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만에 되찾은 사시 합격증

  • 입력 2008년 1월 19일 03시 04분


유신반대 시위 ‘국가관 불량’ 이유로 면접 탈락

1970년대 유신체제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두 차례 퇴학당했던 정진섭(56) 한나라당 의원은 유신체제가 끝난 이른바 ‘1980년 서울의 봄’에 서울대 법학과에 복학했다.

정 의원은 화염병 대신 펜을 다시 들었다. 사법시험에 도전한 결과 이듬해에 1, 2차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3차 면접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당시 군사정권하에서는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었죠. 법조인의 꿈을 접고 당시 야당인 신민당에서 보좌관으로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정 의원처럼 전두환 정권 초 사시 3차 시험에서 불합격한 사람은 모두 10명.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9월 “국가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라며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10명 중 4명은 1980년대에 사시에 다시 도전해 이미 합격했지만 정 의원 등 나머지 6명은 15일 사법시험 3차 면접에 통과했다. 27년 만이었다.

정 의원을 비롯해 한인섭(49) 서울대 법대 교수, 조일래(54) 한국은행 법규실장, 신상한(52) 한국산업은행 윤리준법실장, 박연재(56) KBS목포 방송국장, 황인구(49) SK가스 석유개발팀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21일 정성진 법무부 장관에게서 합격증을 받는다.

‘늦깎이’ 합격증을 받는 정 의원은 18일 “1980년 ‘서울의 봄’이 다시 찾아왔다”며 “나중에 의원직을 마치면 꼭 사법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지방 작은 법원에서 판사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인섭 교수는 “27년 전 면접 첫 질문이 ‘학생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는데 올해 면접에서는 사법 개혁 흐름에 대해 물었다”며 “당시엔 ‘국가관 불량’으로 떨어졌는데 법무부 결정은 이제 민주화되고 상황이 바뀐 증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법조인이 되는 것을 그렇게 바라셨던 아버지가 사시 불합격 이듬해에 돌아가셨다”며 “올해는 아버지 묘소에 가서 할 말이 생겼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학생들 보기 민망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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