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집사지 마라”에 허탈… “개도 안짖더라”에 분통

  • 입력 2006년 12월 19일 02시 56분


코멘트
■세치혀에 울고 웃고… 2006년 말 말 말

《권태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8월 18일 저서 ‘한국의 세기 뛰어넘기’를 출간하며 “한국의 지식인들은 왜 성난 얼굴로 뒤돌아보는 것에 그토록 열중하는가”라고 질타했다. 이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주화 등이 서구 이론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일부 지식인의 불만을 비판한 말이지만 2006년 한국 사회의 갈등 양상을 그대로 압축한 발언이기도 하다. 권 교수의 지적대로 올해에는 ‘성난 얼굴’이 담긴 말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미래 지향적 비전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달리 북한 핵, 부동산정책 등을 둘러싸고 갈등의 골이 깊었던 탓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밝히는 희망의 메시지도 있었다. 부산 금정구 가스폭발 현장에서 살신성인을 실천하고 11월 15일 순직한 서병길 소방장. 그는 가족과 동료에게 “생명을 구할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희망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해 왔다. 올해 말말말을 정리한다.》

●“임기 다 마치지 않은 첫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도 말로 인해 숱한 논란을 불러 왔다. 노 대통령은 11월 28일 국무회의에서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중도 하야 가능성을 내비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일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두 달 전인 9월 4일 그리스 동포간담회에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취지로 “(대통령을 하는 동안) 계속 시끄러운 소리를 들려 드리겠다”고 말한 바 있어 노 대통령의 진의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노 대통령은 8월 13일 언론사 논설위원과의 오찬에서 “참여정부는 잘못한 거 없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꼽아 보라”며 대정부 비판을 반박하기도 했다.

북한 핵실험을 둘러싼 발언도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 노 대통령은 12월 9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동포간담회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했을 때 (우리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북한은 절대로 우리를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11월 17일 이임 기자간담회에서 “팬티만 입고 있는 대한민국에 그것까지 벗으라니 이런 부당한 일이 어디 있나”며 한국은 미국 등 다른 나라보다 대북제재를 강력하게 시행 중에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핵실험 직후 청와대 회의에 가는 길에 어떤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아! 나는 여기까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한 달 반에 한 번꼴로 총파업해”

부동산정책 실패 논란은 언쟁의 진원지였다. 노 대통령이 3월 23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부동산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지목한 데 이어 건설교통부가 앞장섰다. 추병직 전 건교부 장관은 5월 16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지방에서도 버블 붕괴가 시작됐으며 하반기부터 집값이 본격적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13일 국정감사에서 정책 실패를 묻는 질문에 “지진이 나면 폭발이 있고 여진이 있은 뒤 가라앉는다”고 버텼다. 이백만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11월 10일 ‘청와대브리핑’에서 “서민들 지금 집 사면 낭패, 부동산시장 불안은 부동산 세력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그러나 이용섭 건교부 장관은 12월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시장 불안은 정부에 많은 책임이 있다고 본다”며 정부의 실패를 인정했다.

민주노총이 주도한 파업도 많은 말을 낳았다. 김성중 노동부 차관은 11월 21일 기자회견에서 “거의 한 달 반에 한 번꼴로 총파업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의경 부모모임 이정화 대표는 11월 8일 평화적 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세미나에서 “서울에는 대나무밭도 없는데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죽창이 어떻게 나오느냐”고 말했다. 김태일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폭력시위는 우발적인 일”이라고 한 데 대한 추궁이었다.

●“나라 거덜내는 패륜아 어찌할까”

사행성 게임기 ‘바다이야기’와 관련해서는 ‘개’가 말싸움의 주인공이 돼 버렸다. 노 대통령이 ‘도둑맞으려니까 개도 안 짖더라’고 하자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은 8월 28일 “개는 2004년부터 짖었다”고 반박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8월 27일 “서민들 팔아 정권 잡고 불쌍한 서민들 피 빨아먹고 나라 거덜 내는 패륜아들을 어찌해야 하는가”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사퇴의 변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경우도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3월 15일 이임식에서 3·1절 골프 파문으로 사퇴한 데 대해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지난 열흘 동안 폭우가 쏟아져 옷이 흠뻑 젖었다”고 말했다. 김병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7월 27일 교육부총리 내정자 시절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식으로 검증하면 앞으로 교수 출신은 장관 못한다”고 말해 논문 표절 검증이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5·31 지방선거 과정에서 나온 말말말도 화제가 됐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5월 20일 지방선거 유세 도중 테러를 당해 입원하던 중 당직자에게 “대전은요?” 한마디로 대전 표심을 다졌다. 노 대통령은 6월 2일 지방선거의 참패에 대해 “한두 번 선거에서 패배했다고 해서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며 여론을 외면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은 6월 1일 당 의장직을 사퇴하며 “현애철수장부아(縣崖撤手丈夫兒·낭떠러지에 매달렸을 때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 대장부 아닌가)라는 말이 생각난다”고 했다. 두 달 뒤 7·26 재선거(서울 성북을)에서 이겨 국회로 돌아온 조순형 민주당 의원은 “탄핵의 정당성이 인정됐다”며 여권에 펀치를 날렸다.

●“리영희가 세운 건 사회주의 우상”

법원과 검찰도 말싸움을 주고받았다. 론스타 사건 관련 영장이 잇달아 기각되자 정상명 검찰총장은 11월 18일 “이 뭐꼬”라고 불만을 표시했고, 채동욱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은 11월 3일 “한마디로 코미디다”고 했다. 민병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11월 5일 “검찰은 민법 상법 공부 좀 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9월 13일 광주고·지법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법의 중추는 법원이고 검찰과 변호사단체는 보조기관”이라며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는 대개 사람을 속여 먹으려고 말로 장난치는 것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학계에서는 좌파 학자들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자본주의의 이성을 부순 자리에 리영희가 세운 것은 사회주의의 우상이었다”며 계간지 ‘비평’ 2006년 겨울호에서 비판했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4월 26일 뉴라이트재단 출범 기념 기자회견에서 “집권세력은 오늘날의 자유와 번영이 국제적 관계하에서 개발과 협력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간과하고 한국 근현대사를 침략과 저항의 역사로만 규정하려 한다”며 현 정권의 역사관을 지적했다.

국내 반기업 정서에 대한 재계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2월 9일 “(비정규직 법안 등 노동 관련 법안이) 노동계 편향으로 처리되면 기업도 파업할 수 있다. (기업인의 파업은) 길거리에서 하는 게 아니라 조용하게 사업을 접고 해외로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3월 27일 “반기업 정서가 해소돼 기업가가 존중받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국민소득 2만∼3만 달러의 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서 태어나길 잘했다”

야구선수 이종범은 3월 16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본선 3차전 일본 경기에서 8회 2타점 2루타로 2-1로 극적인 승리를 한 뒤 “2루타를 치는 순간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경기를 앞두고 “한국이 앞으로 30년간 못 이기게 해 주겠다”고 한 일본 스즈키 이치로의 허풍을 한방에 날린 것이다.

한국축구대표팀 박지성은 6월 24일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G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스위스에 ‘오심 논란’ 끝에 0-2로 패해 16강 진출이 좌절된 뒤 “경기에 져서 아쉽다. 하지만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스포츠맨십을 보여 줬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