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이슈점검/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어떻게 돼가나

  • 입력 2007년 10월 25일 06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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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반드시…” 佛과 물밑협상 중

조선시대 말 강화도에 침입한 외국 군대가 약탈해 간 유물에 대한 귀환 협상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미군이 1871년 신미양요 때 전리품으로 가져간 강화도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1823∼71) 장군의 군기가 이미 돌아왔고,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인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한 정부 간 물밑 협상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 귀환한 제1호 약탈 유물

미국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있던 어재연 장군기는 문화재청 주도로 고국으로 돌아와 22일 공개됐다.

이 장군기는 신미양요 당시 강화도에 상륙한 미군이 노획해 간 대포, 조총, 화승총 등 무기류 481점과 군기 50개 중 한 개다. 이 중 장군기가 가장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에 속한다.

장군기는 가로 4.15m, 세로 4.35m의 대형 삼베 천에 ‘帥(수)’라는 글자가 쓰여 수자기(帥字旗)로도 불린다. 조선시대 말엔 국기가 없었던 터라 이 수자기가 조선 국기이자 주권을 상징했다는 것.

수자기 반환 운동은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고, 인천시의회는 5월 ‘수자기 반환 촉구 결의안’을 내기도 했다. 이 기는 영구 반환이 아닌 장기 대여(초기 2년 후 최장 10년까지 연장 가능) 방식으로 돌아왔다.

안덕수 강화군수는 “장기 대여가 문화재를 까다로운 절차 없이 고국으로 들여오는 합리적인 방식”이라며 “강화도에서 약탈된 다른 문화재도 이런 방식으로 귀환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 속 빈 외규장각

조선 정조대왕의 지시로 1781년 건축된 강화도 외규장각에는 의궤를 포함한 5000여 권의 책자가 보관돼 있었다.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극동함대가 1866년 10월 16일 강화도를 점령한 뒤 외규장각에 있던 서적 대부분을 불태우고 사료적 가치가 높은 가철서(假綴書) 300여 권, 족자 7개, 갑옷 3벌, 가면 1개 등을 약탈해 갔다.

이들 유물 반환 협상은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이 ‘상호 교류와 대여’ 원칙에 합의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프랑스는 한국의 고속전철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상태였다.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이경재(한나라당) 의원은 “외규장각에 있던 고서 1권이 국내로 들어오자 프랑스에서 비판적인 여론이 거세게 일어 반환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이후 2001년 민간 협상단이 꾸려져 외규장각 문서를 임대 형식으로 돌려받는 대신 국내 고문서를 프랑스에 주기로 한 ‘등가 교환 방식’이 논의됐으나 이 또한 국내 반발로 무산됐다.

정부는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은 지난해부터 물밑 협상을 다시 진행 중이다. 인천시는 불에 타 없어진 강화읍 내 외규장각 주요 시설에 대한 복원공사를 2005년 마치고 이곳을 채울 문서를 기다리고 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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