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0억 횡령금’ 카지노서 돈세탁 의혹

  • 입력 2009년 7월 20일 02시 56분


동아건설 자금부장 기록 안남게 소액환전 정황

‘회사수표 → 카지노 칩 → 현금’ 바꿨을수도

동아건설 자금부장 박모 씨의 890억 원 횡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광진경찰서는 19일 박 씨가 횡령한 돈 가운데 약 100억 원이 강원랜드로 흘러 들어간 사실을 수표 추적으로 확인했다. 경찰은 또 횡령액 중 50억 원은 박 씨가 신한은행 계좌에 있던 회생채무변제금에 손대기 이전에 빼돌렸던 또 다른 회사 돈을 메우는 데 사용한 사실도 밝혀냈다.

경찰은 현재까지 사용처가 확인된 150억 원 외에 나머지 740억 원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경찰과 금융권에 따르면 박 씨는 신한은행 계좌에 있던 동아건설의 회생채무변제금 중 890억 원을 동아건설 명의의 하나은행 계좌 2군데로 분산 이체한 뒤 대부분의 돈을 수표로 인출해 갔다. 그 전에 빼돌린 회사 자금을 ‘돌려 막기’ 위해 50억 원을 동아건설의 다른 계좌로 이체했고, 1억5000만 원을 현금으로 인출한 것 외에 나머지는 모두 수표로 인출해 하나은행의 2개 계좌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수표로 인출된 뒤 강원랜드에 있는 은행 지점으로 흘러들어간 100억 원도 박 씨가 자금세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강원랜드에 따르면 박 씨는 동아건설의 회생채무변제금을 빼돌리기 시작한 올해 3월부터 최근까지 약 70회에 걸쳐 강원랜드 카지노에 출입했다. 평일에는 강원랜드에서 제공하는 이른바 ‘VVIP’ 전용 차량으로 강원 정선군에 있는 카지노로 이동해 다음 날 새벽 다시 이 차량으로 회사로 출근했다.

박 씨의 부인은 “남편이 2억 원 이상의 칩이 있어야 입장할 수 있는 VVIP 룸에서 한번에 3000만 원씩 베팅했다”고 진술했지만, 박 씨가 카지노에서 환전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강원랜드 카지노는 2000만 원 이하의 돈을 칩으로 바꾸거나, 게임을 하고 남은 칩을 다시 돈으로 환전할 때는 교환하는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는다. 경찰은 박 씨가 카지노에서 수표를 칩으로 교환한 뒤 다시 칩을 주고 현금을 받는 수법으로 자금세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박 씨가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것처럼 흔적을 남기기 위해 일부러 수표를 갖고 가서 환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박 씨가 강원랜드에서 수표로 칩을 바꾼 뒤 게임은 전혀 하지 않고 현금으로 바꿨을 경우 추적이 아예 불가능한 ‘꼬리표 없는 돈’ 100억 원을 빼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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