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무서웠니"…박군 빈소 눈물바다

  • 입력 2007년 3월 15일 16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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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 후 살해된 인천 M 초등학교 2학년 박모 군의 책상에 조화가 놓여 있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열흘 만에 이 책상은 주인을 잃었다. 연합
유괴 후 살해된 인천 M 초등학교 2학년 박모 군의 책상에 조화가 놓여 있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열흘 만에 이 책상은 주인을 잃었다. 연합
인천의 한 초등학생이 유괴된 지 나흘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유괴범은 빚에 쪼들리던 20대 가장이었다. 유괴범은 수사본부 반경 500m 안에서 두 차례나 협박 전화를 걸고도 수사망을 피해가 경찰의 대처가 초동단계부터 미흡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숨진 뒤에도 협박전화=인천 연수경찰서는 연수구 송도동 M초교 2학년 박모(8) 군을 유괴한 뒤 살해한 혐의로 견인차 운전기사 이모(28) 씨를 붙잡아 범행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1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11일 오후 1시반경 송도동 K아파트 상가 앞에서 장난감을 사러가던 박 군에게 "S고교 가는 길을 잘 모르니 알려 달라"며 견인차에 태워 유괴했다.

이 씨는 박 군에게 부모의 직업과 집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오후 2시 반경 포장용 테이프로 입을 막고 손, 발을 묶은 뒤 차량 뒷좌석에 태워 인근 남동구 남동공단 일대 등을 돌아다녔다.

이어 오후 2시 47분경 남동공단의 공중전화로 박 군의 집에 전화를 걸어 "현금 1억3000만 원을 준비하라"고 협박한 것을 시작으로 13일 낮 12시까지 모두 16차례에 걸쳐 협박전화를 걸었다.

이 씨는 이날 오후 11시30분 경 경기 부천시에서 인천으로 이동하던 중 박 군이 숨진 것을 발견하고, 12일 0시 10분경 남동구 고잔동 한 유수지에 박 군의 시신을 버렸다.

이 씨는 박 군이 숨진 이튿날에도 박 군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 나 집에 데려다 준대"라고 말한 박 군의 목소리를 들려줬으나 이는 숨지기 전 녹음한 것으로 드러났다.

▽"빚 때문에…"=전과 3범인 이 씨는 차량 견인사업에 실패하고, 사채를 빌려 유흥비로 사용하며 모두 1억3000만 원의 빚을 졌다. 9일 부인(31)과 돈 문제로 심하게 다툰 이 씨는 빚을 한번에 갚기 위해 이 때부터 유괴를 계획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 씨는 "아파트 값이 치솟은 송도동에 부자가 많을 것 같아 이 일대를 돌아다니며 초등학생 4, 5명에게 길을 물었으나 박 군만 순순히 견인차에 타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박 군은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45)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43) 사이의 외아들로 누나(12)가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생후 11개월 된 딸을 둔 유괴범 이 씨는 연수구 연수동에 24평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나 집을 담보로 1억 원을 대출받아 사용한 뒤 생활고에 시달려왔다.

경찰은 협박 전화 발신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연수구 청학동의 한 공중전화 앞 상가에 설치된 폐쇄회로(CC) TV 화면에 이 씨의 견인차량이 찍힌 것을 발견하고, 차량 소유주를 추적한 결과 14일 낮 12시경 이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2시반경 자신의 집 주변 도로에 견인차를 세워 놓고 잠을 자던 이 씨를 붙잡았다.

▽경찰의 늑장 대응, 부실한 수사=이 씨가 박 군 집에 처음 전화를 걸어 유괴사실을 알린 것은 11일 오후 2시45분 경. 유괴 장소에서 불과 5㎞ 떨어진 남동구 논현동의 한 공중전화에서였다. 이후 이 씨는 오후 10시51분까지 박 군을 태운 채 유괴지점 반경 10㎞ 이내를 돌며 공중전화로 7차례나 협박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 발생 후 인천시내 6개 경찰서의 형사 인력만 투입해 수사에 나섰다. 박 군 부모에게 걸려오는 전화의 감청과 위치추적에 나선 것은 첫 협박전화가 걸려온 지 6시간이 지난 8시29분경 5번째 전화부터였다.

특히 13일에는 수사본부가 차려진 연수경찰서에서 500m 떨어진 장소 등에서 두 차례나 협박전화를 걸었지만 경찰은 검거에 실패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이 일요일에 발생해 초동단계에서 대규모로 경찰력을 동원해 일제검문검색 등을 하지 못했다"며 "감청영장을 발부받고도 통신회사의 협조를 얻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이 씨가 통화를 짧게 한 뒤 끊어 위치추적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한편 박 군이 유괴 나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되자 박 군의 모교에서는 15일 오전 11시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추도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노경래(61) 교장은 "40년 교직생활 중 오늘이 가장 힘들고 슬픈 날이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학교에 다니는 세상이 언제쯤 오냐"며 눈물을 훔쳤다.

빈소가 차려진 인천적십자병원 영안실에서 박 군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을 차마 볼 수 없으니 치우라"며 오열하다 끝내 실신했다.

인천=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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