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지식의 안내자 아닌 통제자로 변질”

  • 입력 2008년 1월 28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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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는 25일 서울 중구 명동 이비스앰배서더호텔에서 ‘인터넷 권력의 해부’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왼쪽부터 이원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책임연구원, 배영자 건국대 교수, 조현석 서울산업대 교수, 유석진 서강대 교수, 황주성 KISDI 미래비전연구그룹장, 김중태 마이윙 이사, 김상배 서울대 교수. 변영욱  기자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는 25일 서울 중구 명동 이비스앰배서더호텔에서 ‘인터넷 권력의 해부’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왼쪽부터 이원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책임연구원, 배영자 건국대 교수, 조현석 서울산업대 교수, 유석진 서강대 교수, 황주성 KISDI 미래비전연구그룹장, 김중태 마이윙 이사, 김상배 서울대 교수. 변영욱 기자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化汀)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소장 이규민)는 25일 서울 중구 명동 이비스앰배서더호텔 회의실에서 ‘인터넷 권력의 해부’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 참가한 30여 명의 전문가는 인터넷 미디어의 지식권력화가 초래한 문제, 오프라인 사회 현상과 인터넷의 관계 등에 대해 논의를 주고받았다. 특히 상업적 의도에 의한 웹포털의 지식 왜곡, 소수 사업자의 인터넷 독과점 현상, 테러리스트를 비롯한 범죄 집단의 인터넷 네트워크 활용 등 인터넷의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됐다.》

제1부 인터넷 권력의 부상

검색된 정보가 최선의 것이라는 인식 널리 퍼져

실상은 포털 입맛대로 편집해 지식 상업적 왜곡

김상배 서울대 교수, 김평호 단국대 교수 등이 참가한 1부에서는 지식의 통제자로 변질된 포털사이트 검색, 위키피디아의 질적 신뢰에 대한 문제, 손수제작물(UCC)의 사회적 확장으로 초래되는 책임성 등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김평호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포털 검색이 공평무사한 지식의 안내자가 아닌 지식의 통제자로 변질됐다”며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지식권력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지식과 기술의 상업적 왜곡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선 자신들의 의도에 맞게 검색 순서를 편집하는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의 문제를 들었다. 그는 “검색 결과 순서를 컴퓨터가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구글과 달리 네이버 등 한국의 검색사이트는 광고를 비롯한 상업적 의도를 위해 지식 배열 순서를 정해 지식을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네이버는 다른 검색사이트의 네이버 콘텐츠 검색을 차단하는 폐쇄성까지 갖고 있다”며 “이는 자율과 개방이라는 인터넷 지식 검색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 오용으로 대형 검색사이트가 인터넷 공간을 장악하는 지식 독과점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색 편의를 제공한다는 취지 아래 포털 사업자가 사용자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축적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토론자들은 편향성을 해소하기 어려운 국내 검색사이트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하고 사용자 비판 의식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김상배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참여, 개방, 공유라는 자율적 특성을 근간으로 진화해 온 인터넷이 권력으로 바뀌었다”며 “정보기술(IT) 네트워크가 ‘정보’를 ‘지식’으로 만드는 처리 과정을 변화시키면서 그 과정을 주도하는 포털에 새로운 권력을 부여했다”고 지적했다. 예전에는 지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것들이 지식으로 인정되고 포털이 무슨 정보든 검색할 수 있으며, 검색된 정보가 최선의 것이라는 인식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인터넷 지식 권력의 대표적인 사례인 미국의 위키피디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누리꾼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위키피디아는 17, 18세기 유럽의 백과사전처럼 지식의 통로를 확장했으나 정보나 지식의 질적 신뢰도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교학 교수로 알려진 에스제이는 위키피디아에서 2만여 건의 항목을 집필하거나 편집했으나 나중에 젊은 실업자로 밝혀져 인터넷 지식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사례가 됐다.

배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또 UCC가 17대 대선에서 예상보다 여론 형성 기능을 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개인의 관심사를 공유해 미시적 변화를 만드는 UCC는 정치적 소통 구조를 변화시키는 거시적인 변화에는 맞지 않았다”며 “사적 영역에서 사회적 소통이 가능해질수록 책임감 있는 콘텐츠의 생산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2부 인터넷의 새로운 질서

‘익명의 막말’ 누리꾼 신뢰 저하

가상-현실 경계완화 지켜볼 필요

2부에서는 인터넷 토론과 온라인 게임 등에서 사이버 공간의 질서가 올바르게 자리 잡지 못해 인터넷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는 현실을 조명했다.

김은미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자유로운 고대 아고라의 복원에 대한 기대를 모았던 인터넷 토론이 ‘비판 없이 소모적 비방, 욕설, 저주만 오가는 공간’으로 변질되면서 누리꾼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직접 만나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대면 커뮤니케이션처럼 인터넷 토론도 소통하는 상대에 대한 인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터넷 토론의 발전 가능성으로 △서로 다른 자아에 대한 폭넓은 체험과 인정 △하나의 원칙이 아닌 복수의 가치관에 대한 이해 등을 꼽았다.

박영민 파리8대 공학박사는 “온라인 게임과 사이버 공간의 확산을 통해 가상세계와 현실세계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경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며 “그러나 이로 인해 사이버 중독, 사이버 폭력 등의 역기능이 현실 세계의 짐이 되어가는 현상도 있다”고 말했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해 미국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인터넷 커뮤니티 ‘세컨드 라이프’에서 사이버머니로 엄청난 부를 영위하는 사람이 현실세계에서도 스타로 대접받았는데 이것은 박영민 박사가 언급한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3부 인터넷의 새로운 권력자

감정적 사회참여 빈번히 등장

목적 결여돼 ‘운동’으론 미흡

3부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사회운동과 제품의 생산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소비자인 ‘프로슈머(prosumer)’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문제가 제기됐다.

김종길 덕성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추구하는 바가 명확한 이성적 사회운동보다 특정 사안에 대한 불만에 의해 촉발되는 감정적 사회운동의 등장이 빈번해지고 있다” 고 말했다.

인터넷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용이해졌지만 체계적인 조직화가 어렵다는 한계 때문에 사회운동으로서 완결성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변화의 방향과 목적이 결여된 ‘사이버 액티비즘’을 ‘사회운동’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그저 편리한 네트워크를 이용한 사회 참여의 한 모습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최항섭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프로슈머에 대해 “전통적 미디어의 기업 광고가 갖고 있었던 시장 권력을 이동시키고 있다”며 “하지만 적잖은 시간을 활용하면서 최신 기술에 집착하며 소비욕을 키우는 프로슈머가 권력의 주체가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호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인터넷 덕분에 다양한 문화담론이 직접 개인에게 다가가는 대안적 담론의 장이 형성됐다”며 “하지만 아마추어들이 콘텐츠 소개 등을 통해 영향을 미치는 것을 문화 민주주의의 확대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제4부 인터넷 권력과 세계 질서

사이버공간도 선-후진국 간극

테러-反테러 세력 다툼 치열

4부에서는 글로벌 디지털 디바이드와 인터넷을 통한 글로벌 시민운동이 세계 정치에 미치는 영향 등이 거론됐다.

문상현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하드웨어적인 불균형에 의해 인터넷 네트워크의 혜택이 달라지는 글로벌 디지털 디바이드가 강화되고 있다”며 “이를 해소하는 데 정부와 민간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재성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인터넷을 통해 테러 동조자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는 테러리스트 집단과 미국 등 국가들의 사이버 대응 노력이 현실 세계와 인터넷 공간의 벽을 허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헤즈볼라 하마스 등 테러 단체의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해 보면 그 단체가 추구하는 목표와 일에 대한 공식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며 “이에 대해 미국은 백악관 사이버테러에 대한 국가 전략을 제시하는 등 현실 세계의 다툼이 인터넷에 그대로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현석 서울산업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인터넷을 통한 글로벌 시민사회운동이 세계 정치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며 최근 정치운동 양상의 변화에 대해 언급했다. 이에 대해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최근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글로벌 인터넷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시민사회운동이 벌어지지 않았다”며 “인터넷 저변이 약한 나라의 국민은 글로벌 시민사회운동에서도 배제되는 ‘글로벌 디지털 디바이드’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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