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e TOWN]엄마들의 착각, ‘경시대회 입상은 곧 적성’

  • 입력 2009년 3월 9일 02시 57분


예전에 ‘수학 경시반’ 등록을 하려고 찾아왔던 한 아이가 생각난다. 중학교 2학년인 그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경기 안양시 수학경시대회에서 입상을 했고,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대표로 시도 경시대회에 출전했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이가 수학적 재능이 뛰어나므로 수학 특기자로 길러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한 달 정도 가르쳐 보니, 아이가 수학을 곧잘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수학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수업 시간마다 줄곧 억지로 끌려 나온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수학이 재미있느냐고 물으니 그 아이는 “그냥 엄마가 하라니까 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아이에게 이것저것 말을 붙여 보았다. 책을 많이 읽었느냐, 음악을 좋아하느냐 등등. 알고 보니 아이는 컴퓨터 도사였다. 혼자 힘으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간단한 해킹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한동안 개인 음악방송국을 만들어 심야에 방송도 했다고 말했다.

“너는 뭘 할 때 가장 행복하니?”

“컴퓨터 할 때요. 특히 프로그램 만들 때는 배도 안 고프고 잠도 안 와요.”

아이의 적성은 수학이 아니라 컴퓨터였던 것이다. 나는 당장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수학경시대회 준비를 시킬 것이 아니라 한번 정보올림피아드에 도전해 보세요. 아이도 즐겁게 공부할 거예요.”

어머니는 이제 와서 그런 걸 어떻게 준비하느냐며 곤란해했다. 그러나 나는 설득을 계속했다.

“수학 공부를 시켜서 억지로 경시대회에 출전시킨다면 물론 좋은 고등학교에 보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고 나면 아이가 어떨까요? 행복해할까요? 좋아하는 건 따로 있는데 그걸 할 수 없는 마음이 어떨까요?”

그날 어머니는 아이와 처음으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아이가 수학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컴퓨터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어머니는 미처 몰랐다고 했다. 결국 아이는 얼마 후 수학 경시반을 그만두었다. 결과적으로 나로서는 학원생 한 명을 잃어버린 셈이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뿌듯했다. 또 한 명의 행복한 사람을 만들었으므로!

지금도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가 어느 과목의 성적이 좋거나, 경시대회에서 입상을 하면 그것이 곧 아이의 적성이라고 서둘러 판단한다. 그러나 적성이 꼭 잘하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에 수학 100점 한 번 안 맞아 본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학원 공부를 하면서 성적을 관리하면 100점 정도는 누구든 맞을 수 있다. 경시대회 역시 그렇게 준비해서 입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의 적성과는 별개다.

적성이란 아이의 소질과 인성에 어울리는 것을 말한다. 소질도 있고, 또 성향으로도 그것을 좋아해야 적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아이들의 경우, 성향으론 좋아하면서도 점수는 잘 안 나오기도 한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에 과학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 중 적성이 과학인 경우가 많다. 호기심이 끓어 넘치는 것이 오히려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관심도 없는 것을 잘하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잘하도록 북돋아 주자. 물론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진짜 잘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훌륭한 어머니라면 그렇게 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박교선 영재사관학원 입시총괄원장

※‘누가 뭐래도 우리는 민사고 특목고 간다’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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