사들을 상대로 학생을 상담하는 ‘기술’을 강의해 달라거나 진로지도 프로그램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학원들이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게 이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특히 대입 수시 전형에서 논술시험의 비중이 크게 떨어져 ‘힘’을 잃었던 논술학원들 중엔 자기소개서(학업계획서) 작성 지도를 전면에 내세워 ‘외고 입학사정관전형 대비학원’이라고 홍보하는 곳도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외고 입시 개편안을 발표한 직후 가정, 학교, 사교육 업계에서 당초 취지와는 어긋나는 ‘이상 현상’들이 속속 포착된다. 이른바 ‘풍선효과(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툭 불거져 나오는 것처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자 또 다른 문제가 새로 생겨나는 현상)’다.

중1 딸을 둔 주부 김모 씨(40·경기 성남시 분당구). 김 씨의 딸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학원에 다니며 외고 입시 준비를 했다. 김 씨는 입시전형이 영어듣기, 중학 내신 성적처럼 학생의 객관적인 실력을 평가하는 방식에서 실력은 물론이고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포부, 학업계획서처럼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뀜에 따라 입시 전략을 확 바꿨다. 주중엔 영어, 수학학원에 다니며 내신 관리에 힘쓰는 한편 주말엔 남과 다른 봉사활동으로 경쟁력을 쌓는 것.

김 씨는 딸의 학생기록부에 특별한 봉사활동 기록을 남기기 위해 지난 한 학기 동안 남편과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했다. 향후 외고 입시 때 낼 자기소개서에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아 희귀 동식물을 연구·관찰하는 연구소에서 실험 보조 역할을 했다’는 한 줄을 쓰기 위해서였다. 이젠 ‘보육원 일일봉사’ ‘양로원 목욕봉사’처럼 맥락 없는 봉사활동으로는 입학사정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할 거란 게 김 씨의 생각이다.

외고 입시에서 독서이력이 중요해진다는 주위 엄마들의 말에 따라 김 씨는 최근 책 수십 권을 구입하기도 했다. 영어, 수학 학원에 봉사활동까지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 딸을 위해 엄마가 먼저 책을 읽고 중요한 내용만 요약해 주기 위해서다.

내신 성적과 영어 실력만 갖추면 외고에 갈 수 있었던 예전보다 외고 가는 길이 더 험난해졌으니 온 가족이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는 “바뀐 외고입시안은 어렸을 때부터 다채로운 교내외 활동을 꾸준히 해 온 특정 지역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입학사정관들이 평가하는 서류 심사 단계에 ‘학교장 추천서’가 포함되면서 엄마들 사이에선 한정된 추천서를 둘러싼 ‘눈치작전’도 치열하다.

예비 중3 딸을 둔 주부 민모 씨(41·서울 양천구 신정동)는 그동안 쌓았던 교내외 영어대회 수상실적과 영어 내신 성적을 무기로 학교장 추천을 따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내년 1년간 교내외 영어대회엔 빠짐없이 참가해 수상실적을 추가하고, 영어 내신 성적은 상위 1%로 유지하겠다는 것.

단, 평소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학급임원엔 ‘전략적’으로 나서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일단 실력을 탄탄히 쌓아놓으면 향후 학교장 추천을 받지 못할 때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고, 학급임원 경력을 가진 외고 지원자는 매우 흔해 경쟁력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민 씨 자신은 딸이 1학년 때부터 학급임원의 엄마보다도 더 열심히 학교 행사에 참여한다. 최종 학교장 추천이 떨어지기까지 담임교사의 ‘관찰기록’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거란 생각 때문이다. 종종 상담차 학교를 방문할 때도 담임교사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외고를 목표로 공부했다” “오전 1시까지 영어책만 붙잡고 있다. 선생님이 잘 이끌어 달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한다.

민 씨는 “외고를 목표로 한 자녀를 둔 엄마들은 담임교사를 지원군으로 만들기 위해 남모르게 물밑작전을 펼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치밀한 입시전략과 부모의 도움 없이는 학교장 추천서를 따기 힘들 거란 게 엄마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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