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성폭력범 ‘화학적 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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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8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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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성범죄 사건이 알려지면서 모두가 분노합니다. 자녀를 둔 부모를 포함해 모두가 불안해합니다. 이런 분노와 불안은 성범죄자를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집니다. 아동청소년 성폭력범의 재범을 막으려면 ‘화학적 거세’를 통해 성기능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성욕에 관계하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약물이나 여성호르몬 주입으로 차단하는 방법이 성폭력을 막는 데 효과가 있는지 짚어 봤습니다.》
[찬]약물로 정신질환 고치자는 것
‘거세’ 용어에 과민반응… 전자발찌론 한계

참혹한 아동성폭력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국민은 분노했고 정부는 대책을 약속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학상의 문제”라는 스탈린의 말처럼 불안에 떠는 잠재적 피해자와 850만 명에 이르는 부모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린 적이 없었다.
작년에 발의했지만 전혀 빛(?)을 보지 못하던 일명 ‘화학적 거세법’에 대해 논란이 이는 모양이다. 법안에 대한 관심과 비판은 고맙지만 자세한 내용은 묻지도 않고 거세(castration)라는 용어에 방점을 두면서 인권침해라고 비난하는 분에게 서운한 감이 없지 않다
우선 이 법안은 남자의 성기를 외과적으로 거세하는 내용이 결코 아니다. 쉽게 말하면 일시적으로 호르몬 주사를 놓자는 얘기다. 치료방법으로 주사를 맞는 것과 차이가 없다. 둘째, 본인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성폭력범죄자는 소아성 기호증 등 정신질환의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런 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우고 형량을 수십 년 부과한다고 범죄가 근절되리라고 기대하는가. 최근에도 아동성폭력 사범이 꾸준히 증가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감옥 격리 망신 같은 아이디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셋째, 이 요법은 영구히 장애를 초래하지 않는다. 호르몬 요법으로 치료가 끝나면 성적 능력이 회복된다. 이 방법이 인권침해라면 우울증이 심한 사람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정신과 의사는 매일 인권침해를 하는 셈이다. 넷째, 이 법안은 심리 및 행동치료를 병행하는 내용을 담는다. 범죄자를 엄벌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치료의 대상인 환자로도 인식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즉 범죄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배려하는 법안이다.
법안 반대론자들은 왜 조두순 같은 사람을 50년, 100년씩 독방에 가둔다고 할 때는 침묵하다가 약물로 치료하는 방법에는 그렇게 흥분하는지 답답하다. 인권침해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겠지만 성폭력범죄자를 치료하는 노력을 포기한 채 독방에 그냥 가두어두는 방법이 훨씬 반인권적이라는 것이 검사로서 10여 년의 세월을 보낸 나의 솔직한 느낌이다.
인권 선진국이라는 미국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에서 오래전부터 화학적 거세법을 시행해오고 있지만 인권침해로 큰 문제가 됐다는 보도는 듣지 못했다. 오히려 더 많은 나라와 지역에서 이런 법을 도입하려는 추세임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거세라는 용어의 잔혹성에서 해방되어 그 안에 있는 소중한 고민의 내용들에 천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화학적 거세법이 완벽한 대책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성폭력으로부터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하는 훌륭한 무기를 또 하나 갖는 셈이다. 진지한 토의를 기대한다.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
[반]‘약자 불안’ 줄일 근본대책 안돼
‘성폭력〓성욕의 산물’ 잘못된 인식 우려

이른바 ‘조두순 사건’은 성폭력이 어떤 폭력과 상처를 동반하는지 세상에 알리면서 국민에게 분노와 충격을 주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시민의 자발적인 움직임은, 이미 지난해 발생했던 사건과 끝나버린 재판 앞에서 무력감마저 느끼기 때문이다. 커지는 국민적인 분노를 두고 정부와 정치권은 여러 대책을 내놓는다. 그러나 불신 또한 깊다.
법은 이제까지 꾸준히 수위를 높여왔다. 21년 전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 십수 년간 성폭력을 저지른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을 통해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지난해 아동성폭력 살해사건을 거치면서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강간치상은 무기형까지 선고하도록 법정형을 높여왔다. 신상 공개와 전자장치 부착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법을 개정하고 정책을 만드는 일은 꾸준히 있었다.
문제는 이 법을 잘 적용하는가이다. 성폭력 가해자의 95%를 차지하는 남성은 강력해진 법 앞에서 자신의 행동을 성찰했을까. “나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강력한 편견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아동성폭력의 70% 이상은 아는 사람, 가족, 이웃에 의해 발생한다. 이런 점을 노려 나를 잘 따라서, 쓰다듬어 주려고, 술에 취해서, 아이인데 뭐 어떠냐는 가해자의 인식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나오고,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다.
피해자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의 말보다는 가해자의 말에 더 익숙한 세상이라는 사실은 성폭력 고소율이 10% 미만이라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아동성폭력을 수사기관에 의뢰해도 아이의 말보다 성인 가해자의 말에 더 익숙하므로 가해자는 아동이나 청소년 피해자의 진술신빙성을 공격하기가 매우 쉽다. 아무리 강력한 법이 생겨나도 여성과 약자의 공포와 불안이 줄어들지 않은 이유는 법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 주리라는 확신이 없어서다. 법을 적용하고 시민의 가까이에 존재하는 과정에서 먼저 편견을 깨려는 노력이 없이는 어떤 법도 무용지물이 된다.
이른바 화학적 거세, 성폭력범에 대한 약물주입 법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법은 성폭력이 성욕 때문이므로 성욕을 잠재우면 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성폭력을 성욕의 산물로 보는 편견은 가해자가 쉽게 범행을 저지르고 쉽게 면죄부를 받게 만든 논리다. 일정기간 호르몬을 억제하면 약자에게 성적 폭력을 휘두르는 환경이 사라질까. 성폭력은 성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강자가 약자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방식이므로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대안을 요구한다. 근본적인 대책을 함께 고민하지 않고서는 이 법이 다시 가해자 중심의 편견을 확산할까 우려스럽다.
김민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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