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좌익 우익 모두에게 극단적 독설

  • 입력 2008년 10월 10일 12시 02분


김지하 시인.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지하 시인. 동아일보 자료사진
“촛불을 횃불로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었다….너무 추(醜)했다.”

“기독교 신자, 그것도 장로, 그것도 대통령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데도 이 세상이 제대로 굴러 간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것이 미친놈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五賊)’ 등의 시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원로 시인 김지하씨가 좌익과 우익에 대해 동시에 포문을 열었다. 투옥을 마다하지 않았던 투사다운 전투적인 어법과 공개 발표문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독설과 욕설을 거침없이 동원하며 좌우익 모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그의 독설은 비판의 내용뿐 아니라 일단 그 과격함과 적나라한 표현의 수준으로도 눈길을 끌고 있다.그는 촛불시위대와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해 연일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좌익비판

그는 9일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기고한 ‘촛불을 생각한다’를 통해 촛불시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한마디로 일부 세력이 “촛불을 이용해 먹었다”고 정의했다.

그는 “청계 광장에서 어린이, 청소년, 여성들이 가만히 촛불을 켰을 때 비웃음을 일삼던 정의의 홍길동이들이 6월 10일 전후로부터 끼어들기 시작해 6월 29일에는 완연히 촛불을 횃불로 바꾸어 버리려 했다”고 썼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여기서 말하는 ‘촛불’이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후천개벽(後天開闢)’으로 가는 길이지만 ‘횃불’은 정권탈취를 위한 혁명에의 몸부림이라는 것.

청소년과 여성 및 어린이들이 들었던 촛불은 점 점 추하게 변해가서 마침내 정권 탈취를 휘한 혁명의 도구 즉 ‘횃불’로 이용되려 했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김씨는 이 과정에 대해 “그들이 그 예쁘고 애리애리한 어린이, 청소년, 여성들, 쓸쓸한 외톨이 대중들의 소담한 촛불을 왜가리같이 악써대며 '씨팔!', '좇같이!', '죽여라!', '밟아라', '찢어 죽여라!', '때려 부셔라!'의 그 흉흉칙칙한 구정물 바다에 몰아넣고 횃불을 치켜 올렸다는 것, 그것을 또 자랑처럼 으쓱대며 떠벌리는 것. 너무 추(醜)했다”고 표현했다.

이렇게 촛불을 횃불로 몰아가려던 사람들은 김씨와 수십년을 호형호제 하던 사람들이었으며 김씨가 사랑했던 사람들이었고 또 그들 역시 김씨를 형님처럼 따랐던 사람들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해 일격을 가했다. “그들은 막상 횃불이 아닌 촛불을 위장하고 있었던 것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하라. 이용해 먹으려 했던 것이다”라고.

그는 이러한 일부 세력에 대해 ‘까쇠’라는 표현을 썼다. “내가 그들 모두를 '까쇠(Csseur·까불고 까부수고 까발리는 마당쇠)'라고 명명한 것은 그 뒤부터다. '댓글 알바' 정도가 아니다. 까쇠의 역사는 장구하다.”

그는 이러한 ‘까쇠’들에 대해 “마타도어, 사꾸라, 위장 침입자”와 같은 수준에 올려 놓은 뒤 그들이 왜 이리 되었나를 짚어 본다. 결론은 지난 5년 동안 그들이 권력의 맛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돈 맛 권력 맛을 보면서 저희들끼리 즐겼다”는 설명이다. “정치는 개떡으로 하면서 저희끼리만 즐겼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소위 좌익이라 불리던 일부 세력의 지난 5년간의 실정에 대한 그의 표현은 적나라하다. “나는 그들의 본질을 지난 5년 노 정권 당시에 똑똑히 알았다. 더 이상 쓸 만한 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모조리 사기꾼이다. 한마디 말없이 다 보았다. 날치고 설치고 까불어 대는 자들의 속치마 속바지며 고쟁이 (요즘에도 그런 거 있나? 있다) 팬티 속까지 다 보아 버렸다. 털이 몇 개인지도 다 안다. 어느 날은 대구 갔다 와, 차 속에서 자신만만한 운동권 출신 고급 관료 둘이 대구에 좋은 골프장이 있어 골프 치러 갔다 온다고 뻔뻔하게 떠벌리는, 술로 홍조 띤 두 상판을 본 일도 있다. 그날은 공휴일도, 일요일도 토요일도 아니었다.

마르크스 자본론은 아예 읽은 일도 없고 경제의 '경'자도 모르는 자들이 정권을 틀어쥐고 앉아 왔다 갔다 나라 경제를 몽땅 망쳤다.“

그는 이같이 좌익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부은 뒤 좌익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첫째 유물론은 더 이상 철학 구실을 하지 못한다. 마르크시즘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니다. 그 것을 과학으로 신봉하는 것은 미신이다는 요지. 둘째 변증법은 더 이상 정확한 논리가 아니다. 그는 변증법 논리의 대표격인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예로 들며 ‘정신현상학’이 구현했던 게르만 이상국가, 또 유물론적 변증법을 신봉했던 마르크스의 ‘독일이념’, 또 마르크스주의를 이었다고 주장했던 스탈린의 ‘소비에트 이상국가’가 모두 망상이었으며 허구였음이 현실역사에서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비판을 전개한 뒤 그는 그가 제창해 온 ‘생명주의’를 다시 강조한다. 새로운 시대의 개벽이 있기 위해서는 우리 몸의 개벽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라며 생명과 몸에 대한 연구를 강조했다. 이를 통해 오묘한 영적과정 생명의 과정에 대한 이해 속에서 새시대 개벽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는 새 시대는 동양에서 새로운 지혜를 얻을 가능성을 암시하며 세계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른 문화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오직 유럽밖에 없는 학문 풍토에 대한 일침이다. 이러한 과정들이 좌파 혹은 좌익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이제 촛불은 꺼졌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분법적이고 제 안의 음양을 보지 못하는 좌파를 그는 비판했다. 좌파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야 했으나 너무 질질 끌었고 너무 늦었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그러나 여성성 소수성에 대한 관심, 사상의 다양성을 통한 새로운 모색 등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갈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우익 비판

김지하씨의 우익 비판 또한 좌익 비판 못지 않게 독설적이다. 그는 10일 프레시안에 올린 글을 통해 대뜸 영부인 김윤옥여사부터 걸고 넘어졌다. 그는 “영부인께서 촛불을 입덧에 비유했다. 잘하는 말 같지 않다. 자기 배 안에서 새 천지가 포태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면 말이다. 새 정부가 그만큼 혁신을 감행하기라도 한다는 뜻인가? 말조심해야 한다. 노 정권은 말로 망했다. 모르면 잠자코 있으라!”고 썼다.

한 마디로 ‘입덧’은 새로운 생명을 낳기 위한 전조, 즉 개혁을 위한 상징어로 읽힐 수 있는데 현정권은 전혀 개혁적이 못하다는 주장이다. 개혁을 하지 못하면서 말만 앞세우지 말라는 뜻이다.

그는 “집권부에서 주둥이 잘못 놀리면 반드시 해괴한 사건이 벌어진다”라고 까지 썼다. 그가 이같이 쓴 이유는 현정권이 실수를 계속하면 촛불은 계속 켜질 수 밖에 없다는 것 때문이다.

그는 현정권의 몇가지 점에 대해 신랄하게 공격했다. 우선 국정권의 권한확대 시도와 도청 및 감청의 합법화 움직임이다.

“정보기관을 국정 운영의 첨병으로 삼는 시대는 전 세계적으로 이미 모두 다 끝났다. 국정원 법이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시도에서 목매는 정부, 여당은 오늘 이 순간부터 '선진화' 타령을 뚝 그쳐라! 국정원을 대통령의 통치 기구화하고,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강화하려는 짓이 선진화는 아닐 터이니 말이다. 그래도 선진화인가.”

김씨는 이같은 상황을 더욱 비판한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이른 바 ‘공안정국’을 만들어가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다. “'국정 질서 파괴범', '법치', '간첩', '정부 조직', '좌파청산', '빨갱이 사냥' 타령이 그 어느 시절보다 더 요란하다”고 본 그는 이러한 것을 소위 “‘명바기즘’ 즉 ‘매카시즘’”이라고 표현했다.

이와함께 현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 추진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촛불들이 그리도 반대하던 물, 가스, 의료 보험, 몽땅 장사꾼들에게 넘기기로 결정하고 나서 잘했다고 히히거리는 이 정부를 무엇이라 표현해야 옳은가?”

그는 이같은 일들이 반복되면 촛불이 다시 켜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 2촛불의 씨앗을 저들 자신이 뿌린 것이다. 가스, 의료, 수도 등 모조리 민영화하고 있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김씨는 현정부의 국정혼란에 대해 내부격동으로 스스로 망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와 '의료, 전기, 가스, 수도는 절대 민영화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 엊그제다. 기독교 신자, 그것도 장로, 그것도 대통령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데도 이 세상이 제대로 굴러 간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것이 미친놈이다”고 했다.

그는 교육문제 및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옮겨 가며 전방위적인 공세를 취했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경쟁력인 시대에 무조건 외국 것만 배우라고 강조하는 교육 정책을 비판했고 경제 정책의 일관성이 없어 ‘정책환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정책 혼란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할 사람들을 오히려 감싸고 있다는데도 비판이 겨누어졌다.

“그럼에도 '강만수, 어청수'의 두 '수'를 제 목숨 '수(壽)'자로 알고 필사적으로 '사수(死守)'한다.”

그는 안하겠다고 강조했던 대운하사업이 다시 거론되는 것에 대해서는 ‘사기꾼’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공격했다. 이같은 앞뒤 안맞는 말과 오락가락 행보로 인해 어린아이까지 대통령을 우습게 여기는 사태에 이르렀으며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고 그는 비판했다.

코미디 같은 실정이 이어지고 있다며 현정부를 강하게 공격한 그는 “정치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라며 독기어린 표현을 곳곳에 드러냈다.

그는 이같은 비판을 쏟아내면서 줄기차게 새로운 세상(후천개벽)이 오기를 기원했다. 그는 촛불시위대에서 어느 시위대원이 “아무개를 찢어죽이자”라고 외치자 한 어린이가 “종이냐 찢게”라는 말로 받았던 순간을 기억하며 크게 웃었다고 적었다. 풍자. 이 시대의 모순된 상황을 드러내는 풍자시를 적고 싶다던 그의 눈에 비친 역설적인 풍경이다. “사람은 종이가 아니다.” 쉽게 접히거나 또 찢어짐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 및 생명 존중에 대한 그의 시각이 담겨 있다.

젊은 시절 정권에 정면 도전했던 풍자시로 옥고를 치렀던 그가 다시 세상을 향해 독설을 내뱉었다. 그의 시각에 찬성하든 하지 않든, 한국의 원로시인으로서 그가 내던진 신랄한 비판들은 다소간 논란을 불러일으킬 듯 하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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