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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9월 25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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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기술 개발은 실패가 많은 사업입니다. 사고가 안 나는 게 오히려 기적입니다. 이번 실패를 교훈 삼아 끈기 있게 추진해야 합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항공연구부문 총책임자(국장보)인 신재원 박사는 8월 25일 발사된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를 둘러싼 논란에 이렇게 충고했다. 지난해 2월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NASA의 서열 3위 자리에 발탁된 신 박사는 24일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그는 제3회 세계 한인의 날(10월 5일)을 맞아 외교통상부의 재외동포 저명인사 초청 강연회에 참석하려고 방한했다.》
―한국인이 진출하기 어려운 곳 중 하나가 NASA이고 고위 관리직 진출도 쉽지 않다는데….
“동양인들은 과학자나 기술자로서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관리직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 또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다 보니 관리직에는 아예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 NASA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이런 기류는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
―보통은 연구직에서 성과를 못 낸 사람들이 관리직으로 옮기곤 한다는데, 1994년 항공기 사고 관련 연구 업적을 인정받았는데도 관리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큰 그림 속에서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만족하는 나의 개인적 성향이 관리직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연구직은 자기 일만 하면 되지만 큰 그림을 보지는 못한다. 또 동양인이 관리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획일적인 생각을 누군가 한번은 깨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장보는 어떤 일을 하는 자리인가.
“전체적으로 그림을 그려본다면 각종 기관과 협의를 많이 해야 하는 자리다. 백악관 과학기술부서의 책임자인 대통령과학기술고문과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백악관 관리예산국과 항공연구부문의 예산 규모를 협의하기도 한다. 의회가 열리면 하원 과학분과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NASA의 항공예산 및 운영에 대해 답변해야 한다. 의회 관계자들에게 업무 설명도 한다. 또 미국 전역에 흩어진 4개의 NASA 연구센터를 방문해 당초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하는지 감독하기도 한다. 기업 접촉, 국제회의 참석 등이 많고 세계 각국의 에어쇼에도 참석한다.”
―현재 항공 안전은 어떤 수준인가.
“현재 전 세계 비행기의 이착륙 횟수와 항공사고 기록으로 보면 내가 오늘부터 매일 한 번 비행기를 탄다면 9000년에 한 번 정도 추락사고가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비행기 사고가 발생하면 철저하게 조사해 두 번 다시 같은 사고가 안 나도록 조치한다. 그래서 같은 사고는 거의 없다. 항공안전 기록은 ‘피로 얼룩진 기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제는 여기서 한 단계 발전해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알아내는 기술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미래 과학자를 꿈꾸며 NASA와 같은 세계적인 우주연구기관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조언한다면….
“무엇보다도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미국에 도착한 뒤 각종 프로젝트 과제물로 어려움을 겪었다. 책에 나온 공식을 이해한다고 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교과서를 보고 하는 것이었으면 잘했을 텐데…. 그런 경험 때문에 한국 교육이, 특히 과학기술 분야의 교육이 종합적인 문제해결 능력과 창의력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바뀌면 좋겠다. 젊은 학생들이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면 NASA뿐 아니라 더 좋은 기관에도 들어갈 수 있다. 또 하나는 사명감을 가지라는 것이다. NASA에는 기업에서 환영받을 사람들이 적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사명감으로 즐겁게, 또 자발적으로 일하고 있다. 예전에 ‘아폴로 13호’라는 영화를 보면서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눈물을 흘린 이유가 서로 달랐을 텐데….
“영화 ‘아폴로 13호’에는 각자가 맡은 일을 위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기가 할 말은 하고 자기 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극한 상황에서 우주인을 구해내는 광경에서 저런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또 당시 아폴로 13호 우주인들과 함께 일했던 분들이 있다. 그분들은 NASA가 생긴 지 50년이 지나면서 과거의 정신이 사라지고 관료화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재외동포로서 성공한 비결은….
“성공 비결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제 개인적인 삶의 기준이 있다. 우선 안과 밖이 똑같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고 남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인기를 얻는 대신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또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관리자가 실수하는 이유는 자신의 실력이나 성향을 부하 직원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다.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 너는 왜 못하느냐’고 얘기하는 것은 조직을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자동차도 4기통, 6기통, 8기통이 각각 다르다. 4기통의 실력을 가졌지만 나중에는 8기통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사람에게 미리 8기통에 해당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은 불공정한 처사다. 좋은 관리자는 직원의 능력을 빨리 파악해 적합한 업무를 주고 최선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나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졌고 급할 때 도와줄 사람들이 좀 생겨났다. 그게 가장 큰 자산이다.”
―NASA 생활 20년 동안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했나.
“기회가 올 때 어려움도 같이 왔다. 1994년에는 콩코드 후속으로 200명 넘게 탑승할 수 있는 초음속 여객기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당시 초음속 엔진부분을 개발하던 글렌리서치센터의 프로젝트 부책임자로 가게 됐다. 그때 ‘비행기 결빙을 연구하는 사람이 왜 그 자리에 가느냐’는 비난과 질시가 이어졌다. 소수 동양계에 대한 특혜라는 얘기도 나왔다. 당시 나를 뽑아준 분이 ‘이제부터는 어항 속의 물고기라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의 질시를 받는 자리에 올라가니 실력으로 인정받을 때까지는 신중하게 처신하라는 얘기였다.”
―고의적인 악성 루머도 있었다던데….
“경쟁자이던 여성이 내가 동양 남자여서 여자를 함부로 대한다고 말했다. 회의 시간에는 자기의 의견을 묵살한다는 악의적 소문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다 보니 그런 악성 루머는 사라지게 됐다.”
―재외동포들의 고위직 진출 등 성공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이민 역사가 다른 나라보다 짧다. 이민 초기에는 모두가 힘들기 때문에 자기 가족만 생각하곤 했다. 이제는 젊은 세대들이 등장하면서 바뀌고 있다. 나만 잘사는 것보다는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사명감이 없으면 힘든 분야는 물론이고 연예계 법조계 정계 학계로도 많은 한국인이 진출하는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NASA 서열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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