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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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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의 시작 - 인간의 감정이란?
「“아직까지 그 울음소리가 쇠나 돌에서 짜나온 듯하여 천지에 가득 찼다는 것이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칠정(七情) 중에서 ‘슬픈 감정(哀)’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 알았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를 겝니다. 기쁨(喜)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노여움(怒)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樂)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사랑(愛)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미움(惡)이 극에 달하여도 울게 되고, 욕심(欲)이 사무치면 울게 되니, 답답하고 울적한 감정을 확 풀어 버리는 것으로 소리쳐 우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소이다.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뇌성벽력에 비할 수 있는 게요. 북받쳐 나오는 감정이 이치에 맞아 터지는 것이 웃음과 뭐 다르리오?”
[고등학교 문학, 박지원 ‘통곡할 만한 자리’]」
조선의 실학자 박지원은 중국을 여행하던 중, 드넓은 세계를 접한 기쁨을 ‘울음’으로 표현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감정이든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나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쁠 때나 사랑할 때의 울음 등 모든 감정의 발로로서 울음을 옹호하는 박지원. 우리는 박지원의 호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이참에 인간에게 감정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 일반적으로 우리는…
유학에서 중용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으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음을 뜻하는 개념이다. 중용의 중(中)은 치우치지 않음(不偏不倚),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음(無過不及), 희로애락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喜怒哀樂之未發)를, 용(庸)은 변함없이 평상심을 유지하는 상태(平常, 不易)를 뜻한다. 서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이란, 이성에 의해 일상생활에서 충동, 정욕, 감정 등을 억제함으로써 한쪽으로 치우치기 않으려는 의지다.
이들의 말대로 어찌 보면 일상적인 희로애락은 성찰을 거치지 않은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감정이어서 깊이도 없고 지속성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고결함의 가치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박지원의 통곡은 이러한 지향점과는 거리가 먼 일탈적 감정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여전히 추구해야 하는 방향은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한 성찰 아닐까.
○ 요즘 우리는…
오늘의 우리는 감정결핍이 일상화된 삶을 살아간다. 감정을 얼마나 잘 감추고 통제하는가가 성공적인 사회생활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특히 서비스업이 강화되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이제 느끼는 대로 표현하기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감정을 표현하도록 훈련받는다. 또 그러한 감정노동으로 대가를 지급받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의 이성은 더 나은 생존을 생각한다면 자본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감정을 판단하고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자연스러운 인간성의 발로인 희로애락애오욕은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한편, 아예 감정이 없어서 사회에 치명적 위협이 되는 존재도 있다. 사이코패스는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공감무능력자를 말한다. 즉 그들은 미안함도 죄책감도 후회도 느끼지 못한다. 감정은 결핍되어 있지만 이성은 정상이어서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결여가 문제시되지 않는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승승장구하는 능력자로 살아가기도 한다.
○ 그것뿐일까?
자연스럽지 못한 감정이든 아예 감정이 없든, 인간다운 삶과 멀어진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인류가 ‘이성’의 힘으로 다른 동물에 대해 존재론적 우위를 차지해오는 과정에서 ‘감정’은 과연 별 의미가 없었을까? 오히려 인간이 더욱 인간다울 수 있는 조건, ‘나’ 개인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행복하기 위해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더 큰 힘을 보여준 것이 바로 인간의 감정은 아니었을까? 인간으로서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타인의 아픔에 대해 연민할 수 있다면, 당연한 가치들이 짓밟힐 때 분노를 느끼고 그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면, 그런 감정들은 좀 넘쳐나도 괜찮은 시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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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윰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