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10월 12일 02시 57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마을 90%이상이 폐허… 부서진 집 앞서 망연자실
주민 대부분 지진 후유증
10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주도인 파당 시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반 남짓 떨어진 파당파우 마을. 건물 대부분이 폭삭 주저앉았고 서있는 건물에도 곳곳에 금이 가 있어 온전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마을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서는 무너진 벽돌더미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 마을 전체 250가구 중 90% 넘는 가구가 지진으로 피해를 봤다.
철없는 아이들은 부서진 집 사이를 위태롭게 뛰어다녔다. 주민들은 휴지처럼 짓이겨져 잔해만 남은 집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손을 놓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 앞에서 놀고 있었고 전 혼자 집에 있었는데 갑자기 땅이 위아래로 흔들려 그냥 정신없이 밖으로 뛰쳐나왔죠. ‘우리 아이들은 어떡하나’ 생각하는 순간 아찔했습니다.”
무너진 지붕과 하얀 벽돌더미 위로 가재도구가 산산조각난 집터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있던 칸세루다 씨(45)는 기억하기 싫은 순간을 떠올리면서 몸서리를 쳤다. 초등학교 3학년 다스마(9)는 “집 근처에서 놀고 있다가 세상이 흔들리는 느낌에 기절할 뻔했다”고 말했다.
‘기아대책’ 긴급구호팀이 마을 한가운데에 임시진료소를 세우자 마을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외국인 의사들이 치료를 해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어른들도 가족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도시에는 그래도 재건작업도 진행된다고 하던데 이곳 시골은 언제쯤 집을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이들 공부도 시켜야 하는데….”
어느덧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비슷한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주민들은 중장비가 없어 건물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일부 주민은 망치로 임시 건물이라도 세우려고 했지만 자재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된 짧은 진료에도 이날 하루 80여 명의 환자들이 진료소를 찾았다. 고혈압 등 만성질환 환자도 있었으나 진료소를 찾은 마을 주민 대다수는 ‘두통’이나 수면장애 등 지진 후유증을 호소했다. 노인들도 많았지만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머리가 아프고 잠이 잘 오지 않는다”며 진료소를 찾은 마을 부이장 미젠 씨(32)도 “지진으로 마을에서 세 사람이나 사망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멀리 한국에서 찾아줘 감사하다”며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는 인도네시아에서 ‘존경한다’라는 의미. 마을 사람들은 감사의 뜻으로 방금 나무에서 딴 코코넛 10여 개를 진료소에 가져와 “꼬레아, 꼬레아”를 연달아 외쳤다.
‘기아대책’ 긴급구호팀의 일원으로 응급진료에 참가한 오승민 가정의학과 전문의(32·연세대 세브란스병원)는 “지진이 일어난 뒤로는 밤마다 혹시나 또 같은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 눈이 잘 감기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들에게 정신적인 상담을 좀 더 해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기아대책 일행은 10일 진료에 이어 12일 포스코의 지원을 받아 속옷과 의약품으로 구성된 긴급구호 키트 1000개를 파당파우 마을 등 피해지역에 지원할 예정이다. 후원 문의는 기아대책 전화(02-544-9544) 또는 홈페이지(www.kfhi.or.kr) 참조. ARS는 060-700-0770(통화당 2000원).
파리아만(인도네시아)=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