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글 고의성 없어” 1심 무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57분



법원 “틀린 글이지만 공익 해칠 목적 없어” 석방
檢 “즉시 항소”… 박씨 “표현 순화해 글 쓰겠다”


인터넷에서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모 씨(31)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유영현 판사는 20일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구속 기소된 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 씨가 정부 정책에 대해 사실과 다른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은 맞지만, 글을 쓸 당시 그 같은 내용이 틀렸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이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글을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 “박 씨, 자기 글 틀린 것 몰랐을 것”
재판부는 검찰이 박 씨를 기소하면서 문제 삼은 ‘외환보유액 고갈로 외화예산 환전 업무 중단’(2008년 7월 30일), ‘정부, 주요 금융기관에 달러매수 금지 긴급공문 발송’(2008년 12월 29일) 등 2편의 글이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외환보유액이 부족해 외화예산 환전 업무가 중단된 것이 아니며 정부가 금융기관에 공문을 보낸 일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박 씨가 자신의 글이 틀렸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7월에 쓴 글은 박 씨가 ‘외화예산 환전업무가 8월 1일부터 중단된다’는 인터넷 뉴스 속보 제목을 보고 외화예산 환전업무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를 당시 논란이 됐던 외환보유액 감소와 관련된 것으로 오해해 잘못된 내용의 글을 썼다는 것. 지난해 12월에 쓴 글 역시 기획재정부가 금융기관에 달러매수 자제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져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박 씨가 완전히 잘못된 내용이라는 점을 알고도 일부러 거짓 글을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 씨가 공익을 해칠 목적을 갖고 글을 썼다는 검찰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익을 해칠 목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행동의 동기와 수단, 내용 등을 종합해 사회통념에 맞게 판단해야 하는데 박 씨가 개인들이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글을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 또한 실제로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고 있었던 정황 등을 감안할 때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변호인 “표현의 자유 재확인”
박 씨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변호인단은 “우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고 밝혔다. 김갑배 변호사는 “검찰이 미네르바를 기소한 것 자체가 무리였으며, 이번 판결은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명예훼손의 소지는 별도로 따져봐야 하지만 국가기관이 허위 여부를 하나하나 물고 늘어지면 개인이나 언론이 필요한 내용을 제때 알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재판부가 증거의 취사선택을 잘못해 사실관계를 오인했으며, 이 때문에 박 씨가 허위 사실이라는 점을 알았는지, 공익을 해칠 목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법리를 잘못 적용했다”고 밝혔다.
한편 박 씨는 이날 오후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난 뒤 기자들과 만나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박 씨는 정부 당국자 등을 실명으로 비판해 명예훼손 논란이 일었던 것에 대해서는 “앞으로는 표현을 순화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겠다”고 말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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