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수사한 검사 밑에서 ‘검사 첫발’

  • 입력 2009년 1월 30일 03시 01분


● 단병호 전 의원 검사 지망 선뜻 안반겨

● 단정려 검사 “일하는데 별영향 없을 것”

● 황교안 지검장 “좋은 검사 되도록 지도”

단병호씨 딸 정려씨 창원지검 발령… 황교안 지검장과 ‘묘한 인연’

‘서울지검 공안2부(부장 황교안)는 24일 불법집회 및 파업을 주도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 등)로 구속 기소된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해 징역 5년을 구형했다.’(2002년 2월 25일자 동아일보)

당시 갓 스무 살이 돼 이화여대 법학과에서의 대학 생활을 꿈꾸던 단 씨의 딸 정려(27) 씨는 아버지에게 내려진 ‘징역 5년’이라는 구형에 가슴이 미어졌다. 정려 씨는 이때 처음 ‘황교안 부장검사’라는 이름을 봤다.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을 지낸 단 씨는 1999∼2004년 민주노총 위원장을 맡았고, 1999∼2001년 벌어진 대규모 총파업과 도심 집회를 이끌었다.

그는 당시 강경투쟁을 주도하면서 대표적인 전투적 노동운동가로 떠올랐으나 2001년 10월 검찰은 형 집행정지로 잠시 풀려나 있던 그를 다시 구속했다.

7년 뒤인 올해 정려 씨는 ‘황교안’이라는 이름을 다시 보게 됐다. 정려 씨는 4학년이던 200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올해 검사로 임용돼 창원지검 검사로 발령이 났다. 직속상관이 될 창원지검장은 바로 당시의 ‘황교안 공안2부장’이다. 공교롭게도 창원지검은 노사분규와 관련한 공안사건이 많은 곳이다. 그러나 정려 씨는 초임 검사인 만큼 형사부에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올해 검사로 임용된 단 씨의 딸 정려 씨는 29일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검찰이나 경찰 등의 수사기관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면서 “다만 아버지가 수배 때문에 집에 못 들어오시니 아쉽고 안타까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창원지검에 지원한 정려 씨는 “(황 지검장과 아버지의 관계가) 일하면서 특별히 영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황 지검장도 단 씨와의 ‘특별한 인연’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황 지검장은 “본인이 판단해서 검찰을 지원했다면 좋은 검사가 되겠다는 뜻을 갖고 온 것”이라며 “초임 발령을 내가 검사장으로 있는 곳으로 받아 왔으니 좋은 검사가 되도록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 씨는 딸이 검사가 되는 것에 대해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고 한다.

정려 씨는 “검사가 되겠다는 말에 아버지는 처음엔 쉽게 동의하지 못하시고 고민하셨다”면서 “그러다가 며칠 후에 ‘해 보고 싶으면 해라.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라고 전했다.

단 씨는 정려 씨가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 “아빠를 원망할 줄 알았던 딸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구속과 수배를 반복하는 아빠가 뭘 그리 잘못한 것인지 내가 공부해서 알아보겠다’며 소홀히 하던 공부를 시작하더니 지금은 판사를 꿈꾸는 사법연수생이 됐다”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적은 적이 있다.

단 씨는 29일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딸이 검사가 된 것과 관련한 소회나 황 지검장과의 사연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만 말했다.

8년 5개월간 검찰의 수배를 받거나 구속됐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초임 검사 정려 씨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데는 원인이 한 가지일 수 없고 여러 가지 원인과 경위가 있을 텐데 두루두루 많이 듣고, 결정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검사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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