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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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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논술문제 유형
[풀어 보세요]
다음 네 개의 제시문은 하나의 공통된 주제와 관련된 글이다. 그 주제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제시문 간 연관 관계를 설명하시오. 그리고 그 주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제시문]
(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계몽의 기만적 성격이 문화산업 속에서 드러난다고 한다. 현대의 모든 문화는 유사성을 갖는다. 특히 독점하에서의 대중문화는 모두 획일적이며, 대량생산을 통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 놓는다. 영화, 라디오, 잡지 등은 하나의 체제를 형성한다. 이러한 문화는 스스로를 산업이라 부르고, 그 제품 생산은 사회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장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산업, 사회적 필요 등과 같은 돈벌이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의해 이데올로기로 변질된다. 이러한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문화산업을 곧잘 기술공학적으로 설명한다. 요컨대 수많은 수요자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는 강요된 복제 방식에 의한 규격 상품을 생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화산업 관계자들의 이와 같은 조작과 그로 인한 대중들의 수요 사이의 순환은 문화산업의 체제를 더욱 긴밀하게 결합시킨다. (중략) 이상과 같이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대중을 기만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문화산업에 대한 비판의 요체는 ‘기술적 합리성’을 내적 원리로 삼고 있는 ‘산업’에 의한 문화의 왜곡 내지는 예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나아가 문화 영역에 있어서의 이 같은 대중 기만은 정치 영역에로 전이되어 주체의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를 제거해 버림으로써 대중 지배의 수단으로 된다는 점이었다.
[이정춘, ‘미디어 사회학’]
(나) 우리나라는 1950년대에 맘보, 지르박, 차차차 등과 같은 라틴아메리카 리듬에 맞춰 맘보바지가, 60년대엔 가수 윤복희가 영국에서 유행한 미니스커트를 소개한 데 이어 판탈롱과 핫팬츠가 유행하였다. 7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미니 패션은 사라지고 롱드레스(일명 월남치마)와 청바지가 크게 유행하였다. 80년대에는 디스코의 유행과 함께 디스코 바지가 한때 유행하다가,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포츠 의상, 캐주얼 의상, 유니섹스 모드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90년대 이후에는 배꼽 티, 짧은 치마, 통굽 구두, 부츠 차림새가 유행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청소년들 사이에 운동화, 힙합 바지 등과 함께 정장 패션이 유행하기도 했고, 여름에는 맨발 패션이 보편화되기도 했다.
이처럼 유행은 일정한 시기에 상당수 사람들에 의하여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선택·확산되는 특정한 취향이나 스타일을 말한다. 이러한 유행은 획일성이 강한 대중문화의 일면을 보여 준다.
[고등학교 교과서 ‘사회·문화’, ㈜천재교육]
(다) 사실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20세기 이후 모든 예술은 이미 대중 예술이며, 그것 자체가 대중문화이기 때문이다.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을 구별하는 사람들의 논법에 따르자면 순수 예술은 대중의 기호보다 예술의 형식적 완성도를 우선시하는 반면 대중 예술은 대중의 기호를 우선시한다. 그리고 대중 예술의 그러한 태도는 형식의 천박성과 내용의 조잡성 혹은 선정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들 주장의 요지이다. 우리는 대중 예술이나 문화가 결코 천박하거나 조잡하지 않지만, 그들이 말하는 천박성이나 조잡성 혹은 선정성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대중문화의 단점이 아닌 장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소위 순수 예술이라는 것이 형식적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천박(?)하고 선정적인 대중 예술은 바로 순수 예술이 매장하려는 천박성의 실체인 욕망의 실상을 부활시키고 있다. 그럼으로써 대중 예술은 과잉 억압의 기제를 파괴하는 데 한몫을 담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을 나누는 어떤 납득할 만한 기준도 발견할 수 없다. 굳이 나눈다면 상식적인 견해와 달리 실상을 은폐하려는 위선적인 고급 예술과, 그러한 위선을 제거하고 죽은 실상을 부활시키려는 대중 예술로 구분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 역시 일반적인 편 가르기에 대한 반발을 의미할 뿐이다. 어찌 보면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을 구분 지으려 하는 것 자체가 과잉 억압된 사회 속에서 교양 있는 예술가라는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라고 할 것이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겹겹의 관으로 매장시킨 자가 대중 예술을 통해 부활해 자신들의 살해 행위를 진술하는 것이다.
[박영욱,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라) 클래식과 대중음악은 그동안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20세기의 후반부에 들면서 이러한 장벽은 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단초가 ‘크로스오버(Crossover) 음악’이란 형태로 나타났다.
크로스오버 음악의 위상을 제대로 세운 사람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클로드 볼링을 빠뜨릴 수 없다. 그는 클래식에서 출발하여 재즈를 거쳐, 영화음악과 크로스오버 음악으로 나아갔다. 1976년에 장 피에르 랑팔과의 공동 작업으로 발표한 음반 ‘플루트와 재즈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모음곡’은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무려 530주 동안이나 머무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이 행복한 클래식과 재즈의 만남은 많은 후예들을 탄생시켰는데, 바이올린의 피커스 주커만, 첼로의 요요마, 클래식기타의 알렉산드르 라고야, 트럼펫의 모리스 앙드레, 피아노의 엠마누엘 엑스 등 현역 명연주자들이 각각 자신의 악기와 볼링의 재즈피아노를 결합한 음반을 취입했다. 볼링의 음반 작업이 크로스오버 운동에 끼친 공로는 이전까지의 크로스오버 음악이 기존의 팝이나 클래식 곡에 대한 편곡 위주로 진행되어 왔는 데 비해 크로스오버를 위한 고유의 곡을 작곡했고, 이를 정상급 클래식 연주자들로 참여하게 만들어 크로스오버 음악의 질적 평가와 권위를 높여 주었다는 점에 있다.
볼링의 성공 이후에 나타난 또 하나의 분수령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였다. 1982년 그가 존 덴버와 함께 ‘퍼햅스 러브’ 음반을 발매할 당시만 해도 미국의 음악계가 시끌벅적할 정도였다. 마치 이후 우리나라에서 테너 박인수와 대중가수 이동원이 정지용의 시를 바탕으로 한 노래 ‘향수’를 불러 레코드로 발매할 때의 시끄러움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도밍고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었다. 굳이 따지자면 크로스오버 음악이 하나의 움직임으로 정착된 것은 이즈음부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기부터 수많은 크로스오버 음반들이 줄을 이었다.
[조희창, ‘클래식 내비게이터’, 2005학년도 성균관대 논술고사 제시문]
■성균관대 논술문제 유형
제시문 (가)의 핵심 내용을 설명하고, 제시문 (나)와 (다)의 ‘대중문화 논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가)의 관점에서 논술하시오.
[제시문]
(가) 맹자는 공자의 덕을 칭송하여 “공자께서는 정도가 심한 일은 하지 않으셨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공자의 말씀과 행동을 생각해 보면, 모두 그 양 극단을 피하고 중도를 지키고 있는 점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공자의 말씀 가운데 “군자는 천하에 적당하고 적당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정(定)하고 정하지 않은 것이 없고, 오직 의(義)를 좇아서 의와 함께 살아간다”라고 하신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를 좇아서 의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의를 본받아 행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렇게 보면 이 또한 중용의 도를 지키라는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또 공자는 ‘논어’에서 백이, 숙제, 우중, 이일, 유하혜, 소연 등 초야(草野)에 묻혀 지냈던 은사(隱士)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이렇게 평하셨습니다.
“그 뜻을 굽히지 않고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이는 백이와 숙제였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했으나, 말이 도리에 맞고 행동이 사려 깊었던 이는 유하혜와 소연이었어. 숨어 살면서 기탄없이 말을 했지만, 몸가짐이 깨끗했고 세상을 버리는 것이 시세(時勢)에 맞은 이는 우중과 이일이었지.”
공자는 이렇게 은사들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자는 자신의 입장을 “나는 그들과 달라서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도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앞서 “적당하고 적당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정하고 정하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는 얼핏 보기에 주장도 주의도 없는 평범한 무정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속에는 중행(中行)·중용(中庸)이라는 지고한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자의 실제 모습에 대해 제자들은 “공자께서는 온화하시되 엄숙하시며, 위엄이 있으나 지나쳐서 사납지 않으시며, 공손하시면서도 평안하셨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모로하시 데쓰지, ‘공자 노자 석가’, 2004학년도 숙명여대 정시 논술고사 제시문]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인생이란 점차 의미가 없으며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비록 ‘자아’의 위치 설정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직장,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소외되었다고 생각한다. 반 덴 하그도 지적했듯이 문명의 발달로 현대인은 유례없이 많은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그 시간에 질식되고 만다. 현대 사회는 이러한 진공 상태를 싫어하여 재빨리 이를 오락으로 채우려 한다. 그 결과 로마 제국 말기, 수많은 신(神)을 가지고 있었던 로마인들도 결코 누리지 못했던 신격화를 현대 사회에서는 우상화된 배우들이나 동물들이 누리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현대인들은 이러한 대중 마취 현상을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심지어 일부 지식인들은 이를 찬양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라디오 또는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 매체의 프로그램에 의해 신경이 무뎌지듯이 산업 문명화에 따른 불안도 진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경우, 대중문화는 우리의 취향을 획일화시킬 뿐만 아니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으로 우리의 마음을 들끓게 하여 전체주의로 몰고 갈 우려가 있다. 대중 매체는 그 속성상 이러한 목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엠마 보바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소녀 시절에 탐독했던 시시한 읽을거리를 자주 읽지만 더 이상 마음의 평온을 느끼지 못한다. 그녀는 기분을 전환시키고 싶어서 그렇게 해보지만 더욱 악화될 뿐이다. 자신의 생활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분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를 사는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취향의 획일화에 의한 정신적 공허감은 차치하더라도 더 이상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대중문화는 고발되어야 한다. 불안한 현대 사회에서 대중문화는 그에 의해 해소되었어야 할 긴장감을 오히려 더 조장한다. 신기한 전자 매체의 세계와 그 지배자들은 오락 산업의 많은 협력자들과 함께 그들이 만들어 낸 대중이 실제로 만족스러운 경험을 얻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저속한 대중문화가 현대 사회에 만연할 때, 진실한 심미적 경험은 거의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버나드 로젠버그, ‘미국의 대중문화’, 2004학년도 숙명여대 정시 논술고사 제시문]
(다) 사실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20세기 이후 모든 예술은 이미 대중 예술이며, 그것 자체가 대중문화이기 때문이다.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을 구별하는 사람들의 논법에 따르자면 순수 예술은 대중의 기호보다 예술의 형식적 완성도를 우선시하는 반면 대중 예술은 대중의 기호를 우선시한다. 그리고 대중 예술의 그러한 태도는 형식의 천박성과 내용의 조잡성 혹은 선정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들 주장의 요지이다. 우리는 대중 예술이나 문화가 결코 천박하거나 조잡하지 않지만, 그들이 말하는 천박성이나 조잡성 혹은 선정성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대중문화의 단점이 아닌 장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소위 순수 예술이라는 것이 형식적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천박(?)하고 선정적인 대중 예술은 바로 순수 예술이 매장하려는 천박성의 실체인 욕망의 실상을 부활시키고 있다. 그럼으로써 대중 예술은 과잉 억압의 기제를 파괴하는 데 한몫을 담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을 나누는 어떤 납득할 만한 기준도 발견할 수 없다. 굳이 나눈다면 상식적인 견해와 달리 실상을 은폐하려는 위선적인 고급 예술과, 그러한 위선을 제거하고 죽은 실상을 부활시키려는 대중 예술로 구분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 역시 일반적인 편 가르기에 대한 반발을 의미할 뿐이다. 어찌 보면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을 구분 지으려 하는 것 자체가 과잉 억압된 사회 속에서 교양 있는 예술가라는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라고 할 것이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겹겹의 관으로 매장시킨 자가 대중 예술을 통해 부활해 자신들의 살해 행위를 진술하는 것이다.[박영욱,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이화여대 논술문제 유형
다음 (가) 글은 문예학자 발터 벤야민이 독일의 우화를 고쳐 쓴 것이다. 이 글의 내용을 ①대중예술 이전의 예술 감상의 본질이라는 측면과 연결지어 설명한 후, ②(나) 그림의 예에 적용하여 현대 사회의 예술의 특성에 대해 논술하시오.(1500자 내외)
[제시문]
(가) 옛날에 한 왕이 살고 있었다. 왕은 이 지구상의 모든 권력과 재산을 소유하였는데도 나날이 침울해졌다. 그는 후궁들의 아리따운 자태에도 더는 눈을 주지 않았고, 국경 지역의 승리 소식에도 무덤덤해져갔다. 왕이 가장 즐겼던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궁정 요리사가 빼어난 솜씨를 발휘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궁정 요리사는 걱정이 되어 왕에게 물었다.
“폐하. 귀하신 몸이 걱정되어 한 말씀 아뢰옵니다. 어쩐 일로 조석을 줄이고 날로 근심이오니까, 폐하.”
“괘념치 말라.”
“하오나 폐하.”
궁정 요리사가 간절하게 읍소하자 왕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대는 오랫동안 짐을 충직하게 섬겼고 짐의 식탁을 훌륭한 요리로 가득 채워 주었네. 고마우이. 아직도 짐은 그대가 만든 요리에 경탄하고 있네. 그러나 요즘은 입맛이 떨어지고 걱정거리만 날로 늘고 있으니….”
“폐하, 황송한 말씀이오나 한 번만 더 분부를 내리시면 폐하께서 근심거리를 말끔히 잊으시도록 정성껏 요리를 마련해 보겠나이다.”
“그렇다면 짐이 그대에게 할 말이 있네. 실은 내 평생소원으로 꼭 먹고 싶은 요리가 있는데, 산딸기 오믈렛이라네. 그대는 짐이 50여 년 전에 먹었던 산딸기 오믈렛을 만들어 줄 수 있겠나?”
궁정 요리사는 왕이 기껏 원하는 요리가 산딸기로 만든 오믈렛이라는 걸 알고는 한시름을 놓았다. 그 정도야 당장 뛰어나가서 만들어 올 수 있는 것이었다.
“짐이 젊었을 때, 선왕(先王)의 뜻을 따라 동쪽에 사는 이웃 왕과 전쟁을 벌인 적이 있었네. 그런데 우리는 싸움에 지고 말았지. 그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며칠 동안 도망을 쳐 깊은 숲 속으로 숨게 되었네. 다행히 목숨은 건지게 되었으나 무척 배가 고팠다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어느 조그만 오두막집에 이르게 되었는데 한 노파가 뛰어나와 우리를 반기더니 곧 부엌으로 가서는 산딸기 오믈렛을 가지고 왔다네. 짐은 그 오믈렛을 정신없이 먹고 나서야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네. 여보게, 그대는 그처럼 맛있는 오믈렛을 만들 수 있겠는가. 그 오믈렛 맛을 짐에게 선사한다면 그대를 사위로 삼아 제국의 후계자로 만들겠네. 그렇게 못한다면 그대는 죽어야만 하네.”
궁정 요리사는 낯빛이 창백하게 변했다.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입술이 바싹 타 들어갔다. 이윽고 요리사가 입을 열었다.
“폐하, 폐하의 뜻이 그렇다면 곧장 형리를 불러 주십시오. 물론 저는 산딸기 오믈렛을 만드는 법과 하찮은 냉이부터 고상한 티미안 향료까지 모든 양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폐하, 제가 아무리 비싸고 귀한 재료를 써서 산딸기 오믈렛을 만든다 해도 폐하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것입니다. 전쟁의 위험, 쫓기는 자의 목숨을 건 긴장감, 오두막집을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 뛰어나오던 노파의 온정, 허름하지만 온기가 서려 있는 부엌,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현재의 불안함과 어두운 미래. 이 모든 것이 없는 상태에서 어찌 폐하의 입맛에 맞는 오믈렛을 만들겠나이까. 폐하, 죽여주소서.”
[발터 벤야민,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나)
☞ 해설과 분석, 답안은 이지논술 사이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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