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언론 대못질’]제1부<1>盧정부 702건 중재신청

  • 입력 2007년 8월 2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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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9월 시작되는 정기국회 때 각 부처의 기자실 폐쇄 등을 주도한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에 대한 파면 요구 결의안을 내기로 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출석해 기자실 통폐합 방안에 관해 보고하는 김 처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나라당은 9월 시작되는 정기국회 때 각 부처의 기자실 폐쇄 등을 주도한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에 대한 파면 요구 결의안을 내기로 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출석해 기자실 통폐합 방안에 관해 보고하는 김 처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거나 ‘의도가 악의적이다’며 소송을 내거나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언론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언론중재위원회는 현 정부 들어 국가기관의 무차별 중재 신청으로 업무가 폭주하고 있다.

한 언론학자는 “현 정부가 남발하는 언론에 대한 법적 대응은 합법을 가장한 교묘한 언론 탄압”이라고 말했다.

▽중재 신청 급증, 소송은 거의 패소=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이 최근 언론중재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3년 2월 25일 현 정부가 출범한 이래 2007년 7월 31일까지 정부 각 부처는 언론중재위에 702건의 중재 신청을 냈다. 4년 동안 평균 2.4일에 1건꼴로 정부가 언론을 상대로 중재 신청을 한 셈이다.

중재 신청과는 별도로 각 언론사에도 정정·반론보도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17건의 중재를 신청했다. 중재 신청 702건은 김대중 정부 5년간 중재 신청(118건) 수치와 비교하면 595%, 김영삼 정부 5년간(27건)에 비하면 2600% 늘어난 것.

특히 현 정부의 중재조정 신청(702건) 가운데 동아일보(67건), 조선일보(71건), 문화일보(52건) 등 현 정부가 비판 언론으로 꼽는 언론사에 법적 대응이 집중됐다.

현 정부에서 정부기관이나 정부 인사, 대통령 친인척이 주요 언론사를 상대로 정정보도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이긴 사례는 많지 않다. 정부기관 등이 주요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소송 중 1심 판결이 난 것은 11건이며 이 가운데 원고 측이 일부라도 승소한 것은 3건에 불과하다.

법원이 기사의 세부 내용이 다소 진실과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악의적인 공격이 아니면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언론사의 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기사가 아니어서 정정보도 청구 대상이 아닌 칼럼까지도 문제 삼았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등 4개 위원회가 지난해 조선일보의 칼럼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비평은 정정보도 대상이 아니다”라며 위원회의 청구를 기각했다.

언론사가 패소한 사례 중 하나로는 MBC의 ‘서울지방경찰청 연금매장 카드깡’ 보도를 꼽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정정 보도를 이끌어 낸 경찰공무원의 노고에 가슴이 찡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 취지 악용하는 신종 언론 탄압”=힘없는 민초들이 언론으로부터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 언론중재법이다. 언론의 감시 대상이 돼야 할 국가권력이 오히려 언론중재법을 이용해 비판적 언론에 걸핏하면 법적 대응의 칼을 휘두르는 것은 비판적 보도를 위축시키기 위해 법 취지를 악용하는 ‘신종 언론 탄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나아가 ‘국정브리핑’에 올해 각 부처의 정정 및 반론 보도, 언론사 기고, 국정브리핑 반론 기고 등 각 부처의 언론 대응 사례들을 공개하기로 해 논란을 불렀다. 잘못된 보도의 기준을 정부 부처가 자의적으로 정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대응 결과 공개는 사실 여부가 판명될 때까지 언론사 및 기자를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문광위 소속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중 대부분의 국가는 오보에 대한 시정요구나 항의를 할 때도 행정적 법적 대응조치까지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7월 들어 정부 조정 신청이 1건인 까닭은=언론중재위의 ‘국가기관 월별 신청 건수’ 자료를 보면 7월 한 달 동안 정부 부처가 중재를 신청한 것은 단 1건뿐이었다. 지난해까지 월평균 13.6건, 올해 들어서도 6월까지 평균 9.2건을 기록했던 중재 신청 건수가 갑자기 1건으로 줄어든 이유는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정병국 의원은 “언론의 비판적 보도는 그대로였지만 청와대와 홍보처가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추진을 재촉하던 7월 정부 부처의 중재 신청 건수가 급감한 것은 홍보처가 그동안 보도에 적극 대응하도록 무리하게 각 부처에 압박을 가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싸움 부추기는 홍보처▼

노무현 정부는 ‘정책홍보관리 평가’라는 제도를 통해 국정홍보처뿐 아니라 각 부처까지 ‘언론과의 전쟁’에 뛰어들게 하고 있다.

홍보처는 매년 10월 각 부처의 정책홍보 관리 실적을 토대로 각 부처와 홍보관리관들의 업무 성과를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 평가 항목의 상당 부분이 언론 보도에 대한 각 정부 부처의 대응 여부나 신문사 등 언론에 정책광고를 하기 전에 홍보처와 협의했는지 등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비판 기사에 대한 대응이 빠를수록, 정정보도 신청 등 법적 대응이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도록 평가 기준이 마련돼 있는 것이다.

홍보처가 최근 각 부처에 배포한 ‘2007년도 특정평가 세부지침’에 따르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00점 만점 가운데 ‘정책보도 수용 및 대응의 적정성’ 항목에 20점을 배정했다.

홍보처는 20점 가운데 10점은 언론의 지적 사항을 정책에 얼마나 잘 ‘수용’했느냐를 평가하는 것으로 오히려 정부가 언론의 지적을 적극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은 “언론의 기사를 정책으로 수용하는 것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하고, 때로는 불가능할 때도 많기 때문에 ‘단순 참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언론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10점을 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평가항목의 핵심은 역시 언론 보도에 대한 신속하고 과감한 ‘대응’에 있다는 얘기다. 각 부처가 점수를 잘 받으려면 언론 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정보도 신청 등 법적 대응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

홍보 업무를 맡고 있는 한 공무원은 “홍보처가 자기네 입맛대로 기준을 정한 후 전 부처의 홍보를 쥐락펴락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각 부처를 ‘정권 코드’에 따르도록 자의적으로 줄을 세우는 홍보 평가는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기자등록 훈령 변경 ‘눈가리고 아웅’▼

국정홍보처는 23일 ‘기자 등록제’ 논란을 부른 총리 훈령의 정부중앙청사 출입기자 등록 관련 조항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홍보처 관계자는 이날 “총리 훈령에 규정된 ‘기자 등록’ 조항은 단순히 청사 출입증 발급을 위한 절차인데 마치 5공화국식 프레스카드라는 불필요한 오해가 생겨 문구를 변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훈령 20조 1항은 ‘국정홍보처장은 정부기관을 상대로 취재 활동을 하고자 하는 기자의 등록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를 ‘국정홍보처장은 정부기관의 취재 활동 편의를 위해 기자가 등록을 요청하는 경우 등록을 받아야 한다’로 바꾸기로 한 것.

홍보처는 바뀐 ‘기자 등록’ 조항에 따라 등록을 요청하는 기자에 한해 정부중앙청사 통합브리핑룸 정기출입증을 발급할 예정이다.

홍보처 관계자는 “등록 신청을 하지 않으면 매번 방문증을 받아 통합브리핑룸을 출입해야 하고 각 부처에서 기자 개인에게 e메일로 제공하는 보도자료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 부처 출입기자 등록을 홍보처장이 도맡아 관리 및 유지한다는 점은 여전히 같기 때문에 이번 훈령 변경은 여론의 반발에 밀린 홍보처의 ‘눈 가리고 아웅’식 조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홍보처에 등록하지 않을 경우 e메일로 제공되는 통상적인 보도자료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매번 방문증을 받아야 브리핑룸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기자 등록제’의 폐해가 존속될 수밖에 없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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