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로 노사정 논의가 공전을 거듭하고 있던 지난달 초.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왜 복수노조를 시행해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결사의 자유는 당연한 권리인데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후 노동계와 정부는 복수노조는 2년 반 후인 2012년 6월 시행한다는 사실상 ‘유예’에 합의했다.
복수노조는 유예되고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만 채택된 배경은 뭘까. 올해 복수노조·전임자 임금 문제가 노동계 화두가 되면서 당초 노동계와 정부 간의 논쟁은 ‘복수노조 시행’이 중심이 됐다. 노동부는 지난달 10일 기자들에게 배포한 참고자료에서도 “노조 난립으로 혼란이 일부 생겨도 이를 이유로 결사의 자유인 노조설립을 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당초에는 ‘복수노조는 전면 허용하되 교섭창구는 노사자율로 결정할 것’을 요구했다. 양측의 논쟁은 이 때문에 교섭창구단일화 문제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한국노총이 노노(勞勞) 갈등을 우려해 갑자기 ‘복수노조 반대’로 돌아서자 평행선을 걷던 논의가 급진전됐다. ‘내년부터 복수노조 시행’을 주장하던 노동부는 복수노조 시행을 2년 반 유예해 주고 ‘내년 7월부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라는 노동계의 양보를 얻어냈다. 그 대신 한국노총은 ‘복수노조 시행 사실상 유예’라는 성과를 얻었다는 분석이다. 서로 주고받은 셈이다. ‘당연한 기본권’은 노동부와 한국노총 모두에 협상의 지렛대였을 뿐 진심으로 원했던 사안은 아니라는 것.
협상 초기부터 하나만 얻는다면 노동부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원할 것이란 말이 돌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강경 투쟁, 잘못된 노사관행이 만연한 데는 일은 안하고 노동운동에만 전념하는 노조 간부들이 과도하게 많다는 판단 때문이다. 전임자 임금 지급이 금지되면 노조 간부 수는 대폭 줄 수밖에 없다. 한국노총도 복수노조 허용이 당연한 기본권이어서 찬성했지만 조합원이 수만 명에 이르는 항운노련, 자동차노련 등 산하 산별연맹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돌아섰다. 산별연맹은 겉으로는 노노 갈등을 우려했지만 속으로는 사업장 내의 독점적 지위가 견제 받는 것을 더 꺼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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