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언어영역/좋은 문항 구별하기<1>

  • 입력 2009년 2월 2일 02시 58분


기출문제에 모두 들어있다, 언어영역의 공부 왕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에서 좋은 성적을 얻은 수험생들은 ‘기출문제 분석’이 고득점의 열쇠였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수능 기출문제처럼 좋은 문항은 없다는 것이다. 좋은 문항은 교육과정을 잘 반영하고, 중요한 능력을 측정하며, 오답의 시비가 없고, 매력적인 오답이 있는 문항이다. 좋은 문제를 꼼꼼하게 풀고 오답의 이유와 정답의 이유를 찾아낼 줄 알면 언어 고득점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이만기 엑스터디 언어영역 강사》

중고교 재학 중에는 수많은 시험을 치른다. 내신시험부터 수능까지 한 달에도 2, 3차례 시험을 보기도 한다. 올해도 3월 11일에 서울시교육청 첫 모의평가를 시작으로 고1, 2는 4회, 고3은 6회의 교육청, 평가원 주관 모의평가가 예정되어 있다. 전문 입시기관들의 모의고사까지 합치면 연 10회 이상 평가를 치르는 셈이다. 이 같은 전국 단위 모의평가는 자신의 위치를 진단하며, 취약점을 파악하고, 향후 학습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응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모의고사를 비롯하여 문제집의 문제들 가운데는 아예 접근이 곤란한 문항이나, 정답 및 해설을 봐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문항이 있다. 누구나 그런 문항을 가지고 아주 오랜 시간 고민하고 안타까워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시간 낭비다.

중요한 것은 수능에는 그런 문항이 아예 없거나 극히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능 기출문제 분석이 중요한 것이다. 평가원은 수능 문두, 정답지, 오답지 진술 등에 보통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다. 최대한 정제되고 정돈된 형태로 문제를 출제한다.

좋지 않은 문항을 가지고 고민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오히려 성적이 떨어지고 자신감을 잃게 되는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좋은 문항이란 ‘수능 기출문제→전국 모의평가 문제 → 문제집 문제→ 학교 내신문제 →학원 교재’ 순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신문제는 학교별로, 학원교재는 강사별로 우수한 문항을 출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문항은 출제 과정에서도 만들어지지만 검토와 윤문 과정에서도 만들어진다. 그래서 수능의 경우 출제진, 검토진, 윤문진이 별도로 있다. 전국 단위 모의평가는 교육청이나 민간 입시기관 모두 출제진과 검토진이 학년 간 상호 교차되기도 한다. 그래서 수능 문제와 전국모의평가 문제가 우수한 것이다.

우수한 문항은 푸는 것만으로도 실력 향상을 가져온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해당 연도 수능을 실시간으로 풀어보기를 권한다. 수리나 과학탐구, 사회탐구와는 달리 언어영역은 고1이라도 충분히 수능 문제를 풀 수 있다. 기출문제를 꼼꼼하게 풀면 언어영역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쉽게 정리된다. 예를 들어 문학 작품을 대상으로 한 다음 문항을 보자.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8∼33번 지문

(가)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님의 침묵’(한용운), ‘나뭇잎 하나’(김광규), ‘춘면곡’(작자 미상)이 묶인 시가복합지문의 일부다. 이 지문에서는 모두 6개의 문항이 출제됐는데 31번은 ‘님의 침묵’에서 출제된 단독 문항이다. 이 문항을 보면 우리가 현대시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알 수 있다.

『31.<보기>를 바탕으로 ⓐ를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님의 침묵’에서 ‘노래’와 ‘침묵’은 화자와 ‘님’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시어이다. 한용운은 시 ‘반비례’에서 “당신이 노래를 부르지 아니하는 때에 당신의 노랫가락은 역력히 들립니다그려/당신의 소리는 침묵이에요”라고 했다. 침묵이라는 부재의 상태에서 ‘님’의 실재를 본 것이다. 화자는 ‘님’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데, 시 ‘나의 노래’에서 “나의 노래가 산과 들을 지나서 멀리 계신 님에게 들리는 줄”을 안다고 했다. 이는 화자가 자신의 노래에 ‘님’과 근원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①노래가 제 곡조를 못 이긴다는 것은 ‘님’이 침묵하는 상황을 화자가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야.

②노래가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돈다는 것은 화자가 부재 속에 실재하는 ‘님’과 깊이 교감한다는 뜻이야.

③‘나의 노래’가 산과 들을 지나서 멀리 나아간다고 한 데서 ‘사랑의 노래’가 자연 친화적임을 알 수 있어.

④침묵을 휩싸고 도는 노래가 ‘사랑의 노래’라는 것은 침묵이 끝나야 사랑이 비로소 시작되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어.

⑤침묵하는 ‘님’에게서 노랫가락을 역력히 듣는다는 데서 ‘사랑의 노래’가 화자의 노래가 아니라 ‘님’의 노래임을 알 수 있어.』

이 시는 이미 중학교 국어와 고등학교 문학 12종, EBS 교재 2종에 실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형의 문제를 냈다. 암기를 한 내용을 묻는 것이 아니라 시와 <보기>를 같이 검토하여 정답을 찾는 유형, 즉 ‘자료를 활용한 작품의 감상’ 유형이다. 어느 작품이든 마치 안 배운 것인 듯 출제를 하는 것이다. 수험생에게 장르별 작품에 대한 접근법, 감상 방법이 필요한 것이지 배경지식의 암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 풀이

이 문제의 경우 <보기>에서 한용운의 다른 작품을 통해 ‘침묵’을 부재의 상태에서 ‘님’의 실재를 본 것으로, 또 ‘노래’에 ‘님’과 근원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종합하여 생각해 볼 때, ⓐ에서 ‘사랑의 노래’가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돈다는 것은 화자가 현재는 부재하는 ‘님’을 만나 소통하고 싶다는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① (가)의 시상의 흐름으로 볼 때, 화자는 ‘님’이 침묵하는 상황을 의지적으로 극복해내고 있으므로 적절하지 않다. ③ <보기>에서 ‘나의 노래’가 ‘산과 들을 지나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님에게 들리는’ 것이 초점이므로, ‘산과 들을 지나서’라는 표현만 보고 자연 친화적임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④ (가)에서 사랑은 이미 시작되었고 님이 떠난 상황에서도 지속되고 있으므로, 침묵이 끝나야 사랑이 비로소 시작된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⑤ ⓐ에서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도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노래가 아니라 화자의 노래이다.

그러면 이 문항은 좋은 문항일까? 아마 이 문항을 만들기 위해 출제진은 제시문 선정부터 고심을 했으며, 문두와 답지, <보기>를 수정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들인 공력에 비하면 좀 아쉬운 문항이다. 수험생들에게 공부해야 할 방향과 방법을 알려 준 것은 좋았으나, <보기>가 없어도 정답은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문항이 더 좋아지려면 <보기>가 없으면 정답을 찾을 수 없거나, 매력적인 오답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못했다. 문학작품의 출제가 가지는 한계이다. 그런데 다음 문항은 좀 다르다.

정답 ②번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37∼39번 지문

#89. 불이의 집(낮)

누군가 대문을 두드린다. 들어낸 짐을 정리하면서 어머니 돌아본다. 영희냐 하고 달려가 문을 열면 얼굴이 부은 영호와 영수가 들어온다.

영호 엄마 영흰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어머니 …….

영호 엄마 우리 파티를 하죠. 불고기 파티를……. 이거 고깁니다.

하고는 어머니에게 준다. 말없이 보다가 가져가는 어머니.

불이 얼굴은 왜 다쳤니.

영호 (빙긋 웃고) ……덕분에 고기를 얻었어요. 얘기가 좀 복잡해요.

하고 함께 마당으로 나간다.

#90. 고급 레스토랑

비프스테이크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철이 다소곳한 영희에게 다정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91. 불이의 집 마당

풍로에 불을 지피고 있는 불이. 어머니는 고기에 양념을 친다. 보고 있는 영수와 영호.

영호 다운*은 됐지만 많은 걸 배운 것 같아요.

영수 말없이 앞만 본다.

#92. 레스토랑

영희가 접시의 고기를 서툴게 썰고 있다. 지켜보던 우철이 접시를 가져다 익숙한 솜씨로 고기를 잘라 소스까지 쳐 준다. 약간 화가 나 지켜보는 영희.

#93. 불이의 집 마당

익고 있는 고기. 식구들이 둘러앉아 고기를 먹는다.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집 부수는 소리. 해머 소리.

#94. 몽타주*

영희와 우철이 고기를 먹고 있다./영희를 뺀 가족이 고기를 씹고 있다./이들의 면모가 다양하고 자세하게 묘사되며 몽타주된다.

#95. 불이의 집<중략>

#96. 고급 맨션 앞

우철이 승용차를 몰아와 아파트로 진입하고 있다. 다소곳이 앉아 있는 영희의 모습.

#97. 불이의 집

일거에 폭삭 무너지는 담. 방문을 열고 나와 선 식구들 앞서 뽀얗게 먼지가 인다. “명희 언니는 큰오빠를 좋아해”라 쓰인 장독대가 큰 해머에 의해 부서진다. 파괴되어 가는 과정이 다각도로 보여진다.

홍파 각색,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제시문은 중학교 교과서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EBS 교재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보기>가 없으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점에서 앞의 31번 문항보다는 더 좋은 문항이다.

『39.<보기>를 바탕으로 위 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보기〉

시나리오에서 두 개 이상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될 때,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주 플롯’이라 하고 부수적인 이야기를 ‘부 플롯’이라 한다. 주 플롯에 해당하는 장면을 M1, M2,…,Mk,…,Mn이라 하고, 부 플롯에 해당하는 장면을 S1, S2,…,Sk,…,Sn이라 할 때, 전체 구조는 M1→S1→M2→S2→…→Mk→Sk→…→Mn→Sn의 순서를 따르는데, 이러한 정렬 방식을 ‘교차편집’이라고 한다. Mk에서 Sk로 전환될 때 두 장면 사이의 유사성이나 대조점을 활용하면 장면 연계가 매끄럽게 이루어질 것이며, Mk와 Sk가 한 장면 내에서 만날 때 나뉘어 있던 두 플롯이 더욱 긴밀하게 연관될 것이다.」

① #90, #92, #96은 부 플롯에 해당하는 장면들이다.

②주 플롯에 해당하는 장면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③주 플롯과 부 플롯은 #94에서 만나 동일한 공간적 배경을 갖게 된다.

④‘고기’는 주 플롯과 부 플롯을 자연스럽게 연계하는 유사성으로 활용된다.

⑤고급 아파트와 낡고 무너진 집의 대조를 통해 두 플롯을 연계한 대목이 있다.』

○ 풀이

<보기>의 관점을 제시문에 적용하면, 불이의 집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가 이 시나리오의 ‘주 플롯’이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우철과 영희가 대화하는 이야기가 ‘부 플롯’이 된다. 이러한 두 개의 이야기가 #94에서 몽타주 형식으로 교차 편집됐다. 그런데 #94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이야기를 결합하여 보여 주고 있는 것일 뿐, 주 플롯과 부 플롯이 동일한 공간적 배경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답 ③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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