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사회’ 아이들까지 망쳤다

  • 입력 2008년 5월 1일 02시 57분


“인터넷 - TV서 본대로” 초-중생 10여명, 여학생 3명 집단 성폭행

대구 초등교 2월 자체조사 “40여명 음란행위”

동성간 성행위 강요, 피해남학생 가해자 되기도

학부모들 “학교-교육청 알고도 5개월 쉬쉬”비난

남학생 10여 명이 여학생 3명을 집단으로 성폭행했다. 이들 남학생은 인터넷과 케이블TV에서 봤던 음란물을 흉내 냈다.

동성에게서 성폭력을 당한 남학생은 나중에 여학생을 성폭행했다. 중고교나 대학이 아니라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피해 여학생 부모가 신고=대구 서구 모 초등학교에 다니는 A(9) 양 등 여학생 3명의 부모가 최근 대구서부경찰서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지난달 21일 오후 5시경 모 중학교 테니스장에서 초등학교 6학년인 B(12) 군 등 12명이 A 양 등을 성폭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여학생 2명은 B 군 등에게서 집단으로 성폭행당하거나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다른 여학생 1명은 이런 사실을 부인했다.

“피해를 당한 여학생이 3명이 아닌 8명이었다”는 진술이 나와 경찰이 탐문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남학생들은 동네 선후배 사이로 중학교 1, 2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이다. 12명 가운데 B 군 등 3명은 혐의를 시인했다.

B 군은 “중학생 선배가 재미있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며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한 뒤 함께 성폭행을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나머지 가해 남학생들을 차례로 조사할 예정이다. 처벌하기 힘든 형사미성년자(14세 미만)라서 초등학생은 부모에게 인계하고 중학생은 가정법원 소년부로 인계할 방침.

이 학교가 2월에 자체 조사한 결과 음란행위를 했던 학생이 40여 명으로 나타났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

▽음란물 보고 모방=남학생들은 “인터넷과 케이블TV를 통해 방송되는 성행위 장면을 흉내 냈다”고 털어놨다.

대부분 맞벌이 부부의 자녀였다.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에 TV나 인터넷의 음란물을 자주 봤다.

피해 학생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지난해 상급생이 음란물에 나오는 행위를 하급생에게 강요하는 등 수시로 음란행위를 했던 사실을 확인했다”며 “일부 상급생이 하급생에게 음란물을 억지로 보여주고 동성 간 성행위를 요구한 뒤 거부하면 마구 때리고 따돌림 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피해를 본 남학생이 여학생을 성폭행하는 데 가담했다. 학교 안에서 어린이들이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로 뒤엉킨 셈.

▽교육당국 5개월 관망=이 학교에서 학생들의 집단 성추행 사실이 드러난 것은 지난해 11월 중순. 이 학교의 한 교사는 남학생들이 음란성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고 학교장에게 알렸다.

학교장은 몇몇 가해 학생을 대상으로 책을 읽게 하고 학부모와 상담을 하는 등 자체 지도를 하다가 올 1월 관할 남부교육청에 이 내용을 알렸다. 남부교육청은 2월 말 대구시교육청에 이 상황을 보고했고 시교육청은 3월 초순에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당시 교장인 김모 씨는 “가해 학생도 음란물의 피해자라고 봤기 때문에 처벌보다는 교육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해명했다.

교육당국이 5개월가량 관망하는 동안 사태는 오히려 확산돼 지난달 21일 여학생 3명이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학부모들 불안감=해당 학교 측과 교육청이 5개월 동안 쉬쉬한 사실이 드러나자 학부모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홈페이지에도 30일 교육당국의 ‘무신경’을 비난하는 학부모들의 글이 잇따랐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을 키우는 주부 박모(36·대구 수성구) 씨는 “앞으로 아이를 마음 놓고 학교에 보낼 수 있겠느냐. 학교와 교육청이 꼼꼼하게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게 교육 아니냐”고 걱정했다.

대구시민사회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학교에 청소년 성교육 전문가를 배치해 상담과 치료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 영상 취재 : 이훈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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