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新천재론]<7>세계적 피겨스타 김연아

  • 입력 2007년 5월 10일 03시 01분


“캐나다 전훈 떠납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시즌이 새로 시작되는 10월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기 전지훈련을 하는 ‘피겨 요정’ 김연아가 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에 앞서 환송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캐나다 전훈 떠납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시즌이 새로 시작되는 10월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기 전지훈련을 하는 ‘피겨 요정’ 김연아가 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에 앞서 환송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1996년 7월 당시 6세이던 김연아(17·군포 수리고)가 어머니 박미희(49) 씨에게 이끌려 언니 애라(21) 씨와 함께 집 근처의 새로 개관한 과천시민회관 실내 빙상장을 찾기 전만 해도 연아는 평범한 아이였다. 하지만 땅 위에서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는 얼음 위에선 즐거워했고 활달했다. 박 씨는 스케이팅에 흥미를 느끼는 딸들을 단체 피겨스케이팅 강습을 받게 했다. 7개월 남짓 단체 강습 과정이 모두 끝났고 다시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강습 지도자였던 유종현(39) 코치가 박 씨를 붙들어 세웠다. “연아가 피겨에 재능이 있으니 한 번 키워 봅시다.” 이후 김연아의 삶의 궤적은 완전히 바뀌었다.》

믿음이 재능을 키우고, 훈련이 요정을 낳았다

유 코치가 국가대표 선수를 지낸 경력이 있긴 했지만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수준은 세계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할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유 코치가 어린 연아에게서 발견한 재능은 엄청난 재능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현재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유 씨는 “피겨스케이팅에서의 재능은 순발력인데 연아의 순발력이 뛰어났다”고 회상했지만 순발력이 좋은 아이가 드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다중지능(MI) 이론에 입각한 적성검사에서 김연아의 신체운동 적성 점수는 62.76점. 이는 상위 10.5%에 속한다는 의미로 세계 톱클래스의 선수 치고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김연아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재능보다는 유 코치의 확신이 연아와 그의 부모에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 데 있다.

[화보]‘피겨요정’ 김연아 파격적인 변신


‘피겨요정’의 귀환…“김연아 역시 최고”

“처음에는 물론 반신반의했어요. 하지만 딸에게 재능이 있다면 재능을 썩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유 선생님에게 개인교습을 맡기게 된 거죠.” 어머니의 말이다.

김연아의 성장은 빨랐다. 곧 1바퀴 점프를 구사했고 2바퀴 점프도 금세 익혔다. 지금도 상황이 비슷하지만 당시는 피겨 수강생이 그리 많지 않을 때였고 선수들의 수준도 낮았기 때문에 조금만 잘해도 눈에 확 띄게 마련이다. 또 누구든 자신이 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결과는 금방 나타났다. 전국소년체전 초등부 1위는 항상 김연아의 차지였다. 김연아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에게 큰 결단을 내릴 시기가 왔다. 딸의 기술 수준을 더 발전시키기에는 국내 시스템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 해외 연수를 보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가정형편이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유 선생님에게서 ‘김연아는 국내용이 아니라 국제용 재목’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면서 언젠가 연수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요.”

박 씨는 이때부터 평균 1500만 원이 드는 두 달간의 해외 연수를 매년 빠짐없이 보냈다.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 선진국인 캐나다나 미국에서 맞춤 교육을 받으며 기술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김연아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부모는 딸에게 다걸기(올인)를 했다. 박 씨는 집안일은 모두 남편에게 맡기고 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곁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피겨 대회 녹화 테이프를 집에서 수백 차례 돌려 봤고 딸이 강습을 받을 때는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김연아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2년 4월 국제 대회로는 처음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트리글라브트로피(13세 이하) 대회에 출전해 우승하면서 큰 자신감을 얻었다.

중학교(도장중)에 입학하면서 태극마크를 달게 된 김연아의 생활은 일반 학생과는 완전히 달랐다. 태릉선수촌과 빙상장, 집만 오가며 훈련하기에도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학교는 김연아의 삶에서 완전히 배제됐지만 부모도 본인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미 또래 다른 아이들과는 삶의 목표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정상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일반적인 과정에 오히려 회의를 느꼈다. 졸업하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나, 대학에서 배운 전공을 살리는 경우가 얼마나 되나”라고 반문했다. 아이의 재능을 하루빨리 발견해 그걸 계속 살려 주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는 것이 박 씨의 지론이다.

노력은 부족한 재능도 커버할 수 있다. 김연아는 유연성이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데 그것도 노력의 산물이다. 박 씨는 “연아는 원래 유연한 몸이 아닌데 훈련으로 그렇게 만들었다. 훈련을 조금만 소홀히 하면 유연성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또 ‘아티스트’라는 평가를 받게 한 김연아의 화려한 몸동작과 표정 연기도 마찬가지다. 김연아는 “당시 지도하시던 선생님이 열정적인 표정이 있어야 피겨스케이팅 연기가 산다고 해서 거울을 보며 수없이 연습했다”고 말했다.

어머니 박 씨가 피겨 선진국인 캐나다나 미국과 한국의 상황을 오래 지켜본 뒤 내린 결론은 “‘제2의 김연아’는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아이들의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재능이 결코 그 나라 아이들에 비해 뒤지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부모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이 재능을 꽃피우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거죠.”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타고난 대범함… 큰 무대 강한 당찬 승부사▼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대회 여자 싱글 종목에서 2위를 한 일본의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와 17세 동갑내기로 같은 1990년 9월생에다 키(163cm)도 같고 체격도 비슷해 여러모로 비교가 된다.

외견상 아사다의 ‘천재성’은 김연아의 경우를 훨씬 뛰어넘는다. 발레를 하다 5세 때 피겨로 바꾼 아사다는 이후 ‘트리플 악셀(3바퀴 반 회전)에 성공한 최초의 여자 선수’ ‘주니어 대회에서 트리플 악셀에 성공한 최초의 여자 선수’ ‘트리플-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3회전 점프 3연속 구사)에 성공한 최초의 여자 선수’ 등 숱한 기록을 갖고 있다.

김연아는 2004∼2005 시즌 주니어 무대에서 아사다를 처음 만났을 때 큰 점수 차로 졌지만 1년 만인 2005∼2006 시즌 주니어 세계선수권과 지난 시즌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아사다를 이겼다.

김연아는 어떻게 자신보다 기술이 뛰어난 상대를 이길 수 있었을까. 피겨가 기술만의 대결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피겨는 흔히 ‘실수 매니지먼트’로도 불린다. 연기에서 실수를 줄이는 것이 기술 수준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큰 대회에서는 우승 후보도 실수로 한순간에 무너진다. 세계선수권을 5번이나 제패했던 미셸 콴(미국)이 올림픽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이 그런 사례다.

김연아는 큰 무대에 강한 자질을 타고났다. 본인도 인정하듯 웬만해서는 긴장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실수도 적다. 반면 아사다는 큰 무대에서 한 번 실수하면 연기 전체가 위축되는 약점이 있다. 대범함도 재능이라면 큰 재능인 셈이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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