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아이비리그 진출의 영광 뒤엔 실패의 그림자가…

  • 입력 2008년 6월 10일 03시 00분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OO고생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이란 기사가 실린다.

국내 고교에서 미국 명문대로의 직행은 마치 성공의 보증수표처럼 여겨지는 현실이다.

거액을 투자해 유학 가는 학생도 대부분 ‘성공적인 해외 유학’을 꿈꾼다.

어떤 유학생이라도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영어 구사력이 비교적 우수하고

학업에 열의를 가졌다 하더라도 해외 대학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암기식, 주입식 학습에 길들여진

국내 학생이 현지 교육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학을 생각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위해

유학의 그림자를 짚어보고 성공적 유학을 위해 갖춰야 할 학습능력을 알아보자》

영어로 글쓰기… 명확한 자기표현… 확실한 ‘현지화’로 성공유학을

글쓸 때는 핵심부터… 서론 강조하는 ‘두괄식’ 훈련을

토론수업에서 겸손은 약점… 상대비판도 꺼리면 안돼

○ 말하기, 읽기, 쓰기 취약해 고생

외국어고 영어과를 졸업하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한 A(23) 씨는 “수업마다 읽기 과제가 매주 최소 300∼400쪽짜리 책 한 권인데 여러 과목을 수강하기 때문에 밤을 새우며 읽어도 빠듯하다”며 “다 읽었더라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니 수업시간에 벙어리 신세일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명문 외국어고나 자립형사립고를 졸업하고 만점에 가까운 토플점수를 받았더라도 말하기, 읽기, 쓰기 능력을 따지자면 원어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유학생이 대부분이다. 영어로 수업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데는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빨리 읽고, 제대로 이해하고,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데 서투르기 일쑤다.

한국 유학생은 과외나 학원수강 방식의 공부에 익숙해 현지 학생과 그룹 지어 읽기 과제를 분담하고 메모를 교환하고 토론하는 등 이른바 ‘팀플레이’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약점이다. 팀플레이에 참가할 수 없으면 그만큼 공부하기가 힘들다. A 씨는 3학년 때 선택한 전공 2개 중 하나를 유지할 수 없어 대부분 복수전공을 한 현지 학생과 달리 단일전공으로 겨우 졸업장을 받는데 그쳐야 했다.

미국 대학식 글쓰기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 보스턴 소재 브랜다이스대 박사과정의 이진민(33·여) 씨는 “미국 교수들은 서론에 문제의식과 논거를 명료하게 제시하는 ‘두괄식’ 글을 좋아하는데, 한국 학생은 미사여구나 수식어가 많은 ‘미괄식’ 글을 쓰기 때문에 점수를 깎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부 유학생은 글쓰기에 골머리를 앓다 표절 유혹에 넘어가기도 한다. 미국 명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던 특목고 출신 유학생 B(22) 씨는 다른 대학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의 보고서 파일을 받아 일부를 수정해 과제로 제출했다가 교수에게 적발됐다. B 씨는 물론 파일을 건네준 학생까지 F학점을 받았다.

○ 암기식 공부의 한계

미국 메릴랜드주립대에서 올해 봄 학기 서양고전 강의를 한 이 학교 박사과정의 백모(29) 씨는 학생의 시험 답안을 채점하다가 놀랐다. 고전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던 특목고 출신의 한국인 유학생이 작품의 주제와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묻는 시험에서는 바닥권 점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백 씨는 “입시 위주의 주입식 공부의 영향 때문인지 한국 유학생들은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미국 학생보다 상당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암기식 교육의 폐해는 이공계 유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공식 외우기와 문제풀이 중심의 선행학습을 통해 한국 학생이 강점을 보인다는 수학에서조차 대학에 들어가 한두 학기만 지나면 현지 학생과 비교해 실력 격차가 없어지거나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MIT) 박사과정의 노정호(32) 씨는 “미국 학생들은 중고교 때부터 단순계산은 계산기에 맡기고 공식 유도과정이나 기초개념의 심화학습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며 “이 같은 기초체력의 차이가 나중에 실력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미덕인 겸손함이 유학 생활에서는 오히려 약점이 되기도 한다. 수업에서 자기주장을 적극 펼치거나 토론 상대를 비판하는 것을 꺼리는 성향 때문에 한국 유학생들은 수업에 흥미가 없거나 소극적이라고 오해받곤 한다는 것이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