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비리에 명패 던진뒤 20년… 비리혐의로 檢조사 받아

  • 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 盧 좌충우돌 정치인생

지역주의 맞서 힘겨운 도전 ‘盧風’ 일으켜

위기 처할 때마다 깜짝 카드로 정면돌파

검찰서 ‘특권과 반칙 없이’ 진실 밝힐지…

30일 퇴임 1년 만에 검찰에 출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은 끝없이 좌충우돌하며 도전과 좌절을 반복하는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무소불위 권력의 중심까지 이르렀지만 이제 비리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추락한 지금 그는 지난 60여 년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반추하고 있을까.

노 전 대통령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1981년 부림사건 변론을 시작으로 인권변호사의 길에 들어선 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주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88년 13대 총선 때 김영삼(YS)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공천을 받아 정계에 입문한 그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드러내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89년 12월 열린 전두환 전 대통령의 5공 비리 및 광주항쟁 청문회 때 전 전 대통령을 향해 의원 명패를 집어던지는 사건으로 ‘청문회 스타’가 됐다. 이어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면서 YS와 결별한 뒤 그는 YS의 ‘텃밭’인 부산에서 1992년 총선,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19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2000년 16대 총선에선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종로를 내던지고 한나라당의 아성인 부산으로 뛰어들었다. 결과는 낙선. 하지만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바보이기를 자청한 용기’ ‘남들이 가길 꺼리는 길을 고집스럽게 가는 바보’ 같은 글이 쇄도했다. 팬클럽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결성된 것도 이때다.

2002년 봄 그가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설 때 정치권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폄훼했다. 그를 지지하는 현역 의원도 단 한 명(천정배)뿐이었다. 하지만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란 구호와 노사모의 열광적인 지원, 정치개혁의 상징물처럼 간주됐던 ‘희망돼지 저금통’ 등은 거센 노풍(盧風)을 일으켰다.

노 전 대통령은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피하지 않고 ‘깜짝 카드’를 던져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2002년 3월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경쟁 후보가 장인의 좌익 전력(前歷)을 문제 삼자 “대통령 되려고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는 대응으로 상황을 역전시켰다. 2003년 10월 측근인 최도술 대통령총무비서관이 ‘대선 축하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을 때는 “재신임을 받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2005년 8월 국가보안법 폐지 등이 난항을 겪을 땐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는가 하면 2007년 4월 임기 말 권력 누수에 부닥치자 연임제 개헌을 제안하는 등 끝없이 상대의 허(虛)를 찌르는 승부수를 던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도덕성을 강조했다. 2002년 12월 대통령 당선 직후 그는 “이권 개입이나 인사 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을 시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측근들의 비리 혐의가 드러나면 “사실과 다르다”고 맞서며 ‘이중 잣대’를 들이댔다. 2003년 12월 불법대선자금을 쓴 사실이 드러나자 “한나라당이 쓴 불법대선자금의 10분의 1보다 더 썼다면 (대통령직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10분의 1밖에 안 받았는데 무엇이 문제라는 것이냐’는 식의 강변이었다.

이 같은 기질은 퇴임 후에도 계속됐다. 지난해 7월 국가기록물 유출 사건으로 자신을 향한 검찰의 수사가 좁혀지자 “굳이 조사하겠다면 검찰에 출석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그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검은돈을 수수한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제가 알고 있는 진실과 검찰이 의심하고 있는 프레임이 같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번 따져 보자’는 식의 도전장을 냈다. 방문조사나 서면조사, 소환조사 등 조사 방법을 둘러싼 각종 관측이 나오자 “빨리 불러 달라”며 오히려 검찰을 압박했다.

그동안 입버릇처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맏형, 구시대의 막내가 되겠다”고 다짐하곤 했던 그가 결국 ‘구시대의 막내’가 되어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전매특허품처럼 내세웠던 그의 도덕성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국민은 그가 검찰에서 ‘특권과 반칙 없이’ 모든 진실을 밝혀줄 것만을 바라고 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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