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동거해주면 4억 주겠다” 일방적 구애편지도 성희롱

  • 입력 2007년 6월 25일 20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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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25일 그간 인권위가 시정을 권고한 23건의 성희롱 사례와 결정문 등을 담은 '성희롱 시정권고 결정례집'을 발간했다.

이번 인권위의 결정례집에는 '성희롱'에 대한 일반인의 통념을 넘어서는 결정들도 많아 직장인이며 모두 참고해야 할 대목들이 많다.

인권위 측은 "성희롱에 대한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기업들도 성희롱 기준이 모호하다며 인권위에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인권위의 결정례집을 참고해서 교육 자료를 만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해들은 성적 모욕도 성희롱

모 주유소에 근무하는 이모(여) 씨는 지난해 동료 남자직원으로부터 불쾌한 얘길 전해 들었다.

주유소의 또 다른 남자 동료 김모 씨가 자신을 두고 "그 여자는 내 것이니 건드리지 말라" "(회식 후) 왜 그냥 헤어졌냐. 콜라에다가 약을 타서 어떻게 한번 해보지 그랬냐" 등의 발언했다는 것.

비록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 씨는 자신을 두고 남자 직원들이 나눈 대화로 인해 성적 수치심을 느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간접적인 성적언행이었다 할지라도 해당 여성은 직접 들은 것과 마찬가지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근로 환경에 악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해당 여성이 동등한 인격체의 직장동료로 간주됐다고 보기 힘든 만큼 이는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동성간 성적 언행도 성희롱

2005년 모 병원의 남자직원 이모 씨는 병원에 입원치료 중이던 남자 환자 박모 씨에게 "너 나 좋아하지, 사랑하지, 나도 너 사랑하고 좋아서 이렇게 손을 만진다"며 수 차례 박 씨의 손을 만졌다.

또 이 씨는 박 씨의 성기를 만지며 한 달에 자위행위를 몇 번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과거 여성부는 이성 간에 벌어진 성적 언행만을 성희롱의 대상으로 봤지만 인권위는 성희롱 당사자의 범위를 확대해 동성간의 성희롱도 조사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를 적용해 여직원이 같은 직장에 다니는 여성 동료에 대해 "같은 사무실의 남자직원과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 또 다른 남자직원들과도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말을 하고 다닌 것도 성희롱으로 판단, 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해당 가해자는 여성 동료에 대한 성적 소문을 퍼뜨려 피해자에게 적대적이고 모욕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했다"고 시정 권고 이유를 밝혔다.

●퇴폐업소에서의 원치 않는 회식도 성희롱

회사원 김모(여) 씨는 지난해 회사 남자 상사들과 함께 외국인 고객을 접대하러 퇴폐쇼를 하는 술집, 일명 '섹시바'에 갔다.

김 씨는 술집 이름을 보고 들어가길 주저했지만 남자 상사들은 "손님이 갈 때까지 있다가라"며 참석을 요구했다.

들어간 술집에서는 속옷만 입은 여자종업원들이 술을 나르고 있었고 곧이어 벌어진 스트립쇼에서는 나체의 여성들이 테이블로 다가와 남자 손님들에게 자신의 가슴을 만지게 했다.

이를 본 회사 상사 이모 차장은 김 씨에게 "남자 알몸(트렌스젠더)을 본 소감이 어때"라고 물었고 당황감과 수치심을 느낀 김 씨는 이후 회사에서 상사들만 봐도 그 날 일이 떠올라 결국 퇴사하게 됐다.

이 회사 대표 송모 씨는 평소에도 성적 농담을 좋아해 주 3,4회 씩 있는 회식자리에서 여직원들에게 콘돔을 꺼내 보이고 남자친구와의 성관계 경험을 묻기도 했다.

송 씨는 인권위 조사에서 "젊은 직원들과의 세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농담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가해자가 성희롱 의도가 없었다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런 결과를 초래했다면 이는 성희롱"이라고 판단했다.

●일방적인 동거제안 등 구애편지도 성희롱

지난해 7월 모 회사 사장 한모 씨는 회사 여직원 박모 씨에게 같이 사는 조건으로 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암으로 장기 투병중인 부인을 둔 사장 한 씨의 편지에는 "여생을 같이할 의사가 확인되면 1억 원을 주고 독신이 된 후 정식으로 동거하게 되면 4억 원을 주겠다. 이후 매달 500만 원의 생활비를 주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편 또 다른 회사의 사장 김모 씨는 이 회사 여직원 정모 씨에게 "너 때문에 부인과 싸웠다. 만약 이혼하면 네가 책임져야 한다" "우리 부인이 아니었으면 네가 우리 아들 새엄마를 해도 되는데" 등의 발언을 했다.

인권위는 "특별한 연애감정 없이 고용관계에 있는 사장과 직원 사이에서 성적인 의미가 내포된 동거, 결혼 등의 말을 일방적으로 듣게 될 경우 이는 사회통념상 성적수치심과 불쾌감을 느끼기 충분하다"며 성희롱 행위임을 인정했다.

임우선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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