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디지털대학교 김중순 총장

  • 입력 2009년 2월 26일 17시 48분


“영화 ‘워낭소리’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닮았습니다. 그 할아버지께서 소에게 해가 미칠까봐 소가 먹을 풀이 자라는 곳 인근에서는 농작물관리에 힘이 드는데도 끝까지 농약을 치지 않았던 고집과 닮았습니다.”

최근 한국디지털대학교 졸업식에서 이 학교의 동문회장이 김중순 총장(71)에게 전한 말이다. 어떻게 닮았을까. 26일 서울 종로구 계동 한국디지털대학교 총장실에서 만난 김 총장은 집에서 싸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마친 뒤였다.

김 총장은 21일 이 학교의 3대 총장에 취임했다. 2001년 출범한 한국 최초의 온라인대학이자 세계적인 온라인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한국디지털대학교의 초대 총장에 이어 2대와 3대 총장을 연임하고 있다.

졸업생이 ‘워낭소리’의 고집을 이야기한 대목은 김 총장의 일관된 정책 때문이다. 개교 이래 한번도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은 것이다. 또 교직원과 학생의 1대1 맞춤지도 서비스를 통해 수준 높고 엄격한 학사관리에 집중해왔다.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게 유지하면서도 등록금은 올리지 않고 있다. 입소문이 퍼져 설립당시에 비해 재학생수는 1013% 증가 했고, 예산규모는 1016%, 교직원 수는 500%이상 증가했다. 올해에도 입학지원자가 몰려들었지만 엄격한 기준에 의해 1천여명이 탈락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의 재학생수는 8000여명, 입학정원은 2500명이다.

“연간 물가 상승률을 3%씩으로만 계산해도 8년간이면 24%입니다. 물가 수준에 비추어 그동안 한국디지털대학교가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았던 것을 계산하면 어림잡아도 24%이상의 학비절감 혜택을 학생들에게 주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 만큼의 장학금을 주었다고 여깁니다. 다른 온라인대학과 비교할 때 졸업 때까지 몇 백만원의 학비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

한국디지털대학교는 이밖에도 각종 장학금 혜택이 풍부하다. 2007년 한 해에만 18억원 이상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학생들에게는 혜택이지만 학교 측으로 본다면 그만큼 예산의 압박을 받을 수도 있었다. 김총장은 이에 대해 “얼마나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광고비 등을 줄이고 각종 예산을 학생들 위주로 집행하는 등 짜임새 있는 예산집행을 강조했다.

김 총장의 이 같은 고집은 학생들의 가슴에 전해졌고 그래서 “학생들이 편하게 공부하도록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점이 소를 사랑했던 워낭소리의 고집 센 할아버지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김 총장은 이에 대해 “마침 내 고향이 경북 봉화이다. 그 영화의 배경이 봉화인 점이 닮았다면 닮았을까, 내가 그 할아버지와 닮은 것은 좀 못생겼다는 점뿐인데…”라며 웃었다.


▲동아닷컴 이철 기자

김 총장이 등록금을 올리지 않은 것은 그 자신의 교육이념 때문이다. 한국디지털대학교를 이끌면서 그는 미국의 주립대학교가 하고 있는 역할을 해 보자는 뜻을 새겼다고 한다.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에모리대학과 조지아대학에서 유학하며 사회학과 인류학을 공부한 뒤 미국 테네시대학 교수를 지낸 그는 미국의 대학시스템에 정통하다.

“유럽의 대학보다 미국의 대학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주립대학 때문 입니다.공부를 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저렴한 학비로 배움의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3개월 정도만 일을 해도 학비를 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국민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넓혀주는 것이 국가 경쟁력에도 도움이 됩니다. 더군다나 자원이 없는 우리는 두뇌밖에 없잖습니까. ”

김총장은 ‘제 2의 기회’를 강조했다. “고등학교 시절 집안 형편 때문이거나 그 밖의 다른 이유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두뇌는 좋아도 여건상 명문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이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어도 사장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당시에는 때를 놓쳤더라도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좋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능력을 계발해야합니다.”

학생을 먼저 생각하는 이 같은 방침은 엄격한 학사관리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디지털대학교는 국내 온라인 대학 중 가장 우수한 교수진을 자랑한다. 사회가 필요로 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다양한 교과목을 편성하고 있다. IT미디어, 실용외국어, 문화예술커뮤니케이션 등 8개 학부에 16개의 학과가 있다. 학생들은 교직원들의 1대1 맞춤 지도에 따라 학업을 게을리하거나 할 때면 지적을 받기도 하고 입학에서부터 졸업할 때 까지 다양한 상담도 받는다.

컴퓨터를 이용해 교육을 받는 디지털대학교의 특성은 다른 곳에서도 발휘됐다. 김 총장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e-배움 캠페인’이 그 것이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외국 출신들이 많다. 한국과 그들 고국의 문화를 서로 배워가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필리핀 베트남 중국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문화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다. 한국디지털대학교가 추진하고 있는 이 캠페인의 가입자는 2만9천여명에 이르렀고 매일 100여명 씩 가입자가 늘고 있다.

“오래 전 미국에 한국을 소개하는 책을 쓰고 있던 중이었어요. 한국의 농촌을 소개하는 동아일보 사진기사 한 장이 저로 하여금 다문화가정 운동을 펼치게 했어요. 그 사진에 보니 한국의 농촌에 이미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고 있더군요. 우리 사회가 그만큼 국제화되었던 겁니다.”

김총장은 미국 유학시절 미국인들이 동양인을 위한다며 각종 전시행정에 동원했던 기억을 떠올려 다른 방식의 다문화가정 운동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전시행정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방안을 떠올렸고 그 것이 온라인교육을 통한 상호이해였다. 컴퓨터를 통해 교육을 하다보니 전국에 흩어져 있는 다문화가정을 한데 모으지 않아도 되고, 한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외국의 문화를 함께 공부하는데서 호응이 좋았다. 두고 온 고국의 다양한 문화행사, 영화 등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 출신들의 호응도 컸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외국인들과 어울려 살았습니다. 인도에서 온 조상에서 비롯된 성씨도 있고 베트남에서 온 조상을 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민족주의를 강조하게 된 것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불거진 측면이 큽니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연구를 위해 각종 족보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다문화가정 캠페인이 온라인대학 고유의 장점을 살린 좋은 케이스로 여겼다. 김총장은 이처럼 온라인대학 고유의 기능과 역할을 키워가야한다고 역설했다. 온라인대학들이 기존의 오프라인 대학들과 유사해진다면 특징과 장점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따라서의 그의 목표는 온라인대학 고유의 기능을 더욱 확대시키는데 있었다.

“국내 유수의 오프라인 대학들도 세계 100위 안에 들기 힘듭니다. 그러나 온라인대학들은 다릅니다. 이 분야의 개척자들입니다. 일본에서 저희 학교를 연구하기위해 여러 차례 문의가 오고 있습니다. 온라인 대학 중에서는 세계 5위 안에 들 수 있습니다. 우리학교의 목표는 세계적인 온라인대학이 되는 것입니다.”

평생을 교육계와 학계에 몸담아온 그의 철학은 어떤 것일까. 그는 최근 9세 손자와 나눈 대화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느 날 9살 난 손자가 저와 함께 자자는 겁니다. 인생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에요. 들어 보니 처음엔 고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손자 생각에 고생물학을 평생직업으로 삼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군인이 되고 싶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영화나 사극에서 보니 군인들이 사람을 많이 죽이는 거 같아서 싫어졌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저에게 무슨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냐고 묻더군요.”

그의 대답은 이랬다. “어떤 직업을 가져도 좋다. 단 한사람에게라도 좋으니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라.”

한국디지털대학교의 교육이념에는 ‘봉사’가 들어가 있다. 이 학교의 또 다른 교육이념은 ‘창조’다. “학교에서 기술만을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졸업하면 그 기술은 이미 낡은 것이 될 수 있어요. 창조와 창의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창조’와 ‘봉사’를 내건 한국디지털대학교. 화정 김병관 박사의 뜻에 따라 개척자적인 정신으로 국내최초의 온라인대학으로 출범한 이 학교는 학생과 사회를 위한 봉사 정신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교정에 봄 햇살이 쏟아졌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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