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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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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두물다리 ‘청혼의 벽’
워터스크린-황금마차 제공
잠실구장-어린이대공원도…
“5∼6월엔 예약 서둘러야”
두 손을 꼭 잡은 한 쌍의 연인이 청계천을 따라 천천히 걸어왔다.
박정연 씨(36)는 하트 모양의 조명이 켜져 있는 무대로 여자친구 정민경 씨(35)를 안내했다. 박 씨의 권유에 따라 정 씨가 하얀색 ‘시작’ 버튼을 누르자 은은한 조명과 함께 세차게 물줄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조금씩 너에게 다가가 날 고백할거야.” 박혜경의 ‘고백’이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500인치 워터스크린에 두 사람의 어릴 적 모습을 담은 사진이 슬라이드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사랑을 믿기에 함께하고자 합니다. 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워터스크린에 박 씨가 준비한 문구가 떠오르자 정 씨는 수줍은 듯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마침내 고백의 시간. 박 씨가 쭈뼛쭈뼛 걸어 나가 마이크 앞에 섰다.
“내가 부족한 게 많지만 마음만은 진심이에요. 민경 씨, 사랑합니다.”
떨리는 손길로 준비해온 꽃다발과 반지를 건넸다. 초록색 ‘승낙’ 버튼과 빨간색 ‘거절’ 버튼 사이에서 정 씨는 웃으며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순간 조명이 바뀌고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짧은 입맞춤.
지난달 29일 청계천 두물다리 ‘청혼의 벽’에서 이뤄진 박 씨의 청혼은 대성공이었다. 박 씨는 “청계천에 청혼하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뉴스에서 본 뒤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했다”며 “여자친구가 만족해하는 것 같아 행복하다”며 웃었다.
청계천 두물다리에 설치된 청혼의 벽은 2007년 12월 설치된 뒤 단박에 서울의 대표적인 프러포즈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청계천 관리를 맡고 있는 서울시시설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청혼의 벽을 거쳐 간 연인은 모두 300여 쌍. 이벤트 관리를 맡고 있는 차재운 팀장은 “지금까지 청혼의 벽을 거쳐 간 커플 중 ‘거절’을 누른 경우는 한 번도 없었고, 다만 한 여성분이 아무 버튼도 누르지 않고 그냥 간 경우는 있다”며 “5, 6월에는 예약이 많은 시기니 서두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500인치 워터스크린, 사진촬영을 위한 황금마차,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사랑의 자물쇠’, 사랑의 문구를 동판에 담아 전시하는 ‘언약의 벽’까지 모든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청계천 산책을 나온 시민들의 축복은 덤.
더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청혼하고 싶다면 경기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잠실야구장을 사용하는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구단은 모두 프러포즈 이벤트를 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프로축구 FC 서울 구단 역시 프러포즈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구단은 5월 홈경기 때 한 쌍의 커플에게 프러포즈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도 사랑을 고백할 수 있다. 시는 5일 리모델링을 마치고 문을 연 어린이대공원에 ‘음악분수’를 마련해 청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