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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3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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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수사 - 감청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제시
‘디지털 시대’ 발맞춘 증거수집 기준도 마련
올해 창설 60주년을 맞은 검찰이 사상 처음으로 ‘수사전범(典範)’을 제정한다. 수사전범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부딪치는 구체적인 수사 방법이나 절차에 관한 일종의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최근 과잉 편파 표적 수사 논란과 공정성 및 인권침해 시비에 대한 해법, 점점 고도화되는 범죄수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과학적인 수사 기법이 집대성될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인 대검찰청 대변인은 “수사전범은 임채진 검찰총장의 신념인 ‘절제되고 품격 있는 수사시스템’ 구현을 목표로 하면서 검찰 수사의 A부터 Z까지 상세히 안내하는 총체적인 가이드북”이라고 설명했다.
▽100여 개 수사 쟁점 한계 및 기준 제시=검사가 만일 뇌물제공 혐의를 부인하는 철강업체 K사 대표에게서 압수한 회계장부에서 세금 포탈 단서를 찾았다면 뇌물 혐의 수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수사전범은 검사가 이런 고민에 빠졌을 때 “특정 혐의를 두고 수사에 착수했는데 당초 예상했던 혐의를 확인하지 못할 경우 무리하게 다른 범죄를 찾아내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검토하도록 유도한다.
수사전범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과도하게 성과에 집착하는 수사’보다 ‘적법한 수사’ ‘합리적인 수사’를 추구한다는 것이 검찰 간부들의 평가다.
공안 수사 때마다 의혹을 사는 통신제한(감청)의 범위에 대해서도 상세한 사례가 제시된다.
시민단체 관계자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통신제한조치를 허가받을 때 통신제한 종류에 ‘전화감청’만을 명시하고 영장을 발부받았다면 세부적으로 추가한 ‘우편물 검열’과 ‘대화 녹음’이 가능한지 등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수사 목적과 다른 사안으로 피의자를 일단 구속한 뒤 원래 수사하고자 했던 혐의를 추궁하는 ‘별건수사’의 한계, 마약사범 수사 등에서 자주 사용하는 ‘함정수사’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 연구도 포함될 예정이다.
▽인권 존중과 과학수사 조화=검찰은 수사전범을 통해 △부패행위 신고자 보호방안 △특별수사 착수 때의 유의사항 △출국금지 조치의 적정 기준 △피의자 조사 때 ‘설득’의 허용범위 △합의 권유의 적정성 등 검사들이 실제 수사 현장에서 부딪치는 다양한 쟁점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대검은 올 3월부터 일선 검찰청 부장검사와 지청장, 대검 연구관 등 19명에게 100여 개 수사 쟁점에 대한 연구를 맡겼으며 현재까지 연구 결과는 1000쪽 규모에 이른다. 대검 관계자는 “특히 긴급체포의 요건, 피의자 사생활 조사의 범위, 조사실에서 수갑이나 포승을 사용하는 문제, 심야조사 유의사항 등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 보호 방안에 대한 연구가 다수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압수·수색 매뉴얼도 마련=임 총장은 검찰 간부회의 등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 검찰은 수십 년간 형사소송법 조항 하나에 근거해 압수수색을 해 왔다. 그러나 미국에는 압수수색에 관한 지침서만 여러 권이다”라고 지적해 왔다.
한국 검찰에도 압수수색에 관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 대다수의 국민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e메일 같은 인터넷 통신수단을 이용하는 일이 생활화되면서 최근 수사에서는 전례가 없던 문제점이 많이 발생한다.
대검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수사전범과 별도로 12월까지 효율적이고 정확한 압수수색을 위한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최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e메일 압수수색 관행의 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이미 연구에 착수했다.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 e메일 서버를 압수수색할 경우 e메일 수신자에게 압수수색 사실을 통보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또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기업의 전자회계장부 압수수색 방법과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때 증거 선택 기준도 연구 중이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