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2008 +10 & -10]<4>인력풀 확대

  • 입력 2008년 1월 8일 02시 52분


‘슈퍼맘’도… ‘오륙도’도… 함께 일하는 코리아로

10년뒤엔 65세 이상 14% ‘고령사회’… 절대인구 감소 시작

KDI “여성-고령자 활용 못하면 2010년부터 인력부족 직면”

임금피크제-재택근무제 등 잠재노동력 활용이 해결 열쇠

《현대상선에서 55세의 개념은 다른 직장과는 사뭇 다르다. 보통 정년(停年)을 맞아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시기지만 이 회사에서는 ‘한창 일하는 일꾼’이다. 현대상선의 승선 인력 874명 가운데 55세 이상은 133명. 준고령자(50∼54세)까지 포함하면 333명으로 전체 직원의 38%에 이른다. 직원 10명 가운데 4명은 50대인 셈. 이는 젊은층이 힘든 해상 업무를 꺼리면서 인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2006년 정년을 57세에서 58세로 늘린 데 이어 임금피크제까지 도입한 결과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연장하면서 급여 인상과 승진을 제한하는 제도. 이 회사에 ‘고령 일꾼’만 많은 것은 아니다. 베트남과 미얀마 등에서 온 25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도 있다. 이 때문에 노동전문가들은 현대상선을 ‘이미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의 미래’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현장으로 꼽는다.》

앞으로 10년 뒤인 2018년은 인구가 4934만 명으로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다. 또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총인구의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동력 부족 현상은 이보다 훨씬 빨리 찾아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경제활동참가율이 낮은 노인과 여성의 활용은 이제 한국 경제의 선택이 아닌 필수과제가 됐다.

성신여대 강석훈(경제학) 교수는 “10년 뒤면 절대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에 그전에 선진국 문턱을 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앞으로 10년을 우리 경제에 주어진 마지막 ‘축복 기간(Grace period)’로 여기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고령화 재앙’의 갈림길

고령화의 파고(波高)는 예상보다 훨씬 높고 거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복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재정 건전성이 훼손되고 인력 부족으로 경제의 성장 기반마저 무너뜨리는 등 경제에는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내놓은 ‘선진 한국을 위한 정책방향과 과제’ 보고서에서 “청년과 여성, 고령자의 잠재 인력을 활용하고 개발하는 수준이 지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2010년부터 인력 부족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노동연구원도 “10년 뒤에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60세 전후에 이르러 노동시장에서 퇴장함에 따라 노동력 부족 및 부양 부담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역시 이른바 ‘단카이(團塊·덩어리) 세대’의 대규모 퇴직이 지난해 시작됨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기술 전수에 차질이 생기는 등 이른바 ‘2007년 문제’가 대두됐다.

단카이 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인 1947∼1949년에 태어난 세대로 일본 인구의 약 5%인 680만 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KDI는 △직무급제 및 임금피크제 도입 △연령차별 금지 △고령자에 대한 평생학습체계 구축 등을 통해 근로생애를 연장시키는 ‘적극적 고령화(Active aging)’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고령자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연금제도의 개편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한국인구학회는 최근 노동부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국민연금 수급자가 2006년 65세 이상 인구의 13.2%였지만 2015년 이후에는 30%를 넘을 것”이라며 “연금수급이 노인 인구의 근로의욕을 감소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연금제도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여성은 준비된 잠재 인력



대웅제약 인력개발팀의 현순경(39·여) 차장의 출근 시간은 다른 직원보다 1시간 늦은 9시 반이다. 이 회사가 2003년부터 시행하는 탄력근무제를 활용하고 있는 덕분에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아침식사도 손수 차려 주고 학교까지 바래다줄 수 있게 됐다.

현 차장은 아들이 생후 10개월이 됐을 무렵인 2001년 12월부터 재택근무도 했다. 1주일에 한 번 출근해 회의와 업무보고 등을 하면서 기준급여의 90%를 받았다. 그녀는 2년 8개월 만에 복귀했고 이후 1년 뒤 지금의 차장 직급으로 승진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탄력근무제와 재택근무제는 직장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제도로 고급 여성 인력을 채용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현재 40여 명의 직원이 이 같은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고용시장의 현실에 비춰볼 때 현 차장의 사례는 흔치 않다. 여전히 많은 여성이 고학력자이면서도 가사와 육아 부담 때문에 비경제활동 상태에 있기 때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5년에 내놓은 ‘고용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50.7%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었다. 대졸 여성의 참여율도 57.6%에 그쳐 OECD 평균(78.1%)보다 20%포인트 이상 낮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위원인 고려대 곽승준(경제학) 교수는 “한국의 여성 인력은 매우 우수한 ‘준비된 노동력’인데도 활용률이 낮다”며 “국가가 출산부터 취학 전까지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여성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연구원 김혜원 연구위원도 “출산과 육아에 따른 비용 부담을 기업에서 사회로 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외국인 노동력 확대 ‘혼혈 경제’로▼

■ 인력풀 또다른 돌파구

LG전자의 마케팅과 구매는 지난해 말 영입된 파란 눈의 외국인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더모트 보든 부사장과 최고구매책임자(CPO) 토머스 린튼 부사장이 각각 총괄한다. 주요 대기업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핵심 기능을 모두 외국인이 맡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에 앞서 2006년 11월 두산그룹은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맥킨지 출신의 외국인인 제임스 비모스키 씨를 부회장으로 영입해 인수합병(M&A) 업무를 맡겼다.

삼성전자도 정보통신총괄 전략마케팅팀 데이비드 스틸 상무 등 외국인을 본사에 영입했으며 SK C&C는 지난해 9월 인도의 정보기술(IT) 전문가인 마니시 프라카시 씨를 임원으로 선임했다.

과거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이뤄진 외국인 고용은 국경을 넘은 고급 두뇌 유치 수단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인력 풀(Pool)을 넓히는 또 다른 ‘돌파구’가 되고 있는 셈.

외국인 기용은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윌리엄 라이백 전 홍콩 금융감독국 부총재를 특별고문으로 영입했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도 데이비드 엘든 두바이국제금융센터 회장이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영입됐다.

이런 추세에 따라 폐쇄적인 고용구조를 개방형으로 바꿔 ‘혼혈경제’로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도 최근 개방적 이민 허용과 이중 국적 등 혼혈경제에 맞는 제도 검토에 나섰다.

이런 추세라면 ‘파란 눈의 삼성전자 CEO’ 시대도 머지않았다는 것이 재계의 전망이다.

CEO에 국적(國籍) 대신 실적(實績)을 묻는 초(超)국적 기업문화는 미국 기업에서는 이미 흔한 일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문지원 수석연구원은 “글로벌화가 당면과제인 국내 기업들에도 외국인 CEO는 이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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