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후 인생을 보람있게]<1>전문직 퇴직자는 사회의 자산

  • 입력 2008년 4월 28일 02시 59분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나면서 성공적인 노년은 우리 사회의 과제가 됐다. 하지만 전문직에 종사했던 퇴직자들의 ‘인생 후반전’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와 대한생명은 전문직 퇴직자의 제2 인생 설계를 돕고 이를 통해 사회 공익을 추구하는 ‘해피 시니어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동아일보는 희망제작소와 함께 전문직 퇴직자들이 전문지식과 경험을 발휘하며 보람 있는 인생 후반전을 보내는 방법을 찾아본다.》

#1. 기업은행 서소문지점장을 끝으로 지난해 1월 퇴직한 최세영(57) 씨. 퇴직자 재고용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 기업은행 문래동지점에서 계약직 ‘기업고객관리자(CoRM)’로 일하고 있다.

급여는 퇴직 전의 4분의 1로 줄었고, 일할 수 있는 기간도 2∼3년 정도지만 그는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한다.

대학 동기나 옛 회사 동료들은 재취업을 하지 못해 대부분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전 삼아제약 이사 강희양(62) 씨는 2000년 퇴직 후 무료한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 싱가포르로의 ‘은퇴 이민’까지 고민했다. 하지만 2002년부터 서울 서초노인복지관의 자원봉사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기업들에 봉사할 곳을 연결해 주는 게 그의 업무다. 은퇴 전 인사·조직관리 업무를 했던 경험과 그때 얻은 인맥이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는 “나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를 찾아 행복하다”며 “퇴직한 친구들을 보면 경제적으로 풍족해도 자신감을 잃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5년 안에 97만 명 퇴직 예상

최 씨와 강 씨처럼 퇴직 후 경력을 살려 일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전문직 퇴직자들은 고용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단순 노무 일자리는 눈에 안 차고,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는 임금 부담 탓에 기업이 꺼린다.

헤드헌팅 업체인 엔터웨이파트너스 박운영 부사장은 “정보기술(IT), 금융 등 전문분야일수록 경쟁력 있는 젊은 층이 주도해 고령자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저소득층 퇴직자들에게는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전문직 퇴직자는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최성재 교수는 “전문직 퇴직자들은 노후 준비를 알아서 잘할 거라는 생각에 정부와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며 “국가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 현재 50세 이상 고위 임직원이나 관리자, 기술자 등 전문직 종사자는 97만여 명. 이들은 앞으로 5년 안에 지금의 직장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1955∼1963년에 태어난 고학력 베이비붐 세대도 10년 안에 퇴직 행렬에 들어서게 된다.

○ 자격증 취득 등 사회참여 욕구

한국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은 78세. 평균 54세(남성 기준)에 퇴직하면 24년이 ‘인생 후반전’으로 남게 된다.

이 때문에 퇴직자들은 다양한 경력 개발에 관심이 많다. 전문직의 경우엔 일이나 보람 있는 여생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2000년 상호저축은행 부사장을 끝으로 퇴직한 뒤 노인 대상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하며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받은 조수환(65) 씨는 “수입보다는 활동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문직 퇴직자들의 인생 후반전 해법으로 비영리 기관에서 공익 프로젝트를 기획, 실행하는 ‘사회공헌 일자리’를 꼽는다.

희망제작소가 지난해 3∼4월 40∼59세 퇴직자 30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60.9%가 “비영리 기관에서 일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경희 고령사회정책팀장은 “전문직 퇴직자들은 자아개발이나 사회참여 욕구가 높아 사회서비스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이 분야에서 재취업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기여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아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