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앞바다서 처음 발굴된 고려시대 ‘죽간’엔 어떤 사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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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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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 대장군께 벼 한 섬을 地代로 올립니다”1208년 2월 출항 뒤 난파, 젓갈-가오리-청자도 실려“지방서 올린 조세-공물로 추정 당시 생활상 밝힐 중요 자료”

1208년 2월 전남 해남, 나주, 장흥에서 벼 조 메밀을 실은 배가 개경(현 개성)을 향해 출발했다. 곡물 외에 젓갈, 말린 가오리, 석탄도 실었다. 지방 향리인 송춘(宋椿) 등을 발신자로, 개경의 대장군(종3품 무관) 김순영(金純永), 별장(정7품 무관) 권극평(權克平)을 수신자로 한 대나무 화물표도 첨부했다. 하지만 북상하던 배는 풍랑 탓인지 목적지에 닿지 못하고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2009년 6월, 태안 해저에서 난파한 화물선 한 척이 발견됐다. 배에서는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죽간(竹簡·글씨를 적어 놓은 대나무 조각)이 유물과 함께 나왔다. 800년 전 해양물자의 이동 기록이 이 죽간을 통해 낱낱이 밝혀진 것이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4일 오전 서울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브리핑을 갖고 “4월 26일부터 마도 앞바다에서 수중발굴조사를 해 고려시대 침몰 선박에서 죽간과 목간(木簡) 64점, 여러 종류의 곡물, 도자기 등 1400여 점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고려시대의 죽간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도 1호선’이라고 이름 붙은 배는 길이 10.8m, 중앙 폭 3.7m 규모로 이달에 인양할 예정이다.

죽간과 목간에는 정묘(丁卯) 10월, 12월 28일, 무진(戊辰) 정월, 2월 19일 등 간지와 날짜가 표시돼 있다. 성낙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은 “화물의 선적 일자로 보이는데, 이에 따르면 선박은 2월 19일 이후 출항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죽간을 보면 해남 나주 등은 당시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화물의 발신지는 죽산현(竹山縣·해남), 회진현(會津縣·나주), 수령현(遂寧縣·장흥) 등으로 나타나 있다. 특히 ‘대장군 김순영 댁에 벼 한 섬을 올린다(大將軍金純永宅上田出租壹石)’는 죽간의 내용에서 여러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김순영은 사위인 김준거가 군사정변을 꾀하자 이 사실을 당시 집권자인 최충헌에게 알려 1199년 장군으로 승진했다. 김순영의 행적을 고려할 때 죽간에 나오는 정묘 무진년은 각각 1207년과 1208년에 해당하며, 따라서 배는 1208년 출항한 것을 알 수 있다.

최연식 목포대 사학과 교수는 “죽간에 나오는 전출(田出)이란 말을 보면 곡물은 당시 토지의 소유나 운영권을 가졌던 개경의 실력자에게 지방에서 지대(地代)나 조세(租稅)를 올렸던 것으로 볼 수 있고 함께 기록된 젓갈, 생선 등은 공물(貢物)로 추정된다”며 “이번 유물은 고려시대 경제제도를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승반(받침접시), 2개의 투각 받침대가 한 묶음인 청자상감표주박모양 주전자가 함께 발굴됐다. 이 청자는 보물급으로 평가받는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600여 년 만에 모습 드러낸 ‘비색 청자기와 건물’
태안 마도 앞바다 고려 화물선 발굴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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