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 역사’

  • 입력 2008년 4월 14일 03시 00분


석굴암의 무거운 천장을 어떻게 올렸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를 알아낸다면 아주 놀라운 발견이 될 터다. 하지만 좀 더 크게 생각해 보자. 만약 우리나라가 망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석굴암 자체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린다면?

여진이나 말갈의 역사에 관심 갖고 가꾸는 이는 거의 없다. 뒤를 이은 나라가 없는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을 으뜸가는 국가로 키운다면 우리네 역사도 빛을 낼 것이다. 우리가 힘없이 스러져 버리면 지난 역사도 흩어져 버릴 테고.

‘뜻으로 본 한국 역사’는 역사란 단순히 옛것의 기록이 아님을 일깨우려 한다. 역사란 지금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끊임없이 변한다. 배우들에게는 주어진 배역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민족의 역사에서 주어진 역할이 있다.

민족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이를 밝히기 위해 지은이 함석헌은 지나온 세월을 죽 훑는다. 그이의 눈에 우리 역사는 한마디로 ‘고난의 역사’였다. 만주벌판을 누비던 삼국시대까지가 황금기였다면, 그 다음은 망해 가는 과정이었을 따름이다. 뜻을 세상에 펼치기는커녕, 좁은 한반도에 갇혀 살아남기에도 벅찬 모양새였다. 그 결과 우리는 ‘정치라면 구차한 외교로 나라의 명맥을 유지하는 일로 알고, 직업을 하면 입에 풀칠이 목적이요, 사업을 한다면 당장 내일로 보수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뿐인’ 초라한 모습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초라한 역사는 민족의 분단과 6·25전쟁에서 극에 달한다. 우리 민족은 급기야 ‘세계 역사의 하수구’가 되어버렸다. 명분 싸움만 벌이는 유교, 대학 잘 가고 아들 낳게 해달라는 소원 빌기만 남은 민속 종교, 거기다 돈만 아는 자본주의와 현실 모르는 이념만 외치던 공산주의까지. 세상의 모든 잘못이 한반도로 뛰어들어 와 민족을 둘로 나누며 피 튀기는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함석헌은 우리가 ‘역사의 하수구’가 되었다는 점에서 희망을 본다. 간디는 ‘고난을 통한 평화’를 외쳤다. 우리 민족은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낼 만큼 강하다. 더구나 심각한 고비를 넘긴 영혼은 더욱 맑고 강해지는 법이다.

우리 민족은 착하고도 씩씩하다. 건국신화는 남들을 누르고 죽인 기록으로 가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단군신화에는 살인도, 억누름도 없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네 전설에는 복수를 높이 사는 이야기도 없다. 사랑과 용서로 가득할 뿐이다. 바로 이 ‘착함’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주인이 될 만하다.

함석헌은 약육강식을 근본으로 삼던 인류 문명이 그 목표를 바꾸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역사는 도덕과 윤리를 존중하는 쪽으로 180도로 바뀔 터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가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의 늘어나는 욕심을 채우기에 자원은 너무 부족한 현실이다. 이뿐 아니다. 힘만 앞세우던 강대국들이 약한 민족들의 저항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라. 함석헌의 예언이 빈말이 아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닥쳐올 새 시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민족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살아남으려 허덕이느라 큰 판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비참만이 남게 될 것이다. 지나간 고난은 가치를 올곧게 세우고 꿈을 틔우라는 역사의 바람을 놓친 결과였다. 대한민국은 이제 잘사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나라이기도 할까? 단순히 살아남는 데 매달려서는 지난 세월의 고난은 언제고 반복될 수 있다. ‘깨어있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의 외침에 귀 기울일 일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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